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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Jun 26. 2024

공짜 포인트에 눈이 어두워진 자

"언니, 오랜만이에요. 혹시 포인트 쌓는 거 관심 있으세요?"


오랜만에 지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안부를 묻자마자 이어진 난데없는 질문에,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해킹인가?'였다. 일본에서도 나리스마시(なりすまし,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인척 속이는 것) 사기 이야기는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악당이 그녀의 아이디를 해킹해 연락처 목록에 있는 사람에게 다단계 사기를 치려는 게 아닐까.


뭐라고 하는지 더 들어보기 위해 '으응, 나 포인트 그런 거 잘 못하는데 ㅠㅠ' 하고 슬쩍 몸을 뒤로 빼자, 지인(이 아닐 수도 있음)은 '어떤 SNS어플이 있는데 동영상을 보는 것 만으로 포인트가 쌓인다, 지금은 이벤트 중이라 소개코드로 다운받아 기동시키는 것만으로도 소개받은 사람도, 소개한 사람도 바로 3000엔 분의 포인트를 받을 수 있어 서로 윈윈'이라는 이야기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윈윈...? 원래 그런 용도로 쓰이는 말은 아니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너무나도 '다단계 사기 전문 용어'로 들린다.


'너 누구누구 맞아?'라고 물어보면 당연히 맞다 하겠지. 사기 치는 놈이 '네, 저 사기꾼임' 할 리가 없으니. 차마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녀가 말하는 어플명+사기,라는 제목으로 검색해 보았다. 후기를 보니 적어도 사기는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찾아보고 있는 사이, 지인은 벌써 소개코드까지 내게 보내며 혹시 관심 있으면 시간 날 때 해보라고 한다. 왜 이렇게 적극적이지...?


일단 좀 더 확인해 보려고 '응, 이따 밤에 시간 나면 해볼게' 했는데 결정타를 날린다.


"오늘이 12시까지가 기한이라 오늘 내로 해야 해요"

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지...?


"저는 벌써 받았어요."

이미 만 엔 정도 포인트가 쌓여있는 본인의 포인트창까지 보여준다. 

왜 사람을 혹하게 만들지...?




평소 의심이 많은 나는 그 이후 30분 넘게 한국과 일본의 후기를 뒤져보고 그 어플이 '개인정보 유출의 가능성은 있으나 사기는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개인정보야 이미 팔려있을 텐데 또 팔면 뭐 어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나는 공짜를 택했다. 모르면 몰랐으니 어쩔 수 없지만, 남들도 다 받는 돈을 알고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누가 떠먹여 주는 밥상을 마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초조해져 서둘러 다운받았다. 3000엔의 초대 포인트는 받지 못했지만.


이유는, 몇 년 전에 출시된 이 어플의 형님 버전을 설치했던 이력 때문이었다. 허무했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받지도 못할 포인트를 사길까 아닐까 하며 조사하느라 보낸 시간의 허무를 메꾸기 위해서는 또 다른 희생자(?)가 필요했다.


"포인트 관심 있어?"


남편의 눈초리에 불신의 빛이 아른거렸다. 내가 3000엔 때문에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한다니. 분하지만 할 수 없다. 받을 수 있다면 받아야지. 하지만 남편은 부득불 싫다고 했다. 아니, 내가 설마 네 등을 치겠냐고.


그는 결국 자발적으로 내게 초대를 부탁하게 되었다. 나는 돈이 되지 않은 그 어플을 지워버리려다가 본래의 사용법으로 사용했을 때 포인트가 얼마나 쌓이는지 구경은 해보자 싶어 어플을 열었다. 한 이틀 정도 지나자 500엔 분의 포인트가 쌓였다. 


"나도 해볼까"


하지만 남편 역시 나와 같은 이유로 초대 포인트를 받을 수는 없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음 날은 집에 굴러다니던 공기계를 떠올려 VPN으로 싱가포르로 보내 초대해 보았다. 이것도 안 됐다. 제길, 이것이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된다는 '될놈될 안놈안'인가. 


결국 나는 아까 싱가포르로 보냈던 공기계까지 옆에 두고 양손으로 핸드폰 두대를 조작하며 포인트를 쌓는 쪽을 택했다. 한쪽엔 1200엔, 한쪽엔 500엔 분의 포인트가 모였다. 500엔만 먼저 페이페이(*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QR코드결제시스템)로 옮겨 보았는데 잘 된다.


이렇게 금방 쌓이는 것은 초반 버프일 뿐, 그게 끝나면 하루에 잘해야 70엔분 정도밖에 쌓이지 않는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지만, 이미 공짜에 맛을 들여버린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 틈틈이 손가락으로 동영상을 누르고 있다. 뭐든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 대가를 원하면 그에 상응하는 노동을 해야지. 동영상 누르는 정도면, 어쩌면 70엔은 딱 타당한 금액인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생활비 보전을 위해 쇼핑이나 어플로 포인트를 모으는 활동을 포이카츠(ポイ活)라 부른다. 예전에 토리마라는, 이동거리만큼 포인트를 주는 어플을 출퇴근 때 쓴 적이 있는데 몇 십 엔 단위의 짜디 짠 포인트에 금방 그만두었고 포이카츠에 회의를 갖게 되었다. 이전에 이 어플의 형님 격 어플을 삭제한 것은 개인정보가 팔려나가는 것이 싫어서였다. 내 손으로 돈을 벌 때와 벌지 않을 때의 나는 이렇게나 다르다.


사실 포이카츠보다 더 효과적인 공돈을 버는 법은, 매일 마시는 170엔짜리 술을 그만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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