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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Feb 29. 2024

마지막 식빵 한 조각

평일 아침엔 주로 식빵을 먹는. 노릇노릇하게 토스트 한 식빵에 마가린이나 잼을 바르고 달달한 모닝 다방커피를 곁들이면 갑작스러운 과도한 당섭취로 혈당 스파이크가 일어나 체내 인슐린 분비가 촉진되고 이 현상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인슐린 저항성이 생겨 살찌기 쉬운 체질로 변화함과 동시에 당뇨와 심혈관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위험한 아침 식사다. (어...?)


이야기가 잠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평일 아침엔 주로 식빵을 먹는다. 겉은 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구워진 걸 좋아하는데 다 구워진 토스트를 세로로 주욱 찢어 반으로 가르고, 한쪽엔 마가린을, 다른 한쪽엔 사과잼을 발라 한입씩 번갈아 먹으면 고소하고 짭짤한 맛과 상큼하고 달콤한 맛을 번갈아 맛볼 수 있어 정말 위험한 아침 식사다. (어...?) 


때문에 이번 주는 아침에 바나나와 아침낫토를 도입해 보려고 항상 두 봉지씩 사던 식빵을 한 봉지만 샀다. 그런데 인간 심리가 이상하지. 사고 나니 그저 '샀다는 것'에 만족해 바나나도, 낫토도 먹고 싶은 마음이 사악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바나나는 전자레인지 옆에, 낫토는 냉장고 안에 방치되었고 나도 남편도 열심히 식빵을 먹었다. 이번에 산 더블소프트는 평소 사던 것보다 더 두껍고 폭신했다. 우리의 아침 식사에 식빵 이외의 다른 것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그런데 늦잠을 자고 나온 어제 낮, 언제나처럼 식빵을 구우려고 보니 딱 한 장 남아있는 걸 보았다. 여기서 내가 먹어버리면 식빵을 좋아하는 남편은 내일, 내일모레 이틀간 식빵을 먹을 수 없다. 옆으로 줄줄 세는 식비를 줄이려고 장보기는 주말에만 하기로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한 조각은 남편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내일 식빵 먹어. 다른 거 먹고 싶으면 다른 거 먹어도 되지만 먹고 싶으면 사양 말고 꼭 먹어. 알았지?"


남편은 식빵이 한 장 남았을 때에는 쉽게 먹지 못하고 남겨두기 때문에 어젯밤에는 미리 먹어도 된다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남편이 출근 준비를 마쳤을 즈음 거실로 나가보니 남편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침 먹었냐 물어보니 밥에 반찬 해서 먹었다면서, 빵 좋아하니까 빵은 내게 먹으라고 했다. 그렇게 마지막 식빵내게서 남편에게로, 그리고 다시 내게 돌아왔다. 


문득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을 떠올렸다. 있잖은가. 가난한 부부가 서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려고 남편은 할아버지 유품인 손목시계를 팔아 부인에게 머리장식을 사고, 부인은 탐스러운 긴 머리를 잘라 팔아 남편에게 시곗줄을 이야기. 그래도 이 이야기는 비싼 시곗줄과 고급 머리장식이라도 남았지. 우리는 서로 '너 아침으로 식빵 먹는 거 좋아하잖아' 라며, 165엔짜리 식빵 덩어리 중 6분의 1조각 (27.5엔)으로 이렇게 네가 먹어, 아니 네가 하며 토스에 토스를 거듭했고 '우리 27.5엔분의 식빵 한 장 가지고 왜 이렇게 궁색하게 구냐,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마지막 식빵은 전자레인지 안으로 들어갔다. 


토스에 토스를 거듭 당하던 식빵은 드디어 토스트가 되었다. 






우리의 가난이 의도에 의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대단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이러고 산다. 나도 식빵 한 장에 연연하며 이렇게 살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가끔은 한숨 섞인 웃음을 내보이곤 하지만 폭소로 맞이하는 아침 역시 상상해 본 적 없었음을 깨달았다. 아침에 웃음이 나다니. 남편과 아침인사를 하고 그가 출근하는 10분 남짓한 시간조차 지금은 당연한 듯 매일 이렇게 웃으며 보내고 있지만 사실은 이것도 당연한 것이 아닐 것이다. 세상의 무수한 당연함들 중 과연 어느 정도의 당연함이 '당연한 것이 당연한 당연함'인 것일까? 소소한 시간들이 모여 행복한 삶을 만드는 순간을 나는 제대로 직시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당연하지 않은 2월 29일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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