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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pr 19. 2024

반갑지도 않고 불편하기만 한 연락

시누의 메시지는 반갑지 않다. '용건만 간단히'라지만 평소에 안부 연락 하나 없다가 항상 뭔가 본인이 필요할 때에만 라인을 보내오기 때문이다. 남편 말로는 우리는 원래 이런 식, 이라는데 매번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일방적으로 들어주기만 하는 관계가, 나는 좀 이상하다고 느낀다. 


적어도 깍듯하게 굴기라도 한다면. 나이가 서른이 넘었고 희극배우 생활도 한 사람이 그 상하관계 엄격한 세계에서도 그렇게 행동했으리라 생각치 않는다. 남편은 '원래 뭘 잘 모르는 애'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그녀와 함께 동고동락한 드라마가 없는 나는, 그것을 단순히 가족에 대한 어리광이라고 삼켜줄 수가 없다. 


6살 차이 나는 여동생의 성장과정을 전부 지켜보았을 남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 쬐끄만한 떼쟁이가 짜증스러웠어도, 엄마 아빠 싸우면 눈치 보는 작은 아이에 대한 연민도, 오빠 오빠 하며 살갑게 굴던 때의 귀여움도 있기 때문에 이해하며 넘어갈 수 있는 일들도 많을 것이다. 아직도 그때의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시누도 그때와 똑같이 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생판 남으로 살다가 남편을 통해 만나게 된 그의 여동생을, 나는 그저 객관적인 지표로밖에 판단할 수 없다. 경우가 없고 무례하다. 앞으로 4년만 더 있으면 함께 산 시간보다 떨어져 산 시간이 길어진다. 아무리 오빠가 만만하고 착한 사람이라해도 부모 품 밖에서 서로 새로운 가치관이 자라났고 오빠가 새 가족을 데려왔으면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라 해도 눈치를 보고 지켜야 할 거리가 생길 것인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완벽한 타인이던 나까지 그런 취급을 받으려니 복장이 터진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너네들' 중에 '네들'을 담당하며 갑작스럽게 최저 8살 이상 회춘했다. 머물러 있는 줄로만 알았던 청춘이 점점 멀어져 감을 느낀 적은 있어도 이런 뜬금없는 역방향 플레이는 처음이라 당혹스럽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나이와 상관없이 꼬박꼬박 존댓말을 써왔는데 시누가 '말 낮추라'는 걸 안 낮추길 잘했다. 안 낮춰도 저러는데 내가 말 낮췄으면 날 뭐라고 불렀겠는가.


김 씨, 아니면 코리안이었다는데 내 저녁밥을 건다.




그간 가만히 있었던 것 역시, 내가 그녀와 함께 동고동락한 드라마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모습도 있을 터이니,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큰 의미로) 모두 가족이니까.


그래서 그녀가 우리를 존중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더이상 알고도 당해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전화로 직접 전하고 싶었다'던 그녀의 결혼소식을 나는 아직도 소문으로밖에 모른다. 가족에게는 직접 말로 전하고 싶은 일이지만, 내게는 오빠랑 같이 있는 걸 알면서도 바꿔달란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상견례 때 부를테니 협조하라는 자기 용건만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에게 있어 나의 존재감은 한없이 가벼운 것이다. 아마 어항 속 금붕어에 대롱대롱 매달린 똥 비슷한 것이 아닐까. 똥 주제에 자아가 강한 나는 내가 똥이라 치부되는 것도 싫고, 본체인 금붕어가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쥐락펴락 당하고 있는 것도 싫다. 금붕어가 흔들릴 때마다 그에 딸린 나도 살랑살랑 흔들려야 하고, 무엇보다도, 그 금붕어, 내 금붕어입니다. 


그런데 그 금붕어는 자기 똥이 '네들'이 되는 걸 보고도 상황을 정리하지 않았다. 자신이 휘둘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그에 따른 파급효과를 똥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씨, 자기는 똥이 아니라서 그런가. '우리 중'에는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도 '저쪽이 만나고 싶어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라 말한다. 만나고 싶으면 혼자 만나고 오라 하니 만날 일은 아니라 생각한단다. 본인도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는 일을 동생이 먼저 '만나자', '뭐 하자' 들쑤시면 그게 곧 정의가 되고, 그 정의를 무조건 따라주는 것이 오빠 노릇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그런데 내가 그걸 싫다 하니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아아, 그 착한 오빠는 알까. 본인이 지금 밥은 똥한테 얻어먹으면서 자기를 쥐락펴락 하는 손바닥 편을 드는 중인 금붕어라는 사실을. 자기 와이프는 지금 똥 씹은 얼굴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정신 차려, 이 금붕어야.




"5월, 아니면 6월에 한가할 때 다 같이 술 마시러 가자!"


어제는 이것이었다. 자기 결혼한다는 인사 겸 뭐 오랜만에 만나자 그런 거겠지.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는 결혼 빌드업을 위해 작년에 몇 번이나 고향집에 내려왔으면서도 그 코 옆에 사는 오빠에게는 한 번도 알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회는 충분히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있을 뿐이고.


매해 12월이면 물어오는 '정월에 집에 언제 갈거야?'도 그렇다. 

귀성은 먼데 사는 본인이나 하는 것인데 근처에서 빈번히 얼굴을 비치는 우리에게까지 본인 스케쥴에 맞추길 강요했다. 그래서 엄청난 효녀에 가족애가 투철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올해는 한국에 가야해서 따로 가자 했더니 연휴 끝나고 맞춰 가겠다고 매달렸다. 이번에도 남자친구 데려갈 건데 부모님이랑 넷이만 만나면 남자친구가 불쌍하다나. 결국 올 정월에는 내려오지 않았다. 그녀에게 정월의 귀성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던 것일까. 문득 궁금해 진다. 


굳이 세밑에 전화를 건 것도 자신이 내뱉은 '남자친구 불쌍하단 말이야'를 주워 담고 '이용당하는 듯한 느낌에 기분 상했겠지만 사실은 이런 서프라이즈가 있어서 같이 만나고 싶었던 것 뿐이다'란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리가 일본을 떠나기 직전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일부러 곤란한 때에 결혼 소식을 전해 왔다. 뭐 그렇게 급하게 말할 일이라고 부모에게 보다 2주나 먼저. ‘상견례 때 부를 테니 시간 내줘'라는 말은 '5월 몇째 주 수요일에 상견롄데 시간 없지? 물어만 본거야'로 변했다. 전에 그런 말을 했지만 시간이 이렇게 정해져 다음에 봐야 할 것 같다, 이런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술을 마시잔다. 6월 초에 혼인신고를 한다 하니 그 전후로 본가에 올 계획이 있을 것이다. 그 때 겸사겸사 만나서는 이슈가 끝나기 전에 축하한다 소리도 듣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사람들한테는 다 말했다!'라며 홀가분한 달성감을 느끼려는 것이겠지. 어차피 오빠 휴일은 빤히 알고 있으니 5, 6월 9번의 토요일 중 자기들이 오고 싶은 날을 통보하는 것으로 일정을 정하려 했을 것이다. 항상 그랬듯이.


결혼소식을 오피셜리 하게는 아직도 모르고 있는 나는, 내가 왜 그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여동생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평소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왕래도 안 하고, 안부도 주고받지 않으면서 이런 때만 성립되는 이 관계가 너무나도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미 동거만 3년, ‘할 거 하는구나’ 싶기만 한데 자기 결혼이 남들에게 뭐 그렇게 대수라고. 


'집에서 나간지 오래되서, 솔직히 별로 아무 생각 안들어. 매제될 친구도 몇번이나 만났고.' 


동생의 결혼 소식에 남편의 감상평은 이 정도였다. 여동생 역시 우리가 결혼했을 때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인들 말로는 '우리 남매는 사이가 좋다'라는데, 14년이나 떨어져 살면서 이미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이 없기 때문에 싸울 건더기조차 없고, 일방적으로 맞춰만 주고 있으니 사이가 좋을 수 밖에 없다. 싸우지 않으니 사이가 좋다고 한다면 매달 수입과 지출이 플러스 마이너스 0이면서 '마이너스가 아니니까 우린 부자야'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우린 그런 사람들을 긍정적이라 하지 부자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옛 제자들에게서 오는 연락은 때때로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반갑기라도 하다. 하지만 이 반갑지도 않고 불편하기만 한 연락은, 우리 가정에서 불화의 싹이자 남편과 나의 흰머리가 되고 있다. 앞으로도 이 연락은 계속될 것이다. 내가 작정하고 머리 풀고 공공의 적이 되지 않는 이상. 


그나마 딱 하나 희망적인 것은 그녀가 결혼을 하면 조금은 내 입장을 이해하고 본인의 행동에도 좀 느끼는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인데, 아, 글렀네. 저 쪽은 시누이가 없다. 


아아,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일본에 가족을 만들어 주어서 고마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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