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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pr 26. 2024

남편은 왜!

우리 집 세면대에 있는 혀 클리너. 헤드에 클리너가 달려있는 칫솔로 바꾸면서 쓰지 않고 있다가 어제저녁 우연히 이를 닦다 내려다보았는데 자리만 차지하고 수돗물의 석회질이 말라 붙어 있는 게 보기 좋지도 않았다.


"이거 아직도 써?"

"아니, 안 써."

"그럼 버린다?"

"응"


그렇게 혀 클리너와의 안녕을 결정하고, 마저 이를 닦다가 버리는 것을 깜빡 잊고 그대로 세면실을 나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오늘), 남편을 배웅하고 세면대 앞에 섰는데 평소와 다른 허전함을 느꼈다. 아, 아까 쓰레기 버리는 김에 나 대신 클리너도 버려줬구나.


남편은 '이것을 이렇게 해줘'라는 구체적인 부탁을 한 것 이외의 이레귤러에는 대응이 되지 않는다. 가령 '쓰레기 좀 밖에 버려줘'라고 하면 쓰레기통에 들어있는 쓰레기는 성실히 버려주지만, 그 근처에 있는 '누가 봐도 쓰레기지만 쓰레기통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 쓴 커피필터'는 버리지 않는 식이다. 처음엔 눈에 빤히 보이는 걸 왜 안 버렸는지, 왜 말이 제대로 안 통하는지 답답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것이 단순히 포커스의 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덜 답답하다. 애초에 남편의 포커스는 '쓰레기통 안의 쓰레기'에 맞추어져 있어서 그 커피필터가 이번에 버려야 할 쓰레기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인지하지 않는 것이고, 나의 포커스는 '이날 버릴 수 있는 모든 쓰레기'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쓰레기를 버릴 때는 주변에 또 버릴 것이 없나 한번 살펴보게 되는 것. 원하는 곳이 있다면 남편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되고, 수정되지 않을 것 같으면 내가 제깍제깍 하면 될 뿐이다. 그래도 정말 이해가지 않는 기이한 행동으로 놀라게 하는 일들이 왕왕 있지만 


그래서 오늘은 참 특별했다. 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결혼생활 3년 차에 남편이 드디어 뭘 좀 알게 되었구나! 내가 잊은 걸 기억하고 대신해 주었다는 것이 고맙고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뭔가 여전히 이상하다. 클리너가 없는 건 없는 건데, 그 아래에 있던 칫솔꽂이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자기로 된 작은 원통형 칫솔꽂이였는데 이 역시 석회질이 하얗게 붙어있었지만 구연산을 뿌려 녹여내면 다시 깨끗하게 돌아올 터였다. 나는 그것을 하나는 주방에 가지고 와 주방 청소용 낡은 칫솔을 꽂는데 쓰고, 다른 하나는 다육식물들을 돌볼 때 쓰는 핀셋을 꽂아두는 데 쓸 생각이었다.


어차피 안 쓰니까 어디다 넣어두었나? 세면대 아래 서랍도 열어보고 혹시나 싶어 분리수거함도 열어보았지만 칫솔꽂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설마 혀 클리너랑 붙어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다 같이 버려버린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아까까지의 고마움은 이내 어떤 한마디로 치환되었다.


아니,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해서는!


그래도 모른다. 내가 떠올리지 못한 기상천외한 어딘가에 넣어두었을 수도 있어. 섣불리 화내면 안 돼. 게다가 바로 며칠 전, 남편이 다육 잎을 주워다 준 일을 계기로 '화가 나고 짜증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럴 때야말로 그의 허물에 덮여 보이지 않을 이 순수한 마음을 떠올려 보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순간의 분노에 본질을 잊지 않도록 말이다.' 이런 말도 하지 않았는가. 워-워-. 일단 사실관계의 확인부터다.


'세면대에 있던 하얀색이랑 하늘색 칫솔꽂이 어딨어? 혀 클리너 꽂아두었던 거'

라인으로 보낸 질문은 잠시 후 이렇게 돌아왔다.


'에... 버려 버렸어. ^^;'




오늘 버려진 칫솔꽂이는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청소칫솔 꽂이든, 핀셋 꽂이든, 이제까지 없이도 살았으니까 큰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정말 필요하면 다시 사면되고.


그런데 사실 그 칫솔꽂이에는 사연이 있다. (사연이라면 좀 거창하지만) 혼자 자취할 때 분홍색과 하얀색을 사서 칫솔과 보조칫솔을 꽂아두고 쓰던 것을, 남편 (당시 남자친구)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게 되면서 파란색을 하나 더 사서 두었던 것이다. 그중 분홍색은 지금 빚을 꽂아두는 용도로 쓰고 있어서 살아남았고 흰색과 파란색은 혀 클리너 꽂이로 쓰이다가 오늘 이렇게 영원히 이별하게 되었다.


나는 원래 내가 산 물건은 잘 못 버리는 사람이다. 손때가 묻은 시간의 추억이 물건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까지 쓰고, 대신 집에 물건이 많아지는 건 싫어 정말 필요한 것인가를 몇 번이나 생각하면서 산다. 게다가 짧은 연애시절, 그 시간과 공간에 있던 것을 -그것이 우리의 연애에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느냐를 불문하고- 손에서 놓아 보내는 것은 더더욱 쉽지가 않다.


그래서 '고작 칫솔꽂이'인데도 약간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지도 않던 일을, 왜? 왜! 왜?! 남편은 왜?라고 생각도 했다.


어, 그런데 남편은 일본 사람이니 '왜' 맞잖아?

 

그렇게 한번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나고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졌다. 그래, 왜나라 사람이니 왜 그러는지 모르겠을 일도 하는 것이고, 왜 갑자기 안 하던 일을 해서 사건을 만드는지 내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왜나라 사람이 아니니까.


어쩌면 그 역시 '어제 버린다고 해놓고 왜 안 버렸대?' 라며 드넓은 대륙(끝에 붙어있는 반도)에서 온 와이프에 대해 왜국 사람답게 '왜?'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없어져서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칫솔꽂이가 없다고 해도 우리의 삶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데굴데굴 열심히 굴러갈 것이다. 그러니까 안타깝다거나, 서운하다거나 하는 순간뿐인 감정에 휩쓸려 남편 입장에서는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을 그저 나쁘다고만 해서는 안되고, 우리가 그게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어차피 칫솔꽂이는 다시 돌아오지도 않고.






'실은 우리 결혼하기 전에, 내가 오래 가지고 있다가 너 위해서 새로 색깔 맞춰서 샀었던 거야. 나름 추억이...'

'그랬구나. 미안해.'

'아냐, 괜찮아.'

'미안해. 사과의 의미로 하겐다즈 두 개 다 너 먹어. 무슨 맛이 좋아?'


그는 오늘 사 오기로 했던 하겐다즈를 두 개 다 내게 주겠노라고 했다.

그린티와 마카다미아,라고 대답했는데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자기 딴엔 생각해서 일 한 사람에게 그렇게 까지 사과를 받을 일도 아닌 것 같아 난 그린티를 먹을 테니 다른 하나는 남편이 먹고 싶은 것으로 하라고 했다.


남편.

사실 정말 사과를 받아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시청 환경관리과야.

타는 쓰레기에 안타는 걸 넣으면 어떻게 해. 그건 또 하필 왜 그런 거야?

다음부턴 생각 좀 하고 버려라, 으휴.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않은 말이지만, 나는 또다시 '왜'를 들먹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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