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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Nov 29. 2023

마늘 커뮤니티 데이

단군의 자손

이방인 생활이 길어질수록 내가 '어정쩡인'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 갔을 때, 예전 기억대로 고속도로 휴게소 호두과자 가게에 가 '호두과자 하나요' 했다가 민망해졌을 때가 그랬고 (이젠 전부 다 키오스크 주문이라니!) 식당에서 숟가락 젓가락을 찾지 못해 점원을 불렀을 때가 그랬다 (테이블 옆구리에서 숟가락통이 나오다니!) 지금 살고 있는 나라 일을 속속들이 다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나라는 갈 때마다 뭔가 바뀌어 있어 모르는 것이 점점 더 늘어난다. 물어물어 문제 해결은 어렵지 않지만 여행객도 아닌데 일일이 다 모르고 있는 나 자신도 피곤하고, 왜 이런 것도 모르냐고 면박을 들을까 알게 모르게 위축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부적응의 문제는 있더라도 나는 한국인이고, 앞으로도 쭉 그러할 것이라는 것을 '마늘 커뮤니티 데이' 때마다 생각한다.





한국 사람 하나, 일본 사람 하나가 사는 우리 집에서는 비정기적으로 '마늘 커뮤니티 데이'가 열린다. 마늘 한 망을 사다가 한꺼번에 다져 얼리는 행사다. 커뮤니티 데이라는 이름은 포켓몬 GO라는 게임 이벤트에서 따왔다. 특정의 포켓몬이 대량발생하는 이벤트가 열리는 날을 커뮤니티 데이라고 하는데, 집에 대량의 마늘이 등장한다 하여 남편이 명명했다.


마늘 커뮤니티 데이는 냉동실의 얼린 다진 마늘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열린다. 소비량에 따라 그 시기는 달라지지만 얼추 3, 4개월에 한 번씩 하게 되는 것 같다. 마늘 한 망이라 해봤자 중국산 마늘 20개 정도 들어있는 정도지만 내게는 거의 김장 수준의 이벤트. 때 되면 꼭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일이 되어버렸다.


보통은 마늘을 사다 놓고 하루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뒤 작업에 착수한다. 예전부터 손끝이 젖는 가사를 싫어해 물에 불린 마늘(얼마나 바싹 말렸는지 그래도 까기가 쉽지 않다)을 만지고 껍질을 벗기는 작업이 사실 좀 싫고 귀찮다. 그래서 사 오느라 힘들었는데 내일 하지 뭐, 하고 꾸물텅대다가 다음 날 오후가 되어야나 느릿느릿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귀찮지만 나는 마늘 커뮤니티 데이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일본 마트에 파는 다진 마늘은 조미료로 간을 해놔서 영 입에 맞지 않고, 어디서 그냥 다진 마늘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 몸은 늘 그것을 원한다.


이 이상한 집착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 걸까 생각해 봤는데 한국요리는 마늘 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한국인 자체가 쑥과 마늘로 사람 된 곰이 낳은 단군을 시조로 하고 있기 때문에 DNA에 마늘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농담이다.)


마늘


그래도 나 말고도 일손이 있어 다행이지. 일본인의 식생활에서 마늘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인의 그것보다 훨씬 낮고, 때문에 가정에서 마늘을 한꺼번에 사서 갈아두는 일은 생소한 일일 텐데, 마늘러버 마누라가 차려주는 마늘 밥을 2년 반 째 먹고 있는 우리 집 일본인은 라면 물이 끓으면 일단 마늘부터 넣고 볼 정도로 마늘 친화적인 입맛으로 변했기 때문에 마늘 커뮤니티 데이에도 협조적인 편이다.


"이번 주는 마늘 커뮤니티 데이가 있을 예정이야."


주중에 미리 선전포고를 하면 결연한 얼굴로 전의를 다지는 남편의 주종목은 껍질 까기와 다지기다. 미리 불려 꼭지를 썰고 마늘쪽을 대강 나눠 놓은 보울을 내려놓으면 남편이 노동요를 세팅하고 건너편에 앉는다.


햄스터가 해바라기 씨 까듯, 한국인과 일본인은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마늘 껍질을 벗기다 어느 정도 깐 마늘 스톡이 모이면, 나는 계속해서 껍질을 까고 남편은 야채다지기로 마늘을 다지기 시작한다.



세상에 야채다지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을 때에는 맛없는 마트 다진 마늘로 타협하거나, 간간히 마늘 세 개짜리 한 팩 사다 필요할 때마다 프레스로 으깨서 썼는데 야채다지기와의 만남으로 마늘 커뮤니티 데이가 훨씬 편리해졌다. 곱게 다진 마늘은 지퍼백에 넣고 젓가락으로 칸칸을 나누어 잘 얼려두었다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쓰고 있다. 한국산 마늘과 비교하면 매운맛이 덜하고 향이 옅어 아쉬움도 적지 않지만


아름다운 마늘


김장날에 굴과 수육, 막걸리가 따라오듯, 마늘 커뮤니티 데이에도 보상이 있다.


마늘 커뮤니티 데이의 보상


다 갈지 않고 남겨둔 마늘을 쫑쫑 편마늘로 썰어 넣고 감바스 알 아히요를 만들거나, 돼지고기와 함께 구운 마늘을 상추에 싸 소주와 함께 털어 넣는다. 간혹 가다 전기밥솥에 블록 삼겹살, 파, 양파, 배춧잎과 통마늘을 함께 넣고 무수분 수육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이번엔 기왕 수육 만드는 김에 김장 기분도 내보겠다고 같은 날 김치까지 새로 담갔다가 몸살이 났다. 겨우 마늘 스물몇 개 까고, 겉절이 같은 김치 좀 만들었다고 몸살까지. 하, 운동을 안 하니 체력이 이렇게 밑바닥까지 떨어졌구나. 아침 산책이 심신건강에 그렇게 좋다는데 앞으로 고려 좀 해봐야겠다. 아차, 지금은 추우니까 날 좀 따뜻해지고 나면. (내년에)


2023년의 마지막 마늘 커뮤니티 데이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마늘은 대부분 아오모리 현, 수입산은 중국산 아니면 스페인산인데 내년엔 한국 마늘이 수출판로를 넓혀 일본 마트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다진 마늘이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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