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보다 더 무서운 것 (15)
"이거 봐봐."
元気?仲直りはした?
(잘 지내니? 화해는 했고?)
남편이 보여준 시모의 메시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에게 손을 올려서는 안 된다'며 곧 내 생일이 다가오니 케이크랑 꽃다발이라도 건네주면 어떻겠냐, 본인이 선물을 들고 와서 내게 사과하겠다 라고 이어졌다.
"今更?(이제 와서?)"
시부모에게 이혼하겠다 문자를 보낸 다음의 일은 일일이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남편 동생 일이 현재진행형인 한, 분쟁은 계속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남편은 누굴 해하려 하거나, 때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들은 내가 맞아서 이혼하려는 줄로 알고 있다. 남편의 원가족을 화두로 한 논쟁이 밤새도록 이어지던 밤,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를 일어서는데 남편이 내 손목을 붙잡았고, 세게 뿌리쳤지만 남편은 놓지 않았다. 손목에는 이내 붉게 붙든 손자국이 피어올랐다. 다시 자리에 앉았으나 대화는 결렬되었고, 나는 이혼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천하태평인 네 부모도 속 좀 아파봐야 한다고, '맞았으니 이혼하겠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손목의 자국은 아직 은은하게 남아있었고, 잡혔을 땐 아팠고, 무엇보다 그 사람들에겐 '때린 아들, 맞은 며느리'가 되어있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시모의 전화에 남편은 무슨 생각인지 때린 적이 없다고 정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모의 머릿속에 여전히 우리는 맞고 때린 사람들이 되어있을 터였다.
그래서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사과하겠다느니, 선물을 가져가겠다느니 하는 것이 굉장히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부부 사이의 일을 시어머니가 대신 사과하겠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굳이 사과를 해야 한다면 더 좋은 타이밍이 있었을 것이다. 내게 한국 여행 플랜 만들라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다음날 무작정 밀고 들어오던 사람이 '걱정이 된다는 이런 일'에는 참 태평하기 그지없다.
결국 그런 정도다. 처음에는 아들엄마의 굴절된 짝사랑이 남의 집 딸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치곤 아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아들 생일에 밥을 사주겠다며 뭐 먹고 싶냐 묻고는 사사건건 반대하다 결국 시모 자신이 먹고 싶은 걸 먹으러 갔듯 본인과 자신의 니즈가 제일 중요한 사람. 다만 뭐, 나보단 아들이 조금 더 예쁘긴 하겠지만.
"진짜로 걱정하는 거 아닐 거야. 괜한 기대 하지 마."
어머니의 라인에 대해, 남편의 온도는 웬일로 서늘했다.
"알아. 아마 너보다 훨씬 잘."
티브이 대신 켜놓은 노트북 화면에는 기능부전가족(機能不全家族)에 대한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남편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숟가락을 드는데 이번엔 시누에게 라인이 왔다.
오빠 부부가 「자신들은 아직 부모끼리의 직접대면, 결혼사진을 찍지 않은 것」을 신경 쓰고 있음, 그걸로 좀 다툼도 있었음→ 식사회에 초대하려 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음→ 아무래도 이 타이밍은 아닌 것 같다 싶어 이번엔 오빠 부부는 안 부르려 함 (오빠네도 OK)→ 그럼 신랑 쪽만 형이 오는 것도 이상하니까, 이번엔 부모님만 모실까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 시간 있어? 전화 줘.
시누의 피로연에 불참을 선언했을 때, 시누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애써 와 주길 바라지도 않지만 부모님께 말할 변명은 함께 생각해 달라'고 했다.
심술이다. 자신이 계획한 일에 '오빠 쪽'에서 처음으로 나온 NO에 대한 심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이벤트, 서른 넘은 성인들의 의지로 열려는 이벤트에 부모에게 할 변명을 필요로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래도 '내가 저 사람 입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얼마나 짜증 나겠는가. 그래서 불참하려는 내가 책임지고 설명하겠다는 데도 부모님 마음 불편해질 거라며 입을 막으려 들더니 이제는 본인 스스로가 이상한 소리를 하려 한다.
부부니까 나도 안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이야기한 남편에게는 신랑 형님도 있으니 인원수를 맞춰야 한다, 오빠가 되어서는 여동생 결혼식에도 못 오냐고 부모님이 타박할 거라느니 뭐니 하더니만, 생각해 보니 부르지 않는 쪽이 낫겠는지 자연스레 남편도 불참으로 가닥 지어졌다. 어차피 하려던 이야기였는데 남편에게는 잘 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효도 차원에서 신랑신부 둘, 부모 넷, 형제 둘과 그 배우자를 불러 단체사진 찍고 밥 먹자는 자리. 나와 우리 부모에겐 그렇게 박하게 굴던 시부모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내 효도도 못하고 있는데 그들의 '효도활동'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아 초대를 거절했지만, 신랑 형의 배우자를 부르는 데에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죄악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시누가 생각해 냈다는 '변명'에 의하면, 나는 마치 웨딩드레스 입고 결혼사진 못 찍어 시기질투하는 인물이고, 그걸 못해서 남편을 들들 볶고 있으며 그 바람에 신랑 쪽 형님네까지 초대하지 못하게 만든 원흉이 되어버린다.
'온 가족이 담겨 있는 행복한 내 결혼사진을 망친 원흉'은 맞을 수도 있겠으나 내 쪽에서 보면 너무 억울한 이야기이다. 먼저 나는 그런 쩨쩨한 이유로 불참하려는 것도 아닐뿐더러 시누의 피로연이 실은 부모와 형제를 모아 놓고 '나는 할 만큼 다 했다'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모두가 찍힌 훈훈한 웨딩사진을 펴보고 싶다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1시간 반이나 걸리는 장소에서 피로연을 할 생각을 하면서 평일에 근무하는 오빠에게 '평일은 안돼? 밤도 안돼?'라고 집요하게 묻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렇게 자신을 위해, 자신이 정해서 하는 일이면 우리에게 그랬듯 제 부모에게도 '그리 정했다'고 통보만 하면 그만일 일이다. 우리가 다툼이 있었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시누가 맛깔나게 각색까지 해서 부모에게 알릴 필요도, 그럴 권리도 없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가 하고 싶어지는 것은 그녀의 머릿속에 '내 계획이 어그러진 것은 100% 쟤 탓'이 강하게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쟤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나를 명백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규탄함으로써 가족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고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유치하게.
부모를 똑 닮은 그녀도, 자기 부모 앞에선 그들의 선택적 애정에 지배되던 트라우마에 갇혀 꼼짝 못 하는 한낱 어른아이에 불과했다.
"나는 와타나베 군 형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은데."
남편이 말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저쪽도 딱히 참가하고 싶은 상황은 아닐 것 같아서.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할지도."
"그럴까."
"어쨌든 내일 전화해 볼게. 오랜만에 평화로운 시간이었는데 망치고 싶지 않다."
핸드폰을 테이블 아래로 내려놓은 남편의 시선은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