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보다 더 무서운 것 (16)
"지적받은 부분에 대해선 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할 거고, 부모 욕이나 오빠 안타깝다 소리 하면서 물타기 할 거야. 근데 그거 다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 아니고 행동이랑 하나도 안 맞는 이야기니까 페이스에 휘말리면 안 돼. 혀가 길다 싶으면 듣지 말고 쳐내고 딱 통보만 하고 끝내. 걔처럼."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마."
집에 '싫은 일' 가져오길 싫어하는 남편은, 또 퇴근길 어딘가에 차를 멈추고 동생과 전화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요전에는 그렇게 1시간 남짓 통화를 하고 와서 갑자기 동생 대변인이 되었다. 사태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9월 한 달간은 참 개똥 같은 기분으로 살았지. 아마 나보다는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개똥이 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 월간 개똥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남편 자신이 원가족들의 영향력을 뿌리치고, 심리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35년 간 가족들 손바닥 위에서 조몰락거려지며 살아오던 사람이지만 이제는 더 꾸물거릴 시간도 없다는 것을, 개똥 같았던 9월이라도 그거 하나만은 남편에게 충분히 알려주었을 터이다.
통화가 길어지는지 남편은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연락이 없다. 설마 일순간에 또다시 '오빠'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겠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생각보다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굳이 평가를 하자면 대화 만족도는 70% 정도'였다고 했다. 시누의 결혼 이벤트에 우리가 불참하는 이유에 대해, 부모에게는 결혼 당사자 부부가 이야기해서 정했다는 흐름으로 하는 것은 별다른 이견없이 받아들여졌는가 본데, 문제는 도쿄에서 만났을 때의 언동이 부적절했음을 지적하자 입씨름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일일이 들어주지 말지 그랬어."
"결국 나는 나잖아. 사람이 말을 하니까 끊지는 못하겠더라고."
아니 그러니까 모질게라도 끊어내야 한다니까! 하려다가 애써 눌렀다. 나와 남편은 다르다. 애초에 이 사달이 난 것도 그의 원가족들이 그를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고. 내 기준에서만 생각하면 또다시 답 없는 싸움의 반복이 될 뿐이다.
"성과는 있어. 이제 연말에 집에 언제 가냐 같은, 자기 계획에 우리 끼워 넣는 건 안 하겠대."
정확히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을 뿐'일 텐데 생색은.
정월에 꼬박꼬박 돌아오지 않았던 시누가 요 몇 년간 했던 당일치기 귀성에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고 부모의 반대 없이 입적함으로써 목적은 성공리에 달성되었다. 피로연이 남아 있었지만 참가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더 볼일은 없다. 연말 근처에 열리게 된다면 내년 정초엔 굳이 얼굴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허술한 그 오빠 눈에까지 '비즈니스 라이크'로 보이는 그녀의 행동은, 참 빤하디 빤하다.
시누에게도 자신의 부모에 대한 '어떤 종류의 감정'이 꽉 들어차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부모와 대척점에 서게 되었을 때 '찍소리도 못하는 점'에 있어서는 남편과 비슷하지만, 훨씬 빨리 그들의 곁을 떠나려 했고, 부모를 이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는 점에서는 또 다른 감정.
시누는 결혼 피로연이라는 형태로 자신이 생각하는 '자식 도리'에 마침표를 찍고 나면, 한동안 친정 문턱을 넘지 않을 것 같다. 남자친구 점수 따기 자리를 만들면서도 제 부모가 헛말이라도 할까 봐 적당히 분위기 흐려줄 인물로 자기 오빠를 오라 가라 이용했듯, 양가 상견례와 식에 꼭 필요했던 부모의 존재도 당분간은 '없어도 괜찮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친정으로 돌아와 출산하는 일이 많으니, 그때 즈음일까. 시누에게 다시 부모가 필요해지는 순간은. 그리고 그 부모들은 그녀에게는 딱히 뭔가 바라는 것 없이 살아갈 것이다. 이제까지처럼.
같은 부모가 낳고 기른, 같은 피를 이은 두 사람이지만, 두 사람도, 두 사람을 대하는 주변인들의 태도도 너무 많이 다르다.
오빠가 왜 '그쪽 편'을 드는지도 알아.
지난번에 보니까 정말 틀린 것 같더라.
어쩔 수 없지. 앞으론 소원해질 수밖에.
한참을 자기변명을 하던 시누는, 이전과 달리 동조하지 않는 오빠를 향해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쪽'이 있으면 '이쪽'도 있을 텐데 시누에게는 누구누구가 이쪽일까? '오빠는 어쩔 수 없이 그쪽 편을 들고 있는 것'으로 이상한 지점에 대고 선을 그으려는 것도, 소원(疎遠) 소리가 다른 이도 아닌 그 사람 입에서 튀어나왔다는 것도 우습다.
저기요. 당신 가족들은 원래부터 소원했고, 그중 제일 소원하게 지냈던 건 멀리 나가 살면서 자기 필요할 때나 가족 찾던 당신인데요.
오빠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었던 것인지, 죄책감을 주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시누는 끝끝내 자신의 무례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말했다던 '이상한 우리 부모'와 '그쪽', 이해는 하지만 '그쪽의 편을 드는 오빠'가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이라며, 자신만 쏙 빠진 채 남 탓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항상 수박 겉핥는 근황 주고받기만 하던 남편은 슬픈 것인지 기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래도 앞으로 이상한 소리는 안 해 올 거야.'라고 했다.
"슬퍼?"
"전혀. 적어도 걔 때문에 우리가 마음 불편해야 할 일은 더 없을 테니 오히려 안심이야."
이전 같으면 남에게 불편한 소리를 했다고 세상 죄 다 지은 것 같은 표정이 되었을 텐데. 그도 이 일들을 겪으며 느낀 것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요즘 보고 있던 심리 카운슬링 유튜브가 조금은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나는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 같지만 다는 안 할게. 근데 딱 이 말만 하게 해 주라."
"뭔데?"
나는 네 여동생도 똑같이 당해봤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무도 그 애를 이해해 주지도 않는 날이 오길 바라. 도리어 네가 이상한 것이라고 손가락질하고 호시탐탐 그녀를 뜯어먹으려고 눈만 희번뜩 하는 사람들만 주위에 잔뜩 있었으면 좋겠어. 아무리 긍정적으로 마음먹으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고, 아무도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는 날들 속에서 자신의 경박한 언동과 경솔한 생각을 반성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
담담한 어조에 어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내용을 입 밖으로 뱉어내고, 그 말들이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얼른 눈앞의 술잔을 들어 쓴맛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