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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Jul 01. 2024

가재소년

일본 후카야 나카쥬쿠역사공원

뒤쪽으로 보이는 것이 나라시대의 옛 창고들을 복원한 것

엔진오일을 교환하러 가는 길이었다. 길이 막혀 처음 가는 길로 돌아가고 있는데 작은 연못이 보였다. 시간 약속하고 가는 것도 아니라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나라시대의 오래된 창고들을 복원해 만든 역사공원에 딸린 연못이었는데, 원시연이라는 고대종의 연을 식재했다는 짧은 설명문이 입구에 설치되어 있었다. 사실 원시연이 보통 연과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다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핀 것은 핀 것대로 봉오리는 봉오리대로 연꽃 특유의 그윽하고 고운 정취가 느껴진다는 점은 똑같았다. 연못의 얕은 부분엔 수많은 송사리와 손바닥만 한 올챙이들까지 떼 지어 나와 있었다. 참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뜻밖의 생명체들과의 조우에 설레어하며 마저 공원을 도는데, 더 뜻밖의 생명체를 만났다. 미국가재였다.


"아, 이거 어릴 때 자주 잡으러 다녔는데."

"그런데 여기 나와있지? 가재가 원래 이렇게 풀밭도 돌아다녀?"

"こんにちは (안녕하세요)"


가재를 보며 신기해 하고 있으니 초등학교 2학년쯤 됐으려나, 꼭 반들반들한 조약돌처럼 다부지고 똘똘해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모르는 어른에게 인사를 하는 보기 드물게 싹싹한 어린이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가재 주인이었다.


"그거 내가 잡았어."

"오, 대단한데. 어떻게 잡았어?"


가재소년은 모르는 어른에게 인사를 하고, 또 반말을 했다. 소년의 아버지 뻘일 남편은 마치 동네 5학년 형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해 둘의 대화를 보는 것도 어딘가 모르게 좀 재미있었다. 소년은 노끈에 진미채와 돌을 달아 만든 낚시도구를 보여주며 가재를 어떻게 잡았는지 종알종알 설명했다. 그리고 따라오라는 듯 물가로 향했고 우리도 소년의 뒤를 따랐다. 


고개를 숙여 물 안쪽을 들여다보던 가재소년은 어른 가재는 쉽게 잡히지만 어린 가재는 쉽게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어린 가재는 경계심이 강해서 그런가? 몸이 날래서 그런가? 나름의 가설을 주고받으며 가재소년과 함께 물가에서 어른 가재를 찾았다. 가재를 보러 온 갤러리들도 점점 늘어났다.


"가재는 등을 잡으면 손으로도 잡을 수 있어요."


가재소년의 반말이 경어가 되어있을 즈음, 어른들과 그들이 데려온 아이들 10명 가까이가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많은 어른들 틈에서도 침착하게 가재를 낚고, 잡는 법을 보여주는 가재소년에게 '한번 해봐도 될까?'라고 묻는 어른도 있었다. 처음엔 자신의 아이에게 시켜보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본인이 하더라. 가재잡기에는 애도 어른도 없었다.


가재낚시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며 시범을 보이고 있는 가재소년


연꽃을 보러 왔던 사람들은 어느새 가재소년이 연 비공식 가재 이벤트 참가자가 되어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는 어린이들이 뭔가 열심히 하는 모습, 예의 바르면서 당당하게 구는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감동받는다. 그래서 대범함을 가지고 어른들이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하고 자신이 연 이벤트를 리드해 가는 가재소년의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흐뭇했다. 이 친구는 커서 뭐가 돼도 될 아이, 같은 느낌도 들었고 여기서 '50엔 주시면 해보실 수 있어요'라고 상술을 쓰지 않는 것이 천진난만한 어린이답기도 했다.


한 10분쯤 잡은 가재를 보기도 하고, 가재 잡는 걸 보기도 하면서 보냈는데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수도 없어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로 했다. 마지막엔 간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가재소년을 에워싼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우리 간다고 차마 말을 걸기도 어려워져 마음으로만 손을 흔들고 차로 돌아왔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엄청난 아이였어. 그렇지?"

"그래, 덕분에 진짜 귀한 경험했다는 생각도 들고. 리얼 동물의 숲 같았어."


짧은 시간이지만 엔진오일 갈러가던 길이 마치 계획되지 않은 여행길처럼 느껴졌다. 모르는 이와의 즉흥적인 교류가 주는 소소한 즐거움도 오랜만에 다시 느낄 있었다. 그게 어른이든, 아이든간에 우리 삶에서 이런 종류의 교류는 삶의 재미가 되고 때로는 힐링과 영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는 건가. 


밖으로 나가는 게 더 귀찮아지는 여름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밖으로 나가는 시간을 만들어야 겠다. 거리엔 만나봐야 있는 수많은 이들과, 그들과의 교류로 얻어지는 에피소드가 있으니까. 다음번엔 미끼가 만한 것과 주스라도 사서 갈까 보다. 거기서 가재소년을 만나게 되면 그땐 먼저 안녕, 하고 말을 걸고 함께 가재를 낚고 주스를 마시며 가재가 아닌 소년 자신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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