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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pr 10. 2024

남편의 요리, 토리모모 챠슈

남편이 변했다. 전엔 '이거 좀 도와줘'해야나 겨우 주방에 들어오던 사람인데, 작년 여름 즈음부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요리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간단한 레시피를 알려주는 인스타 계정을 팔로우하며 특이한 안주거리 레시피를 가져와 같이 만들자, 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장을 볼 때 '나 이거 만들어 보고 싶어. 치즈 사야 해' 같은, 본인만의 요리에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슬슬 레퍼토리가 떨어져 이젠 뭘 만들어 먹고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남편의 요리열이 너무나도 기쁘고 고맙기 그지없다. 남편이 주 셰프로 이것저것 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다 쓴 조리도구를 씻고 야채를 다듬는 보조역할을 한다. 나란히 주방에 서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음식을 만드는 그 시간도 즐겁다. 



이번엔 토리모모(鶏モモ, 닭다리살 정육)로 뭘 해본다 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랬지만 냉장고에서 닭고기를 꺼내 콧노래를 흥흥 부르는 모습에 궁금증이 도져 뭘 하는지 뒤로 살짝 가 지켜보았다. 닭고기를 한 덩이를 꺼내 도마에 올려놓은 남편은 닭고기 앞 뒷면을 포크로 찌르고 있었다. 여기저기 한참을 찔러대더니 양면에 마요네즈를 바르고 전자레인지용 내열용기에 담았다. 


그러고는 숟가락을 꺼내 설탕 3큰술, 간장(양조간장) 3큰술, 미림 3큰술을 닭고기에 뿌렸다. 앞 뒤 뒤집어 가며 양념이 골고루 묻게 한 뒤, 내열용기 위에 랩을 씌워 500w 전자레인지에 앞면 3분 30초, 고기를 뒤집어 다시 3분 30초를 돌렸다. 전자레인지 문을 열 때마다 달짝지근한 간장냄새가 진동을 했다.


"냄새는 그럴싸하지만 고기는 절반으로 줄었는데...?"

"이게 끝이 아니야. 이거 좀 까 봐."



가스레인지에 뭐가 올라가 있더니만, 계란을 삶았나 보다. 둘이서 찬물로 식힌 계란 껍질을 후다닥 까고, 아직 김이 식지 않은 고기 옆에 쪼르륵 줄 세워 넣고 소스가 잘 스며들게끔 굴려주었다. 잠시 열이 식을 때까지 방치하다가 어느 정도 열기가 가시면 고기와 계란을 꺼내 썰어 담고, 남은 소스를 부은 뒤 잘게 썬 파를 후루룩 뿌려주니, 토리모모 챠슈, 닭다리살 차슈가 완성되었다. 


남편의 요리, 토리모모 차슈 (닭고기 차슈)


계란이 예쁘게 썰리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먹음직한 비주얼에, 촉촉한 닭고기와 간장소스가 아주 맛있었다. 무엇보다도, 계란 삶기와 동시진행으로 해도 15분이 채 안 걸리는 요리고 술안주로 딱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남편은 이것을 '우리 집 대표요리 중 하나'로 하자고 했다. 내심 소름이 돋았다. 우리 아빠가 엄마가 만든 음식 중 맛있는 것이 있으면 '이건 오늘부터 우리 집 대표요리다'란 말을 종종 했다.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왜 똑같은 말을, 게다가 다른 언어로. 딸은 무의식적으로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난다더니 그 말이 진짜였을까? 참으로 복잡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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