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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Mar 26. 2024

익숙한 그 라면가게와의 결별

근처에 한 라멘가게가 있다. 먹으면서는 혈관이 콜레스테롤로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먹고 나서는 극심한 포만감에 전신권태를 얻고 심지어 배탈까지 나는 라멘을 판다. 결혼 초, 남편이 '묘한 중독성 있다'는 추천사와 함께 데려갔는데 '그래봤자 라멘이 라멘이지 (짜기나 하고)'라 생각했던 나도 여지없이 모두가 걷는 그 길을 걷게 되었다. 중독도 됐고 배탈도 났고. 그래서 나는 그곳의 라멘을 '필요악'으로 정의한다. 몸이 원하지만 몸에 좋을 일이 없는 것. 하지만 다 알고도 또 먹고 싶어지는 것.

  

이게 그거


그것은 여느 지로계 라멘(*도쿄의 '라멘지로'를 발상지로 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라멘)처럼,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 육수에 커다란 차슈, 볼륨감 만점의 야채와 면을 켜켜이 쌓아 올린 라멘이었다. 면의 양과 토핑을 취향에 따라 가감할 수 있다는 것은 좋지만 기본적으론 뭘 어떻게 먹어도 배불러 죽을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개중에는 유료 티켓까지 써서 정말 자기 머리 크기만 한 라멘을 만들어 먹는 용자도 있다. 먹을 수 있다면 한 번쯤 그렇게 먹어보고 싶은데 이제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지난주, 그 라멘집이 문을 닫을 거란 소식을 들었다. 

이 동네에 갓 이사 왔을 때부터 남편과 둘이 데이트 삼아 자주 갔었고, 한창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도 가던 가게다. 하지만 식사 후엔 주말의 시간활용에 지장이 생겼고, 돈 주고 질병을 구입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 자연스럽게 발길이 뜸해졌다. 하지만 간간히 생각나는 맛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어 결국 몇 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슬또 가야겠다는 이야기를 하던 차에 들린 비보였다. 신혼 초에 공유했던 기억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마치 우리의 인생에서 뭔가 하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폐점 전, 다시 한번 그곳에서의 추억과 맛을 느끼며 나름의 송별회를 하기했다. 


그곳에 가기 전, 우리는 항상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는' 의식을 했다. 양이 많기 때문에 이전의 식사량을 줄이고, 배탈을 유발할 커피나 기름기 많은 음식물도 미리 금한다. 체중조절 중인 복싱선수도 아닌데 그런 '몸만들기'를 강행하고 방문한 그날은 마침 쉬는 날이었다. 주말에만 가버릇 해서 수요일이 정기휴일인 걸 몰랐다. 금요일에 다시 방문했는데 이번엔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 영업 마지막날인 일요일, 저녁 타임 오픈 전에 줄을 서 세 번의 도전 끝에 '그 맛'을 맛볼 수 있었다. 삼고초려의 쾌거다.


안 쪽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 얼굴의 기대감이 모자이크를 뚫고 흘러넘친다

 

이미 스무 명 정도 줄을 서 있었다. 기름지고 투박한 스타일의 라멘이라 그런가, 멀리서 봐도 십중팔구, 하나같이 토실토실했다. 그 토실토실한 사람들 맨 끝에 내가 서는 것으로 '혹시'의 '역시'는 계승되었고 내 뒤에 선 사람들도 '혹시의 역시화'에 동참했다. 저마다의 모습에서 이 가게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안도감과 마지막 만찬의 기대감이 어려있었다. 개점 5분 전, 가게 안에서 작고 마른 체구의 언니가 나와 첫 타임 때 들어갈 인수 체크를 위해 앞에서부터 사람 숫자를 물어왔다. 돈 주고 먹는 사람은 살찌고 돈 받고 파는 사람은 마르는 불공정한 세상사.


오픈 정각이 되자 가게 안에서 파이팅 소리가 나더니 가게 안팎으로 불이 들어왔다. 내 앞의 앞에서 첫 타임이 끊겼기 때문에 먼저번 사람들이 빨리 먹고 나오기를 기다리며 핸드폰 사진첩의 라멘 사진들을 보며 추억에 젖었다. 그때의 기억들도 솔솔 피어나 아쉽고 그리운 마음을 배가시켰다. 왠지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질 것 같던 찰나, 점원 언니의 부름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마지막 주방의 모습 / 서비스 양파


안내된 자리는 카운터석이었다. 마지막으로 라멘을 만드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어 좋았다. 식권을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면의 양을 물었다. 하프 사이즈를 주문하면 양파 또는 날계란 중에 하나를 서비스로 받을 수 있는데, 콜레스테롤 분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얄팍한 마음에 양파를 택했다. 가게를 메운 라디오 소리, 삶은 면의 물기를 털어내는 소리, 오고 가는 손님들에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까지 평소와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들 열심히 만들고, 열심히 먹었다.



다른 건 내 눈뿐이었을까. 이제까지는 별 것 아니게 느꼈던 것이 괜히 애틋해 보였다. 받아 든 라멘 그릇 안, 차르르르한 기름이 그려내는 반짝거림이 그랬다. 평소보다 더 공들여 사진에 담고 마늘과 생강을 휘휘 풀었다. 다진 양파까지 뿌려주면 국물의 느끼함이 중화되고 고소한 풍미가 더해진다. 칼국수보다 조금 더 묵직한 느낌의 면발은 처음엔 다소 어색했지만, 그 씹는 맛에 익숙해지면 이 정도 존재감 있는 면이 아니면 허전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게 면과 야채를 깨끗하게 먹어치우고 챠슈를 젓가락으로 쪼개 세 개로 나누었다. 제일 좋아하는 건 제일 나중에 먹는 버릇 때문이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고는 마지막으로 스프 입, 한 모금 번갈아 마신 입을 닦았다. 빈그릇과 물컵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 'ごちそうさまでした(잘 먹었습니다)'라 인사하니 가게 사람들이 입을 모아 '감사합니다'라 화답했다. 우리를 안내해 주었던 점원 언니는 출입문 근처에서 '언젠가 연이 닿는다면 그 때도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언젠가 연이 닿는다면'


기약 없고 무책임하지만 그냥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보다 온기가 스며있어 좋아하는 말이다. 서로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또 만나는 날이 온다면.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 (어느 쪽이냐면 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큰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하는 이 말은 때로 우리 삶에서 큰 위안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이곳에서의 추억은 더는 만들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매일은 끝나지 않았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련한 기억으로 마음을 달래 가며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연이 닿는다면 좋겠습니다. 



따뜻하게 데워진 몸과 마음으로 기분 좋게 가게를 나왔다. 어느새 캄캄해진 주차장에는 우리가 왔을 때처럼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도쿄의 유명점이야 이런 일이 드물지 않다 하더라도, 단위면적 당 인구밀도가 비교도 안되게 낮은 시골에서 사람들이 가게 앞에 행렬을 만들고 기다리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다들 이제까지 맛있게 먹어온 가게에 대한 의리이자 감사의 마음으로, 또 마지막으로 이 맛을 기억하려 왔을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속으로만 인사를 건넸다. 


"괜찮아?"


위장 괜찮냐, 더부룩하지 않냐, 혹시 장에서 신호 오지 않냐, 급 피곤해지지 않았냐, 항상 그랬듯이 남편과 서로 안부의 말을 나누었다. 마지막은 둘 다 '오늘은 이상하게 말짱하다'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차에 올랐다. 


"이렇게 상쾌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는 이별은 나쁘지 않네."


뿌듯함 반, 아쉬움 반으로 주차장을 나섰다. 그런데 여기서 저녁을 먹고 마트에 들러 일주일치 식량과 생필품을 구매하러 갈 예정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나처럼의 권태감과 미친듯한 배부름이 엄습해 와 '도저히 안 되겠다. 그냥 집 앞에서 내일 아침에 먹을 빵이나 사서 가자'며 헐레벌떡 돌아왔다. 익숙한 그 라멘가게와의 결별은 평소의 익숙했던 엔딩 그대로 끝을 맞이했다. 폐점 다음 날인 오늘 아침에는 구글을 비롯한 각종 리뷰 사이트에서 전부 재빠르게 '폐업'이라는 글자가 붙었다. 기억이 채 흐릿해지기도 전에 붙은 빨간색 아이콘이 마치 집달리의 표찰 같아 마음이 헛헛했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전력으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미 결별한 무언가와 다시 연이 닿는 일 같은 마법 같은 포상도 언젠가 주어지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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