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주류 회사들은 인심이 후하다. 신제품이나 리뉴얼 제품이 나올 때마다 SNS에서 1,2주 단위의 추첨 이벤트를 진행해 편의점에서 실물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무료 바코드 쿠폰을 주는 프로모션을 자주 한다.
요즘은 곧 봄이고 본격적인 하나미(花見, 벚꽃놀이) 시즌을 앞두어서 그런가 신제품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덕분에 이벤트도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공짜 좋아하는 나는 머리숱을 걱정하며 사소하게 바빠졌다. 3월 한 달만 해도 내 아이디로 6캔, 남편 아이디로 4캔이 당첨되었는데, 편의점 가격으로 치면 2000엔 정도 될 것이다. 잠깐 시간 들여 버튼 하나 누르는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술테크다. 당첨되는 쾌감도 쏠쏠하고, 가계에도 솔찬히 도움이 된다.
일본의 주류회사들은 왜 이렇게 쿠폰을 뿌려대고 있을까.
2023년, 일본 국세청이 발행한 '술 리포트'에 따르면 인구동태의 변화, 소비자의 저가격지향,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기호 다양화 등으로 일본 국내 주류시장은 전체적으로 축소경항에 있다고 한다. 인구감소로 분모 자체가 줄어든 데다가 요즘 사람들은 예전처럼 술을 즐기지 않고, 술을 마시더라도 저렴한 츄하이나 사와, 발포주 등을 즐기게 되어 시장 규모 자체가 작아졌다고. 그러니 인심이 후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마트의 시식코너와 비슷한 것이다. 소비자를 찾아가는 공격적인 마케팅. 일단 한번 드셔봐, 같은.
그 '일단 한번 드셔봐'에 제대로 낚인 나는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오늘도 뭐 없나 인터넷을 어슬렁거린다. 이번 주에도 맥주와 츄하이 (소주나 보드카에 탄산과 과즙을 섞은 주류) 두 개씩 당첨되었는데, 오늘은 금요일이니 남편의 귀갓길에 바꿔오도록 부탁했다. 한 번에 한 캔 씩 밖에 바꿀 수 없는 쿠폰 룰 상, 연달아 몇 번씩 가야 하는 게 부끄러웠는지, 남편은 외근 중에 이런저런 편의점에 들러 술을 하나씩 바꾸며 '1', '2', '3', '4' 숫자까지 붙여 사진을 찍어 보내고 있다. 아주 신났다. 나도 그렇지만 이 사람도 머리숱 걱정 좀 해얄듯...
몇 주 전, 오챠사와 캔에 당첨되었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소주에 녹차와 탄산을 섞은, 이제까지 없던 신제품이지만 녹차에 탄산이 그리 매력적이지도 않았고 연두색에 한자가 잔뜩 써진 패키지도 영 구려 보여 기대감은 아주 미미했다. 하지만 집 근처 편의점, 남편 회사 근처 편의점 둘 다 500미리짜리 캔은 있는데 쿠폰 교환대상인 350미리 캔만 매대가 텅 비어있는 걸 보고 오기가 생겼다.
'뭐야, 왜 쿠폰은 주고 물건은 안 풀어!'
뭐가 뭐래도 꼭 받아먹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결국 주말에 인근 편의점 (인근이래도 차로 10분, 15분씩 가야 한다) 네 곳을 샅샅이 훑어 겨우 입수했는데 공짜로 얻은 술값보다 차 기름값이 더 들었을 것 같다. 편의점에 스윽 들어가 매대에서 온갖 술들을 훑어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빈손으로 나오는 나, 한 손에 캔을 들고 기뻐하는 나를 보며 차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술동냥에 성공한) 거지가 따로 없다'라고 웃었다.
거지라니. 당첨자님이시거든?
게다가 이 고유가 시대에 정유업계 발전에 이바지까지 한.
오챠사와는 산토리(SUNTORY)의 제품이었다. 산토리는 다른 주류 메이커보다 쿠폰 프로모션을 많이 한다. 그래서 그런가, 주류 매대에 나란히 놓인 술들 사이에서도 눈에 더 띈다. 가격설정도 다른 메이커보다 저렴해 부담이 없다. 앗,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 이미 산토리의 프로모션의 덫에 걸려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머리 속은 산토리에 대한 좋은 이미지 (공짜 술 자주 주고 술값도 쌈) 으로 꽉 차 있지 않은가!
신제품 오챠사와의 입수에는 약간의 고생이 더해졌지만 정말 신세계라 불러도 좋을 만큼 맛있었다. 녹차 탄 소주에 탄산이라니 이게 왠 괴주냐 했는데, 달지 않고 깔끔해 식사와 곁들여도 좋고 드라마 보면서 안주 없이 홀짝홀짝 마시기도 좋았다. 그래서 일부러 사서 먹기도 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제조사 산토리의 '계획대로'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산토리 천하도 이제 끝이다.
우리 집 자체 제조 레시피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집에 그 술에 들어가는 것과 똑같은 녹차 (산토리 이에몬)가 있는 것이 생각나 (이것도 어디서 얻어왔으니 진짜 거지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호기심에 25도짜리 쿄게츠 소주 3, 이에몬 녹차 6, 강탄산 1로 섞어먹었더니 대충 그 맛 비슷한 맛이 났다. 유레카!!!! 앞으로 쿄게츠랑 이에몬, 탄산만 사면 실컷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어... 근데 쿄게츠도 이에몬도 산토리잖아...?
나는 이미 산토리의 충성스러운 지갑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호의적이고 충성심 강한 나를 위해 산토리는 어서 또 새로운 술을 개발해 보시라.
그리고 어디 한번 또 쿠폰을 줘 보시지! 아주 야무지게 받아다 먹고 또 살게요... 굽신,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