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츠모우데에서 만난 것
2026년 1월 1일, 항상 텅 비어있던 작은 동네 신사에 사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이 동네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살고 있었나 새삼 신기하다.
늘어선 사람들 사이엔 얌전히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강아지도 있었고, 걸음도 불안 불안한 말랑콩떡들은 저 같은 것을 발견하면 다가가 휘휘 손을 흔들었다. 인간은 자기와 비슷한 것을 보면 반가워지는 본능이 있는 걸까. 그런데 나는 왜 이 사람들의 긴 행렬을 발견하고서 으윽, 하고 얼굴이 찡그려졌을까. 그사이에도 뒤에는 사람들은 하나 둘, 계속 늘어났다. 앞은 좀처럼 줄지도 않는데.
하츠모우데(*새해 첫 참배)였다. 최근에야 남편 나라의 풍습을 존중하고 이문화 체험의 일환으로 따라와 야끼만쥬를 뜯어먹거나 오미쿠지도 뽑아보는 등 나름의 재미도 발견했지만, 아직까지도 쉽게 형용할 수 없는 죄책감 비슷한 것이 있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해도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홍참판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듯, 명절기분 내보고 싶은 남편에게 맞춰주러 온 것이라도 신사참배는 신사참배니까.
그래서 가급적 빨리 이 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느덧 신사 입구까지 이어진 줄을 보고 흰 옷을 입은 신관 -요즘 보고 있는 흑백요리사 때문에 백수저 셰프복처럼 보였다- 이 나와 '서너 분씩 바짝 당겨 서세요'라고 외쳤다. 저 앞에서부터 사람들이 이동하는가 싶었는데 바로 앞의 아기 엄마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더 뒤에서 흙장난 중인 아기와 아기 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기는 내키면 엄마에게로 왔고 그때 간격이 반짝 줄어들었다 아기가 어딘가로 가면 엄마는 그 자리에 서서 아기와 아빠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이게 반복되니까 어째서인지 내가 뒷사람 눈치를 보게 됐다. 뒤에 사람들 늘어선 거 안 보이나. 신관 아저씨도 여기 보면서 말하는 거 같은데. 슬슬 짜증으로 변하려던 찰나, 줄로 돌아온 아기 아빠에게 아기 엄마가 말했다.
'사람이 쓰러졌어.'
그와 동시에 앞줄 부부의 남편이 어디론가 움직였다. 구불구불하게 늘어선 줄 건너편에 할아버지 한분이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를 일으켜 나무기둥 아래에 앉게 한 뒤 몇 가지 질문을 하며 상태를 확인하고는 신사에서 내어준 의자까지 할아버지를 데려다주고 자리로 돌아왔다.
여기 서 있던 십오 분 남짓의 시간 동안, 미안하지만 나는 그들을 '1년의 안녕을 빌러 온 이 행렬에서 가장 나쁨에 가까운 사람들 (*나쁨의 중량은 차치하고)'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주최 측의 진행에 협조하지 않고 부모로서 최소한의 컨트롤만 이행하면서 '다름'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여기선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이면서 최대한 다르지 않으려 전전긍긍해 온 나는, 일본인 자신이 만들어내는 그 진동이 너무 불편하다.
사람 사는 곳이니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는 것이 당연하건만, 일본 정부와 미디어 스스로가 '우리들은 성실하고 친절하며 룰을 잘 지키는 착한 사람들'이라고 선전해 대는 통에 나는 삐딱해졌다. 마지막 직장생활을 특히나 그런 풍조가 강한 곳 -그러나 내용물은 그렇지 못했던- 에서 보낸 영향도 있고, 외국인 혐오가 진해지는 요즘 분위기가 나를 더욱더 기울게 한다. 그들이 말하는 외국인 문제가 비단 특정 국가나 민족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란 걸 알기에, 근거 없는 비난의 과잉양만큼을 뚝 떼어 나도 그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진다. 그 부부가 곱게 보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제일 나쁨에 가까운 사람들이 누군가의 불행을 빠르게 발견하고, 서슴없이 다가가 손을 내미는 장면은 내 안에서 댕그렁댕그렁 경종을 울렸다. 사회적 에티켓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공동체에서 선함을 실천하는 것보다 절대적으로 더 중요한 가치일까. 선량함의 기준은 누가, 무엇으로 결정하는 것일까. 어쩌면 나 역시 그들의 선전에 너무 동화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여전히 '다른 사람'일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런 자문을 속으로 곱씹으며 부부를 바라보았다. '당 수치가 떨어지면 종종 이런대. 구급차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한사코 사양해서'라고 부인에게 말하는 아기 아빠와 '괜찮을까'라고 염려하는 아기 엄마의 두 뒤통수가 조금 덜 밉살맞고 조금 더 다정해 보였다.
올해는 안 완벽한 대신 덜 미워하는 방향으로 살아보기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참, 하츠모우데에서 만난 것은 또 있었는데, 2년 전 신사 주변 무덤에서 본 고양이를 다시 만난 것 같다. 눈 옆으로 안경테 같은 줄무늬가 있는 건 비슷한데 미간은 또 넓은 것 같고. 어쩌면 모자나 형제 관계일지도 모르겠지만 같은 고양이인 걸로 하기로 했다.
그쪽이 더 멋지고 안심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