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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Dec 14. 2023

아닌 밤중에 '따뜻한 삼겹살'

마트 정육코너를 기웃거리며 삼겹살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두꺼운 삼겹살 말고 얇은 삼겹살 (보통 삼겹살을 절반 정도의 두께로 자른 것)을 보고, 카트를 가지고 먼저 앞에 가 있는 남편에게 다가가 '얇은 삼겹살도 있어'란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그 순간 살짝 의식이 돌아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내가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꿈을 꾸면서 잠꼬대를 한 것이다.


잠귀 밝은 남편이 에? 하고 반응하는 소리가 들려 '잠꼬대야'라 말하려는데 잠기운에 취해 입술만 조금 달싹거리다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간밤의 일을 물어보았다.


"새벽에 내가 뭐라고 하는 거 들었어?"

"응."

"나 뭐라고 했어?"

"暖かいサムギョプサル (따뜻한 삼겹살)"


뜬금없이 따뜻한 삼겹살은 또 뭔가.


"뻥 아냐? 웬 따뜻한 삼겹살?"

"나 분명히 들었다고. '아타타카이 사무교푸사루...' 아주 확실한 발음으로 여운을 남기면서 중얼거렸어."


한국어라곤 '왜?'와 아니, 아니야, 아닌데, 의 '일단 부정하고 보자' 시리즈 밖에 모르는, 얄미운 언어생활의 일본산 신랑이다. 그런 그가 등장하는 꿈에서는 꿈에서도 일본어로 대화하고 있나 보다. 꿈에서조차 *호삼호갈하지 못하고 사무교푸사루라니, 현실고증 참 철저한 꿈이로구나. (*일본 사람들은 삼겹살을 사무교푸사루, 갈비를 카루비라 발음한다)


그러고 보니 꿈의 배경이 된 마트도 실제 자주 가는 마트였다.

후루토 켄지와 야지마 코이치가 로컬 야채를 납품하는 그 마트. 

전날 잠들기 전에 '토요일 2시에 프로듀스101 재팬 시즌3 파이널 생방송 봐야 하니까, 장은 금요일에 봐놓고 미리 술 준비 딱 해서 흥 돋구면서 보자'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일까. 삼겹살은 대화 사이사이에 순간적으로 떠올린 그날 안주 후보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는 내 잠재의식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따뜻한 삼겹살이라니. 

얇은 삼겹살이라 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납득이 갔을 것이다. 잠재의식을 꿰뚫은 발성기관의 쾌거다.

남편이 잘못 들었을까? '따뜻한'의 '아타타카이'와, '얇은'의 '우스이'는 음절이 다르다. 게다가 본인이 분명히 들었고 내 발음도 확실했다 하니, 내 따뜻한 삼겹살은 점점 더 미궁에 빠졌다.


차가운 삼겹살과 따뜻한 삼겹살 (?)


"다녀와. 운전 조심하고."


따뜻한 삼겹살의 의문은 뒤로 하고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기 위해 현관에 섰다. 

신발을 신은 남편은 뒤돌아 서서 나를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가여운 사람 같으니... 내가 돈 벌어다가 꼭 따뜻한 삼겹살 사줄게."


제길. 당분간은 이걸로 한참 놀림 당하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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