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람 Nov 22. 2023

오늘은 좋은 부부의 날

오늘은 11월 22일, 일본에서는 '좋은 부부의 날'이다.


왜 하필이면 오늘인가는 고로아와세 (語呂合わせ)와 연관이 있다.

고로아와세란 글자를 발음이 비슷한 다른 문자나 숫자로 바꾸는 말장난인데 우리나라에도 있다. 옛날 고리짝 시절 짝사랑하던 같은 반 친구 삐삐에 몰래 012486 (영원히 사랑해)를 찍어 보내던 것도, 치과 전화번호 끝자리로 2875 (이빨치료)가 선호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가 숫자를 일, 이, 삼, 사 (한수사)라고도 읽고, 하나, 둘, 셋, 넷 (고유수사)으로도 세듯 일본어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숫자를 센다.

그래서 한수사로 읽으면 1은 이치, 2는 니, 고유수사로 읽으면 히토(츠), 후타(츠)로 읽는데 고로아와세를 위해 각 발음의 첫 글자를 따면 1은 이 또는 히, 2는 니 또는 후로 치환할 수 있다. 11월 22일을 구성하는 숫자 1,1,2,2를 이와 후로 치환하면 이이후후,  '이이 후-후(いい夫婦, 좋은 부부)'와 발음이 비슷한 것에서 착안해 11월 22일이 좋은 부부의 날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좋은 부부가 되자는 의미로 11월 22일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거나, 새로 산 자동차 넘버를 '1122'로 지정하기도 한다. 이전 회사에 여러 이유로 꼴 보기 싫은 부부가 하나 있었는데 사귈 때부터 주위사람들 무시하고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결국은 결혼기념일과 새 차 둘 다 1122로 통일하는 기염을 토했다. 싫은 것들이 유난스러운 짓만 골라한다고 속으로 웩웩 꾸웨에엑 토하는 시늉을 했는데, 그 바람에 남의 결혼기념일과 차 번호는 7년째 잊히지도 않는 기염을 토하게 된 것은 내 쪽이다. 싫어할 짓을 한 남을 싫어해서 괴로워 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니. 뭔가 억울하다.






그러던 것이 나 자신이 부부라는 2인 단체에 정식 가입한 이후로는 그 싫은 사람들보다 '좋은 부부란 뭘까?'를 생각하게 되는 날이 되었다. 올해가 내겐 제2회 좋은 부부의 날인데 작년에는 좋은 부부의 해답을 찾지 못했다. 올해는 참고를 위해 우리 부부의 구성원 중 다른 한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좋은 부부의 정의는 뭘까?"

"사이좋은 부부 아닐까?"

"사이가 좋다는 기준은 뭔데?"

"(철학자 김이람은 좀 피곤한 사람이다...)"


괄호 안의 말을 속으로 삭여야 하는데 라인 메시지로 보내왔기 때문에 대화는 빠르게 결렬되었다.






물론 부부 두 사람 마음이 척척 맞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면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건 사이가 좋은 부부이지 그 자체를 좋은 부부로 보기엔 좀 그렇다. 좋은 사람이 나와 사이가 좋을 수는 있겠지만, 단순히 친하다고 해서 다 좋은 사람이라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어떤 부부가 있다 치자. 둘은 정말 서로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한다. 그렇게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 바람에 와이프 타고 내리기 좋으라고 바깥에 나가서는 주차 스페이스 두 칸 차지해 주차하고, 우리 남편에게 실수로 다른 음료를 내놓은 카페 점원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하라고 도끼눈 뜨고 언성 높이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서로 아무리 사랑하고 찰떡궁합이라 해도 좋은 부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서로 방생하지 말고 오래도록 백년해로하라는 생각은 들겠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좋은 부부란 그 둘도 사이가 좋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둘 사이의 따뜻함을 타인에게도 베풀 줄 아는, 인격적으로 성숙한 두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좋은 사람 곱하기 2 같은? 허들이 높아 나는 평생 좋은 부부 소리는 못 들을 것 같다.


대신 소망이 있다면, 더 나이가 들더라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1년에 두어 번 크게 투닥투닥하긴 하지만 (놀랍게도 이제까지 큰 싸움의 원인은 전부 한 가지였는데 그게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눈이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춤을 추고는 신나게 깔깔거린다거나, 서로 놀리고 놀려지며 칠푼이 팔푼이처럼 웃다 지쳐 잠들 수 있는 이 모습 그대로 함께 늙어가고 싶다.


가끔은 둘이서 착한 일도 하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골 친정집에서 보낸 3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