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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Jul 13. 2023

금쪽이가, 은쪽이로

결혼이 나와 우리에게 불러온 가장 큰 변화

7월 7일, 우리 시에서는 칠석(*일본은 양력으로 한다)을 맞이해서 시가 주최하는 소개팅 파티가 열린 날이다. 남편에게는 지자체 이벤트의 역량을 구경 가자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만약 남편과 결혼하지 않고 지인으로 지내고 있었다면, 구경이 아니라 '너 대신 참가신청 넣어놓았으니 잘 다녀와라'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7월 7일, 한국에서는 또 하나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에버랜드에 살고 있는 판다 아이바오가 푸바오의 쌍둥이 여동생을 낳았다는 것이다.

대중에게는 7월 11일에 발표되었는데, 슬슬 태어나지 않았으려나? 궁금해하던 내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기쁜 소식이었다. 좋은 일은 함께 나누랬다. 같이 바다건너에서 한국 판다들을 응원하는 남편에게도 라인을 보냈다.





일본인의 판다 사랑은 유구한 것이나 남편은 판다에 관심이 없었다.


"이번에 중국으로 반환된 판다 이름이 뭐였더라?"

"뭐지? 레이레이?"

"레이레이는 그 애 동생 판다야"

"글쎄, 잘 모르겠는데"


나보다 더 모르던 그가, 내 어깨너머로 푸바오의 성장과정을 눈물 콧물 다 짜가며 훔쳐보더니, 어느새 바오패밀리의 팬이 되었다. (강바오, 송바오, 구구바오, 남천바오까지 외움)


아직도 자기네 나라 판다는 이름도 잘 모른다.


그의 변화로 말할 것 같으면, 김치를 먹게 된 것도 큰 변화 중의 하나일 것이다. 매운 걸 싫어해 색깔이 좀 빨갛다 싶으면 덮어놓고 먹지 않던 그였는데, 얼마 전엔 갑자기 김치를 찾아서 두부김치를 해줬더니 맛있다를 연발하며 뚝딱 먹어치웠다. 요즘 이상하게 김치가 먹고 싶었었다며.


종종 이런 그를 보면서, 내가 얘 엄마면 속에서 천불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삼십몇 년을 같이 살고 길렀는데, 지금 그녀의 아들은 '우리 아들'은 못 먹던 김치를 먹고, 담배를 끊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시던 반주를 주 4일로 줄였다. 일본 드라마는 보지 않지만 한국의 신작 드라마는 공개 시간 맞춰 기다렸다 보고, 일본 유명가수의 신곡은 몰라도, 아이브, 뉴진스의 신곡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는 날은 어디서 그렇게 알아오는 건지, 공개일 당일 저녁 우리 집에선 관객 2명뿐인 프리미엄 감상회가 열린다. 보지도 않는 티브이를 습관적으로 켜두는 대신, 매일 저녁은 티브이를 끈 채 잔잔한 음악을 듣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거나, 듀오링고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바다 건너 외국 판다의 출산과정을 보며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아이바오'라고 중얼거리며 눈가를 훔치기도 한다.


나와 결혼하고 1년 좀 넘는 시간 동안, 시어머니의 아들은 점점 시어머니가 모르는 아들이 되어가고 있다.

혼인신고 후 이사 잘 끝냈다고 라인을 보낸 내게 '남자애라 잔소리하면 싫어해서 그 부분을 주의하면서 키웠어.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뭔가 아니다 싶은 게 있으면 내게 말해줘'라고, 내 금쪽같은 아들 들들 볶지 말라는 건지, 잘못 길렀으니 애프터서비스 해주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는 답장을 하셨던 우리 시어머니는, 잔소리를 하지 않으며 키운 그 아들(들은 바에 의하면 잔소리 많이 하셨던데)에게 내가 얼마나 잔소리를 퍼붓고 혼내가며 키우고 있는지 모르신다. 물론 그녀가 이뤄내지 못한 내 훈육의 찬란한 성과에 대해서도.






물론 나 역시 여러 가지 변화를 겪고 있다.

만들어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던 일본 음식을 만들기 위해 레시피를 옮겨적고, 남편 입맛에 맞추어 요리를 하다보니 예전처럼 소금을 넣지 않은 계란프라이는 밍밍해서 먹지 못한다. 이제까지 한 번도 한 적 없던 '밟아서 이불빨래하기'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하고, 세상 제일가는 집순이지만 인근 이벤트나 로컬 유명 스폿에 (무거운) 발길을 옮겨보기도 한다.


하지만 제일 큰 변화는 따로 있다.


 "에버랜드에 판다 태어났어. 쌍둥이"


좋은 일은 널리 널리 소문을 내랬다.

한국에 계신 엄마 아빠와의 단톡방에도 소식을 남겼다.


5분 후, 아빠에게 답장이 왔다.


"우리 거 아니야. 중국 거임"


나랑 아빠는 성향이 좀 맞지 않는다.

특히 말. 내가 좋은 소식이라고 들떠서 하는 말에, 당신 딴에는 재밌는 말이라고 하시는 거겠지만 내 입장에선 굉장히 '초치는 말'로 화답한다. 그래서 말 한마디로도 자주 싸우고 엄마는 그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해왔다. 가족 단톡방도 몇 번이나 나갔다 들어왔다, 아빠와 서로를 차단했다 풀었다, 난리도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나는 그 한마디에 기분이 상해 "뭐래, 지금 그 얘기 아니잖아. 그리고 소유물처럼 말하지 마"라고 톡 쏘고 단톡방을 나갔겠지만, 이 날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 그렇게 말하지 마. 중국에 반환은 되겠지만, 좀 더 꿈과 희망에 찬 언어생활을 해보자. 뭐든 다 하찮거나 별거 아니라고 흘리지 말고. 그럼 사는 게 다 재미없어지잖아"


아빠에게 예상외의 대답이 왔다.


"네"


아, 한마디 더.


"줄려면 아주 주지"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건 그래."


지켜보던 엄마가 말했다.


"시집가더니 성격 많이 좋아졌네"





 

사람은 사람에게 서로 영향을 끼치며 산다.

어떤 이와의 만남은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켰고, 어떤 만남은 나를 더 모나게 만들었다.

그 수많은 만남이, 이제까지의 나를 만들어 왔다.


결혼은 가장 단기간에,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나, 그리고 우리를 변화시켰다.

남편은 나의 취향을 닮아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게 되며 취미가 늘어났고, 삐쭉삐쭉 모났던 나는 우리 엄마의 '딸보다 오빠 같은 사위'의 유한 성격을 닮아 모 끄트머리가 아주 조금 닳아 둥글어졌다.


이런 변화들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인간이 되어나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내년의 7월을 맞이하게 될까.


마음이 콩캉거린다.


여담이지만 어제 음악방송에 나온 판다 피라니아라는 곡. 하필 우리 집에 판다붐이 불었을 때에 타이밍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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