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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pr 11. 2024

현관문에 인사하고 가는 사람들

"띵동"

".........."


집에 있으면서 없는 척, 이루스(居留守)가 몸에 밴 나는 혼자 있을 때 절대 쉽게 현관문을 열지 않는다. 이 건물에는 낮에도 집에 있는 사람이 나뿐이고, 나는 종일 하늘천 따지 글월만 읽고 쓰는 문신형 인물이라 무슨 일이 있을 때 스스로를 지킬 방법이 없다. 그래서 택배와 우체부 아저씨처럼 사전에 방문을 알 수 있거나, 옷으로 신분 확인이 가능한 사람 이외에는 기본 '없는 척'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말 현관문을 열고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내 연락처도 가지고 있다. 이제까지 이 없는 척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아주 유용했다. 


한 때 이 지역에 갑자기 꽂힌 야쿠르트 아줌마가 3일에 한 번씩 찾아와 가가호호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를 때마다 주문 신청서를 우편함에 끼워 넣었지만 사람이 나오질 않으니 얼마 가지 않아 더 이상 오지 않았고, 웬 할머니가 포교활동을 하러 온 적도 있지만 두어 번 오다 포교 전단지만 넣어두고 발길을 끊었다.


초대하지 않은 불시의 손님들은 이렇게 없는 척으로 시간과 감정 소모 없이 스무즈 하게 물리칠 있었다. 


방문객은 이런 식으로 보인다 (프로도의 재연)


"띵동"

"........"


어제도 나는 없는 척을 했다. 인터폰 화면 안에는 감색 블루종을 입은 남자가 꼿꼿하고 바른 자세로 있었다. 아마 어딘가의 영업사원일 것이다. 그는 벨을 누르고 5정도 가만히 있었지만 사람의 기척이 들리지 않자 현관문에 대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이런 광경을 본 것은 처음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방문객들 중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이 벨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다 현관문에 목례를 하고 돌아갔다. 마치 정해진 지침처럼 일관되게 행동하는 모습에 '방문영업의 예절-집주인 부재 편' 같은 매뉴얼이 있나 해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강제성 높은 사회적 룰이 존재한다는 건 아니란 소리다. 


그럼 아무도 없는 집에 인사를 하고 가는 이유는 뭘까? 

몇 가지 가설을 생각해 보았다. 


1. 녹화 기능이 있는 인터폰이라면 집주인이 나중에 볼 수 있으니 그에 대한 예의.

2. 전단지를 멋대로 놓고 가는 것에 대한 양해.  

3. 전단지 내용에 대해 잘 부탁드린다는 당부. 

4. 사실은 집에 있으면서 없는 척한다는 걸 간파했지만 그런 소심한 집주인에게도 예의를 지키고 싶어서 (→어... 감사하고 뭔가 죄송합니다...)


떠오르는 것은 이 정도였다. '메이와쿠(迷惑, 민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들이니, 상대가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 빈집 현관문에 인사하기로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는 의아하다. 녹화기능이 있어도 집주인이 안 볼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까지? 그리고 집주인이 확인한 영상에서 방문객이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하여 딱히 무례하다 느끼진 않을 것 같은데 가뜩이나 빡빡한 세상, 그런 몇 수 앞까지 짚어가며 살아야 하는 걸까? 


10년을 넘게 살았는데 아직도 일본 사회는 잘 모르겠다.



잠시 뒤, 현관에 나가보니 우편함에 안내문이 하나 들어있었다.

아까 왔던 사람이 넣어두고 간 것이다. 근처 상점에 태양열 패널 설치 공사가 있을 예정인가 보다. 그간 여러모로 불편을 끼칠 수 있으니 이해를 부탁한다는 내용과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아, 그래서...,


그래도 나는 이거 한 장만으로 충분한 것 같은데.


참 섬세하달까, 뭐랄까. 





남편의 귀가 후, 이 이야기를 했다. 


"예의가 바른 건 좋지만 한편으론 그렇게까지 하나 싶기도 하고. 일본 사람들 관점에선 아무도 없는 집이라도 현관문에 인사하고 가지 않으면 무례한 거야?"

"음, 나도 딱히 불쾌하거나 이상하게 생각되진 않는데."

"역시 그렇지?"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남편은 지인이 겪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배송 시 주의사항'에 '앞에 두고 갈 것'이라 써져 있어서, 주의사항 대로 고객의 현관문 앞에 배달하고 왔는데 바로 클레임이 왔다고 한다. 내용은 '집 안에서 다 지켜보고 있었는데 갈 때 목례를 하지 않았다'는 것. 자기도 없는 척해놓고 현관문에 대고 꾸벅 안 했다고 꼬투리를 잡는 사람이 있다고?


"어, 진짜 있다니까?"

"믿을 수 없어.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는 거야?"

"게다가 이런 안내 전단지 놓고 가면 회사, 연락처, 이름도 밝혀지잖아? 뭐로 수틀려서 꼬투리 잡힐지 모르니까 항상 누가 본다고 생각하고, 철저하게 예의를 차리는 걸 수도 있어."


남편은 한마디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오.. 오.... 더불어 사는 세상, 다 같이 철저하려 하지 말고, 다 같이 좀 유하게 살면 안 되나. 10년을 넘게 살았는데 아직도 일본 사회는 잘 모르겠다. 아니, 내가 나라를, 나라 사람들을 완전히 이해할 있는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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