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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ug 16. 2024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매년 3월 1일, 8월 15일 아침에 하는 게 있다. 대한독립만세,라고 작게 읊조리는 것. 태극기를 걸 수 없는 '왜국(倭国)'에 살고 있지만 조국을 남겨준 순국선열들에게 감사하고 나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잊지 않고자 하는 일이다. 


작년부터는 하나 더 늘었다. 일본인인 남편에게 '오늘 무슨 날인지 아냐'라고 묻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독립을 가져다준 광복절이지만 일본에는 패전의 쓰라린 기억이 있는 날이다.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군에 의한 원폭투하가 먼저 선행되었고 그 결과가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다. 그래서 이날은 그들에게는 종전기념일, 요즘은 그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가 많아 '종전의 날'로 불린다. 사견으로는 '패전의 날'이 그날의 올바른 기억법이라 생각하지만 반성 대신 원폭피해에 포커스를 두는 나라이니 패전의 날이 메인명칭이 되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오봉, 일본의 추석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오봉 기간에 조상들이 집으로 돌아온다고 믿고 오이와 가지로 조상들이 타고 올 말과 소를 만들어 문 앞에 놓아둔다. 제사상 차리듯, 음식과 꽃을 불단에 올리기도 한다. 


지난 주말, 마트에는 이런 것들이 놓여져 있었다


남편은 8월 15일은 어느 쪽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오늘 무슨 날인줄 알아?"


작년에 처음 물었을 때, 시리얼을 입에 떠 넣고 발가락을 까닥거리며 한참 생각하던 남편은 '글쎄?'라고 되물었다. 종전의 날이든 오봉이든, 먹고 사는 데에는 하등 상관이 없는 날 (휴일인 사람도 있는데 남편은 휴일도 아니다)은 기억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날이란 날은 다 기억하는 사람이라 이 남자의 무심함에 내심 놀랐다. 그런 그에게 '오늘은 우리 민족에게 빛이 돌아온 날'이라며 광복절을 알려주었다. (전쟁 일으킨 놈들이 반성은 안 하고 뭔 지들이 기념을 하고 앉아있냐는 핀잔과 함께)


그리고 그다음 날, 다시 한번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인줄 알아?"

"몰라."

"광복절 다음날"

"........."


그리고 6일 뒤, 또 물어봤다.


"오늘 무슨 날인줄 알아?"

"몰라."

"광복절 지난 지 1주일 기념일"

"......"


피곤스러워하길래 그다음 주, 2주일 기념일까지만 하고 그만뒀다.




그리고 1년 뒤, 늦게 출근한다고 아직 이부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이의 귀에 여지없이 속삭여지는 나의 한마디.


"오늘 무슨 날인줄 알아?"

"解放された日 (해방된 날)"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게 이런 것일까? 분명 몰라,라고 대답할 거라 생각했는데, 한국인과 3년을 살면 이런 대답도 할 줄 알게 되는구나. 뿐만 아니라 퇴근하고 와서는 자기 손으로 유튜브 검색창에 '光復節 (광복절)'을 쳐보기도 했다. 어떤 날인지, 어떻게 그런 흐름이 되었는지 알고 싶다며. 


한국인과 일본인인 나와 그 사이에는, 민족이 공유하고 있는 (없어도 되었을) 역사가 존재한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로 가르치고 있고, 애초에 가르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의 정보량 자체가 다르다. 때문에 남편과 그즈음의 이야기를 하면 '아니, 그걸 모른단 말이야?' 같은 게 있다. 불편한 화제는 굳이 꺼내지 않는 한일부부도 있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일본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남편의 생각도 듣고 싶기 때문에 한일관계나 역사, 정치에 대해서는 딱히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다행히 남편도 그런 이야기를 싫어하지 않아 어쩌다 밥상머리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의견을 나눈다.


어제도 그랬다. 두 개로 갈라진 광복절 기념식 이야기부터 시작해 건국절 논쟁,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해방 후의 미군정, 일본이 사과를 하지 않는 이유, 일본이 우려하는 자학사관은 열등감의 발로 아닌가, 왜 일본 티브이에는 유독 우리 일본인 대단하다 같은 방송이 주구장창 나오는 것인가 같은 이야기를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세 시간 동안 우리는 몇 번이나 공감하고, 반박하고, 그리고 삐졌다.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으로 끝냈다.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고 생각한다.) 이 시간을 통해 서로의 생각이나 서로의 나라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었다 (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재미있는 건 다음 날 출근해야 할 때나 하는 걸까? 내일 하면 되는데.

시곗바늘은 1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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