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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Jul 18. 2023

여름의 풍물시, 마츠리

20년만 더 젊었어도


하루하루가 비슷비슷한 일상으로 마무리되는 가정주부에게는 평소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소한 모든 것들이 새롭다. 2층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거실 창문에 붙어있던 달팽이가 그랬고, 어느 집 할머니가 남편 손에 들려준 별모양 오이 한 개도 그랬다. 달팽이에겐 '그냥 정처 없이 걷다 보니 (기어가다 보니?) 여기였어요' 였겠고, '별모양 틀에 넣고 길러 장난 삼아 주위에 주고 있다오'라는 할머니에겐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어 심심풀이로 길러낸 오이겠지만, 내겐 우리 집 방 두 칸 거실 한 칸 안에 던져지는 그 작은 변화들이 그저 반갑고 신기하다.


그런 내게, 지난 토요일은 더없이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날이었다. 4년 만에 마츠리 (祭り, 축제)가 열린 날이었다.






일본의 여름은 유독 분주하다.

각 지자체 별로 크고 작은 마츠리와 불꽃축제(花火大会)가 열리고 유명한 록 페스티벌도 두 개나 개최된다. 방송사마다 앞다투어 음악특방이나 기부방송을 열면서 축제감을 북돋우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비어가든에서 바비큐를 하고, 바다에 가 여름을 즐긴다.


코로나로 멈춰버린 지난 3년간, 군중이 모이는 여름 이벤트는 거의 대부분 중지되고, 여름은 무덥기만 하고 조용하고 재미없게 지나갔는데, 올봄 코로나가 계절성 독감과 같은 5류 감염증으로 분류된 올해는 움직임이 달라졌다. 우리 지역에서도 7월의 여름 마츠리가 4년 만에 재개되었다.


일본 만화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마츠리는 신에게 공물을 바치고, 감사와 염원을 보내는 행사다. 광장에서는 사자춤으로 마을의 악귀를 쫓고, 장정들은 신이 탄 가마 '미코시(神輿)'를 어깨에 짊어메고, 재앙과 부정을 정화하고 사람들의 풍작, 병충해 방지 기원 등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마을 곳곳을 누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특유의 토속신앙적 의미는 퇴색되었지만 지금도 일본인들에게 마츠리는 여름날의 특별한 이벤트로 자리 잡아있다. 마츠리가 열리는 날, 차량이 통제된 거리에는 가마를 멘 동네 장정들 수십 명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큰소리로 구령을 외치며 행진을 계속하는데,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는 익숙하지만 나에게만 낯선 '이 장면, 이 장단, 이 구령소리'를 보고 들으며, 가마꾼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참 멋있게도 느껴지고, 낯선 것에 대해 신묘한 기분이 듦과 동시에, (조금 실례다만) '아니 이 사람들은 그냥도 더운 나라에서 왜 굳이 이런 풍습을 만들어서... 게다가 허벅다리는 왜 내놓고... 또 왜 이렇게 열심히인 거야, 그러다 쓰러져요' 같은 안쓰러움 반, 이해 안 됨 반 같은, 복잡한 기분이 인다.


내 안에서 문화 상대주의와 자문화 중심주의가 격전을 벌이는 것으로 마츠리는 시작되었다.






학생 때 읽던 일본 순정만화에는 마츠리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클리셰처럼 등장했다.


몰래 좋아하던 같은 반 여학생에게 용기를 내어 같이 마츠리에 가자고 한 남자 주인공과, 사실은 이 쪽도 좋아했는데 말을 못 하던 여자 주인공이 유카타 (浴衣, 여름용 기모노)를 입고 꾸민 듯 안 꾸민 듯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조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이란 핑계로 얼렁뚱땅 손을 잡고 얼굴을 붉히며 걷다가 여주가 인파에 휩쓸려 넘어질 뻔한 것을 남주가 붙잡아 주면서 당황하는 두 사람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다가 다음 컷에서는 갑자기 하늘에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20년 넘게 시간을 되돌려도 그들의 동급생은 될 수 없는, 이미 그 사이 너무나도 나이 들어버린 나지만, 여느 순정만화 속에 있었을 법한 노점상의 링고아메, 유카타를 예쁘게 차려입은 소녀, 수줍은 어린 연인들이 있는 마츠리라는 '공간'은 내겐 아직도 동경 어린 장소다. 특히 여름밤의 마츠리 특유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공기감에 몸을 맡기면, 내가 좋아했던 -그러나 지금은 이름조차 잊어버린- 만화 속 캐릭터들의 일희일비에 가슴 떨려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옆에는 비록, 조금 있으면 마흔을 내다보는 남편이 딸려 있지만 말이다.


거리에는 금줄과 시데(紙垂)라는 종이들이 나부꼈다


그 마흔 다 되어가는 남편과는 6시 좀 넘은 시간에 집을 나와 마츠리 회장으로 향했다. 길게 뻗은 길을 따라 짚을 꼬아 만든 금줄과 시데(紙垂)라는 이름의 종이들은 언제 해놨는지 모르게 줄줄이 매달려 있었는데, 신의 영역에 들어가기 전에 부정탄 것을 깨끗이 정화하는 의미로 달아둔다고 한다. 보도가 좁아 머리를 스칠 것 같은 시데를 이리저리 잘 피해 가며 나는 레몬사와, 남편은 맥주 한 캔을 들고 한 모금씩 마시며 앞으로 향했다. 금줄 좀 걸려있고 손에 술 들고 있다고, 그것만으로도 조금씩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마츠리 회장은 도로의 일부를 통제해 만들어졌는데, 안 쪽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보인 것은 미코시 (神輿, 가마)였다. 토요일은 코도모(아이) 미코시, 일요일은 오토나(어른) 미코시가 거리를 행진할 예정이라길래, 토요일은 아가들 파트고 일요일은 어른들 파트인가 했는데, 작은 미코시란 의미의 코도모 미코시였는지, 가마꾼들은 다들 지긋하셨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힘찬 목소리, 경쾌한 발걸음에 나도 모르게 멈춰서 구령에 맞추어 박수를 쳤다.



뜨거운 열기와 큰 함성소리가 가득한 거리 양 옆에는 야타이(屋台, 노점)가 즐비하게 늘어서 다양한 먹거리들로 지나는 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솜사탕, 빙수, 맥주, 야끼소바 같은 여름 마츠리스러운 노점들은 물론이고, 요즘 인스타그램, 틱톡을 통해 인기가 퍼져나가고 있다는 십원빵 노점과, 한국풍 레모네이드 가게도 나와 있었다.


요즘 일본에서는 한국을 한 스푼 끼얹은 것들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요 대축제 같은 음악특방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K-POP그룹들이 세네 팀씩 출연할뿐더러, 자사 아나운서를 한국, 아니 정확히는 한국에 있는 하이브 본사에 보내 이원생방송으로 트레이닝 룸 등 본사 구석구석을 탐방하거나 아이돌 화장을 시켜보는 코너까지 등장했는데, 이런 걸 볼 때마다 쿠다라나이 (くだらない, 재미없다, 별로다)의 어원이 '백제 (쿠다라) 것이 아니면 별 볼일 없다(나이)'라는 설도 생각나고, 한쪽에선 이 난린데 다른 한쪽에선 혐한책이 그렇게 잘 팔리고 있으니, 이 나라는 도대체 한국을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영 알쏭달쏭하지만 어쨌든 관심이 무진장 많은 건 확실한 것 같다.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예전엔 작은 금붕어나 열대어를 수조에 풀어놓고, 종이국자로 떠서 가져가는 '킨교스쿠이 (金魚すくい)'가 마츠리의 놀잇거리 중 하나였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 건지, 이 날은 금붕어 대신 구슬이나 장난감을 떠가는 노점들이 나와있었다. 물고기든 장난감이든 유카타로 한껏 꾸민 꼬마 숙녀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아이들도 그렇지만,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 친구와 맞춰 입기로 했는지 나란히 유카타를 입고 걸어가다 다른 동급생을 만나 여기서 만날 줄이야! 유카타 예쁘다! 하고 반가워하는 모습도 참 흐뭇했다. 한편으론, 동네 전통행사에 어린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하고, 또 이렇게 전통복장을 하고 간다는 것은 일본이 마츠리 문화를 얼마나 후대에 잘 전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부럽기도 했다.


그런 상념에 젖어있는데, 좀 있음 마흔 되는 우리 남편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녀무리가 하하 호호 즐거워하면서 지나가는 걸 발견하면 '쟤 봐, 슬쩍 여자애 어깨에 손 올렸어'라고 속삭이며 눈을 빛냈다. 이 아저씨도 소싯적에 만화 좀 본 모양이지. 주책맞게, 허허.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 손에 든 캔도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다. 평소 눈여겨보던 크래프트 맥주 가게가 낸 노점이 있어, 복숭아향이 나는 맥주를 샀다. 페이페이 (삼성페이 같은 전자결제 시스템)가 되길래 번거롭지 않게 손에 든 핸드폰으로 바로 살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노점은 아직도 현금 온리지만, 전자결제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곳이 생겨난 것도 애프터 코로나다운 풍경일터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마츠리에는, 혹시 모를 사건 사고에 대비해 경찰 인력도 동원된다.

곳곳에 경찰본부라 쓰여 있는 천막을 설치하고, 자동차를 통제하거나 거리를 순찰하느라 많이 바쁘셨을 거다.

날도 더운데 수고 많으셨습니다.



거리에 짙은 어둠이 내리자, 이 사람들이 이적지 다 어디 있다가 이제야 튀어나왔을까 싶을 만큼, 거리는 인파로 꽉 차 발 디딜 틈도 없어졌다. 이런 곳에서 같이 다니다 보면 없던 연정도 싹트지 않을까 싶다 생각하면서도, 빨리빨리의 민족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정체구간이 계속되면서 나는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 좁은 틈만 보이면 나 혼자 앞으로 앞으로 씩씩하게 나아가, 남편이 오길 기다렸다. 연정은 없지만, 의리는 있는, 그것이 부부다.


이 날은 더워서 그런지, 주위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마스크 없이 활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었는데, 코 아래 얼굴 반쪽을 이렇게 사람 많은 길거리에 꺼내놓고 다닌다는 것이 마치 치부를 들킨 것 마냥 부끄러웠지만, 견우야, 나도 어쩔 수 없는 적응의 동물인가 봐. 노 마스크의 수치심은 금세 잊히고, 자유로운 하관생활을 만끽했다. 일상이 아닌 장소에서 오랜만에 느껴본 보통의 삶.


사탕가게
히로시마야끼 (오코노미야끼 비슷한 것)
절인 오이를 막대기에 끼운 것


밤이 되자 저마다 불을 밝힌 노점들 앞으로 허기를 느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길에서 산 음식은 따로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걸어 다니면서 먹거나, 길 한편에 서서 먹거나, 가게와 가게 사이의 보도에 털썩 주저앉아 먹는다. 나와 남편도 한참 줄을 서 곱창볶음을 샀고, 맥주를 더 사려고 줄을 섰다가 허기를 참지 못하고 줄에서 이탈해 은행 앞 공터에 주저앉아 허겁지겁 곱창을 먹었다. 30년 전에 유치원 열심히 다닐 때,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며 먹는 건 교양 없는 행동이라고 배웠는데, 선생님, 오늘도 저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간단히 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면발은 소리 내지 않고 먹어요)  


디지털화된 현대식 미코시와 종래의 미코시

이번 마츠리에서는 총 서너 대의 미코시를 볼 수 있었는데, LED 디스플레이와 전등이 달린 흥미로운 미코시가 있었다. 처음 보는 미코시에 정신이 팔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누군가 남편 등을 톡톡 두드려 돌아보니 회사 동료분이었다. 이번 마츠리에서 미코시를 멘다 하셨는데, 그게 글쎄 이 최첨단 미코시였던 것이다.


남편이 '우리 와이프'라고 나도 소개했는데, 이런 때는 '남편이 항상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게 정해진 인사법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길에서 남편 아는 사람 만나 인사하게 된 것이 처음이고, 마스크도 없는 내 쌩얼에 스스로가 당황한 나머지, 반사적으로 '요로시쿠오네가이시마스 (宜しくお願いします, 잘 부탁드립니다)' 소리가 튀어나왔다. 회사 영업 때문에 강연을 종종 했었는데, '어디 어디 회사의 김이람상입니다' 하고 사회자가 소개하면 '김이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던 게 자동재생된 것이다. 몸이 기억한다는 게 이런 건가.


좀 이상한 소리긴 했지만, 이미 뱉은 말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냥 머리 꾸벅꾸벅하면서 인사하고 나왔다. 나도 이상한 소리부터 해서 민망했지만 카토상도 짧은 반바지 차림이 민망해서 내 인사가 어땠는지 같은 건 기억도 안 날거라 믿고.

 


마츠리의 또 다른 재미는, '사람 구경'이었다.

손님이 줄어 다 죽어가던 이 거리에 이렇게 사람 많고 활기가 도는 건 좀처럼 볼 수 없는 진귀한 광경이다. 그만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마츠리를 즐기고 있었는데, 이렇게 아이들과 나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가족들도 많았다. 오락거리도, 먹을거리도 잔뜩 있고, 평소라면 집에 있을 저녁시간에 밖에 나와 돌아다닐 수 있다니 아이들은 얼마나 신날꼬. 그렇게 한껏 신나 있는 아이 얼굴을 보면 에라 기분이다 아빠의 지갑도 술술 열려주겠지.


나 역시 어렸을 때 엄마 아빠 손잡고 야시장에 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땐 동춘서커스도 보고 요요도 사고 '나 좋았던 기억'만 남아있었는데 그때의 엄마 아빠 나이가 되고 나서 그때의 추억을 돌이켜 보면, 즐거웠던 나 말고도 그런 나를 보며 흐뭇해했을 엄마 아빠의 얼굴도 같이 떠오른다. 나이를 먹었다는 건, 어쩌면 다른 이의 마음도 잘 헤아리게 되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었다는 건, 어쩌면 다른 이의 마음도 잘 헤아리게 되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나, 체력이 없어졌다는 말의 다른 표현임은 확실하다. 6 천보 밖에 걷지 않았는데 이미 집에 오는 길에 완전히 배터리가 방전된 나와, 집에 가서 하이볼 한잔 더 마신다고 탄산수를 사던 남편은, 집에 도착해 씻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20년만 더 젊었더라면,

마츠리를 즐기는 방법도, 느낌도, 체력회복도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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