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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Nov 21. 2023

시골 친정집에서 보낸 3주

이러니 일본으로 돌아오고 싶었겠는가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던 부모님이 '나이 들면 시골에 가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라 하셨을 때, 난 그게 그냥 빈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집과 밭을 빌려 사부작사부작 고추와 깨, 배추, 닭 이것저것 키워보던 부모님은, 아예 그 옆동네에 땅을 사 손수 집을 지었다. 아니, 무슨 두꺼비한테 헌 집 주고 새집 삥 뜯는 것도 아니고, 기술자도 아닌 사람들이 무슨 집을 짓고 있냐 하니 건축 일을 오래 하신 삼촌의 도움을 받아가며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몇 주 뒤, 새 집 사진과 주소가 카톡으로 도착했다.

코로나 2년째, 외국에 오고 가려면 가서 2주, 와서 2주, 격리만 한 달을 해야 하는 때였다. 

그래서 작년 겨울에나 보러 갔는데 그땐 딱히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오, 진짜 집이 지어졌네, 정도의 감상은 있었지만 짧은 체재 기간 동안 처음 한국에 간 남편에게 한국 구경도 시켜줘야 해서 느긋하게 집을 돌아보고 공간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3주간 친정에 가면서 그 집의 진가를 알아보게 되었다. 


컵에 굿나잇이라 쓰여있지만, 들어있는 건 모닝커피라는 아이러니


그 3주 간, 나의 매일은 비슷한 루틴으로 흘러갔다. 


7시경 눈을 뜨면 1층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원래 아침을 잘 먹지 않는데 '그래도 좀 잡숴봐'란 성화에 못 이겨 한술 떠 입에 밀어 넣는다. 반찬은 배추김치, 파김치, 감자볶음, 가지볶음, 고구마 줄기 무침, 절인 풀, 볶은 풀, 무친 풀. 눈을 감으면 입 안에서 우리 집 텃밭이 펼쳐질 것 같은 온통 풀밭 식탁인데도 엄마의 집밥은 항상 맛있게 느껴진다. 안 먹겠다던 아침은 리필까지 두 그릇을 퍼 먹었다. 처음부터 먹겠다고 나섰으면 식탁까지 뜯어먹었을 판이다. 그렇게 아침식사를 끝내고 나면 식탁을 정리하고 커피를 내려 베란다로 향했다. 


아직 어수선한 베란다에는 낡은 좌식 소파가 하나 놓여 있는데, 강아지들이 여기 올라가 따뜻한 햇볕을 쬔다. 먼저 온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따뜻한 볕 쬐며 눈을 가늘게 뜨고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은 나도 매한가지이기에 비좁은 틈에 일단 엉덩이부터 들이밀고 앉아본다. 강아지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움직이는 순간 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자리를 뜨지 않는다.


서로 몸에 힘주고 밀어내는 중
"긁어" / "시원하세요?"


한참 자리싸움을 하다가 타협점을 찾고 나면 (35살 더 먹은 내가 참아야지) 강아지들은 은근슬쩍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기 위한 본심을 드러낸다. 얘네들도 눈치가 빤해서 어느 날 갑자기 굴러들어 와 함께 사는 내게 묘하게 고압적으로 군다. 가만히 있다가도 내 팔을 벅벅 긁으며 머리를 쓰다듬어라, 목을 긁어라, 잠시라도 손이 쉬는 꼴을 보지 못한다. 이걸 다섯 마리 골고루 번갈아 해주고 나면 만족한 멍멍이들은 내 손을 떠나 각자 해도 쬐고 물도 마시며 개인 시간을 보내고, 나는 


고운 털옷

고운 털옷을 하나 지어 입게 된다. 

몇 개 손가락으로 떼어내다가 이내 포기한 나는 다 못 마신 식은 커피를 한 입에 털어 넣고 잠시 햇볕을 쬔다. 그리고 찌뿌둥한 몸도 풀어줄 겸 텃밭에 구경 나갈 준비를 한다. 


유니폼이 된 수면바지


사실 텃밭을 돌보는 일은 내가 자고 있던 사이 다 끝나 있어서 딱히 할 일은 없었지만 매일 밭에 나가 보는 것은 3주 간 내 삶의 낙이기도 했다. 그냥 그렇게 나가 쳐다보는 게 좋았다. 아까 커피 마신 컵을 물로 대충 헹구어 내고, 이번엔 맥주를 따라 들고 장화에 발을 밀어 넣었다. 고구마밭에 있다는 뱀에게서 내 발을 지키기 위해서다. 맥주는 갑자기 뱀을 만나도 놀라지 않을 마음의 담대함을 위한 것이고. 절대로 내가 술꾼이라서가 아니다. 



마당과 연결된 텃밭은 생명의 보고. 열무, 고추, 깨, 파, 가지, 배추, 고구마. 작은 하우스 안에는 애호박과 단호박이 자라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 햇빛에 빛나는 채소잎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흙에 심고, 물 주고, 해만 쬐이면 이렇게 쑥쑥 자라 열매까지 맺다니. 이 집 농사 잘 짓네. 자식 농사 빼고 (네, 제가 그 자식 농사의 산물입니다)


밭구경은 아주 재미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이파리, 꽃, 부풀어 오르는 열매, 잎에 닿는 햇빛의 양, 각도, 사이사이를 날아다니는 작은 벌까지, 매 순간 같은 씬은 없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밭의 표정은 생생하고 에너지로 넘친다. 맥주가 꼴깍꼴깍 넘어간다. 절대 내가 술꾼이라서가 아니다. 







밭과는 별개로, 다육이들이 옹기종기 자라고 있는 몇 개의 화분이 늘어서 있던 엄마의 작은 정원도 내겐 좋은 볼거리였다. 우리 집 다육이들은 여름을 나며 절반이 세상을 뜨고, 생존자들은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중이라 바깥에서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엄마의 다육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당에 개수대와 화구가 있어, 집에 있는 동안에는 바깥에서 삼겹살도 여러 번 구워 먹었다. 야채는 전부 밭에서 공수해 왔다. 일본에서는 귀한 깻잎 (상추는 어느 마트에서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깻잎은 드물다)을 실시간으로 아낌없이 따다 먹는 그 맛. 누가 알았으랴. 깻잎에 이렇게 기뻐할 날이 올 줄을.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직접 구해다 먹는 재미가 있었다. 자급자족의 맛이랄까.  



고양이들에게는 스트레스였겠지만, 마당 고양이들도 하루에 두어 번 씩 따라다녔고, 


빗만 갖다 대면 눈을 감고 온몸으로 빗질을 즐기는 아이가 있었다. 


강아지들하고 놀던 것도, (아까는 귀찮은 듯 말했지만) 사실은 너무 좋았다.

전에는 짧게만 있다 가서 끝끝내 친해지지 못하고 헤어졌지만, 이번엔 오래 있어서 그런가, 으윽, 하고 쓰러진 척했을 때 다섯 마리 중 두 마리는 쇼하지 말고 일어나 머리나 쓰다듬으라고 쓰러진 내 손에 자기들 머리를 집어넣는 정도까지 관계가 발전했다. 


사실 시댁에도 친정 강아지들이랑 같은 나이에 비슷한 견종의 강아지가 있는데, 경계심이 허물어진 이후의 행동을 비교해 보면 친정 강아지는 내 친동생 같고, 시 강아지는 시누 같은 느낌이 든다. 뭐랄까, 거리감이 다르달까. 어쩌면 내가 편안해하고 불편해하는 기색이, 사람에게는 들키지 않을지언정 감각이 예민한 강아지들에게 전부 다 읽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침저녁으로는 이미 쌀쌀했던지라, 저녁 무렵에는 찜질방에서 난로를 피워 몸을 녹이기도 하고 (1월에 한국에 갈 건데 그때 제일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달팽이 사냥

저녁을 먹고 나서는, 배춧잎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달팽이를 잡았다. 

달팽이는 낮에는 어디 숨어있다가 깜깜한 밤이 되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만찬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 수가 무려 수십 마리에 달했다. 






이런 전원생활에도 불구하고 그 3주간 가장 많이, 그리고 정기적으로 한 일은 가사활동이다.

엄마가 마실 나가면서 이거 해, 저거 해 하는 걸 하다 보니 어느새 빨래와 설거지, 청소는 나만 하고 있었다. 어... 엄마, 옛날엔 '이런 거 지긋지긋하게 할 테니 집에서부터 할 거 없어'라고 했었잖아. 근데 지금은 왜 나만 하는 거야? 엄마가 웃음으로 얼버무리더니 티브이나 봐야겠다며 방으로 쏙 들어갔다. 엄마! 어디가 엄마! 


시골집에는 하나 특이한 가사가 있었는데, '파리 잡기'다.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는 대자연과 함께 하는 삶은 좋았지만 그 대자연의 원 안에는 파리도 함께였다.

천장에 파리 잡는 끈끈이도 몇 개인가 붙여 놓았지만 이미 포화상태라 틈틈이 수동으로 방역작업을 해야 했다. 손이 닿는 위치라면 파리채를 휘둘렀지만 천장으로, 벽 높은 곳으로 피해 인간을 농락하는 파리는 진공청소기에 수감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되지 않아 파리 미라가 되었다. 


그리고 3주는 바람처럼 흘러갔다. 






그렇게 엄마 아빠가 지은 집에서 리틀 포레스트 비슷한 생활을 하고 왔더니 내 손으로 일구고 거두는 삶에 대한 동경이 움텄다. 물론 그 유유자적한 생활감의 이면에는 그저 살짝 훑고만 지나간 나는 다 알 수 없는,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정리라든가, 생활유지를 위해 필요로 되는 노동력, 자급자족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생활유지, 복잡하고 오묘한 시골의 인간관계 같은,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요 근래 맛볼 수 없었던 투박하고 거친 안정감과 상냥한 시간이 너무 달콤했기 때문에, 지금부터 잘 준비해서 아주 먼 훗날에는 엄마 아빠의 손길이 구석구석까지 닿아있는 그 집을 계속해서 닦고 가꾸며 살아가는 것도 꽤 괜찮지 않은가,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실현에는 남편의 동의도 필요하다.

'아니', '아닌데', '아니라고'만 쓸데없이 유창하고 그 외의 한국어는 지지부진한 우리 남편, 그 사람의 동의 말이다.


"나중에 그 집에서 사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나는 처음 가봤을 때부터 거기 살고 싶었어."


오오.


"진짜? 한국에서 살면 어쩌면 죽는 것도 한국이어야 할 수 있는데?"

"난 요보(여보라고 하고 싶었을 것이다)랑 같이 있으면 한국에 묻혀도 괜찮아."

 

오오. 

됐다! 됐어!


"그럼 아예 지금부터 가서 아빠랑 사과 과수원을 해보는 건 어때? 그럼 엄마가 그 사과로 잼을 만들고, 나는 그 잼을 인터넷으로 팔아서 생활하는 거지!"


신이 나서 희망에 찬 미래를 그려나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남편이 한숨을 내쉬었다. 


"삶은 동물의 숲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아."


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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