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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Mar 04. 2024

자동세차기 안에서 떠올린 어떤 곰

미친 듯이 불던 바람이 한풀 수그러든 일요일, 남편은 세차를 하겠다며 내게도 같이 가겠냐 물었다. 세차 후 남은 물기를 닦을 동안 따뜻한 차 안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어도 되냐 했더니, '그래도 되지만 사람이 눈앞에서 차 닦고 있는데 혼자 구경만 하고 있으면 인격이 의심되긴 할 것'이란다. 살짝 이죽거리는 대답 스타일이 나와 아주 많이 닮아있다. 표현력(?)뿐만이 아니다. 며칠 전엔 '飲みすぎだ(과음이야)'를 '飲みすぎるだ(너무 많이 마신다다)' 로 말한다던가 하는 이상한 일본어 말실수까지 옮아가고 있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어째 이런 것만 닮아가는 것인가. 


비둘기야, 비켜.. 


그렇게 카센터에 딸린 세차장에 갔다. 

코스 선택 후 지정된 위치에 차를 세팅하자 이내 사방에서 물이 뿌려지며 빙빙 돌아가는 세정 브러시가 거침없이 다가왔다. 코 앞까지 다가온 브러시가 앞유리를 덮자 차 안은 금세 어두워졌고, 거센 물줄기 소리와 차를 닦는 것인지 때리는 것인지 모를 브러시 돌아가는 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나는 자동세차기 안에 들어간 차 안에 있기를 좋아한다. 어드벤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폭풍우 치는 밤 같은 무대연출이 차 안의 내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안심감이 나를 이 모험의 당사자임과 동시에 스크린 밖 관객의 기분까지 맛볼 수 있게 해 주어 더욱 매력적이다. 


"나도 어렸을 때 그런 느낌을 좋아했어."


... 어렸을 때.



언제나처럼 그 어둠과 소음을 즐기는 사이, 물기를 날려주는 건조장치가 눈앞에 나타났다. 차창에 아롱아롱 매달려 있던 물방울들도 하나 둘 바람에 흩날려갔다. 그렇게 폭풍우 치는 밤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작은 페트병에 든 카페라테를 홀짝거리던 나는, 문득 멀지 않은 미래에 케이지에 들어가 무진동 트럭을 타고 비행기에 실려질 '어떤 곰'을 떠올렸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한 장소에서만 살아온 검고 하얗고 누런 그 어린 곰은 (다른 곰들이 그러했듯) 좁고 어두운 케이지 안에 들어가 사람도 귀가 먹먹해지고 몸이 덜컹거리는 비행기에 실려 몇 시간을 날아가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자동세차기의 '폭풍우 치는 밤'은 차를 닦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차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바로 눈앞까지 들이닥친 브러시 괴물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허나, 자기가 왜 이 케이지 안에 들어왔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는지, 어째서 경험한 적 없던 커다란 굉음과 진동을 견뎌내야 하는지, 그날이 들이닥쳐도 영문을 알 수 없을 그 곰은 정말 괜찮을까. 나는 건조장치가 지나간 뒤로 다시 나타난 청명한 하늘을 눈에 담으면서, 비행기에서 내린 곰이 케이지 틈새로 눈에 할 풍경도 이런 식으로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듯 나타날지를 생각했다. 






원래는 세차를 할 예정이 아니었다. 남편의 운전면허 갱신기간이라 일요일에도 업무를 하는 광역 면허센터에 가 강습을 듣고, 마침 그 지역에 전시 중인 거대 인형장식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그 곰의 마지막 퇴근 즈음에 라이브 스트리밍을 해준다기에 일정을 바꾸어 동네에서 벗어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좋을 뻔했다. '지금 이 순간'의 그 곰을 본 것은 두 번째이고, 5분밖에 볼 수 없던 지난번에 비하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가장 오래도록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 사람 같던 곰이 오늘따라 동물원 곰처럼 보여서 더 슬퍼졌다. 외교니 종 보존이니 하는 인간들의 사정 따윈, 그 땡그란 눈, 앙 다문 입을 한 곰은 알지 못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간 아무것도 모른 채 갑자기 먼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만 마음 아프게 여겼었는데 천진난만하게 댓잎을 먹는 검고 하얗고 누런 그 어린 곰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나의 구경 역시 곰에게는 사전협의 되지 않은 인간의 강요 중 하나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언제나와 다름없이 사랑스러웠던 만큼 마음이 더 불편했다. 


앞서 2023년 2월, 일본에서는 푸바오처럼 외국에서 태어나, 쌍둥이 동생이 있는 샹샹이 중국으로 보내졌다. 사람들은 동물원과 공항에 가 울면서 샹샹을 배웅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진 케이지 안에서 샹샹은 불안한 듯 좁은 우리 안을 왔다 갔다 하다가 다시 트럭에 태워져 판다기지로 보내졌고 적응기간을 거쳐 일반에 공개되었지만, 일본인 관람객의 일본어가 들려오면 댓잎을 먹다가도 입을 멈추고 귀를 쫑긋 댄다고 한다. 이젠 남의 집 이야기만은 아니게 될 그 모습이 한 달, 딱 한 달 남았다. 


어릴 땐 억지로 끌고 들어가야 겨우 집에 들어가 주던 그 곰은 어제는 어른스럽게 저 스스로 뚱땅뚱땅 뛰어 들어갔다. 태어날 때부터 돌보아주던 사육사님은 애써 눈물을 삼켰다. 푸바오를 사랑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슬픈 사람들이 너무 많고, 푸바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지만 뭐가 푸바오가 행복해지는 길인지도 잘 모르겠다. 뭘 위한 여정이고 대체 무엇을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푸바오가 말을 할 수 있다면 푸바오 넌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야속하게도 만날 수조차 없다. 


공교롭게도 어제의 일본은 히나마츠리(ひな祭り), 여자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기원하고 앞날을 축복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더 가슴이 먹먹해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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