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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람 Aug 16. 2023

다육이 꺾꽂이는 괜히 한 것 같다


기르던 다육이 줄기가 뿌리에서부터 말라 오는 것을 보았다.

이파리가 쪼글쪼글해 물을 주었을 뿐인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요즘 볼 때마다 쪼글쪼글해 그 때마다 물을 준 것 같기도 하다. 쪼글쪼글하니까 물을 더 마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을 못 마시고 있는 거였다. 남아도는 물은 뿌리를 조금씩 썩히고 있었다.


처음 다육이를 길러보면서, 알음알음 분갈이도 해가며 소중히 길러오던 아이였기에 속이 상했다. 그러다 불의의 사고로 떨어졌던 이파리에서 저절로 새 생명이 틔워졌던 걸 기억해, '잎꽂이가 될 정도면 꺾꽂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휴, 잎꽂이, 꺾꽂이. 국민학교 실과 시간의 지식이 아직도 살아있다니.


인터넷을 찾아보니 된다고 하길래 꺾꽂이를 시도했다.

다육이에게 여름은 생장 휴지기라 꺾꽂이를 피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줄기를 뎅겅 자르고 난 뒤에나 알았지만, 그냥 놔두어도 서서히 말라죽어갈 뿐이었으므로 딱히 다른 방법도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식물의 생명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것도 날 위한 위로지만)


인터넷에서 본 대로 상하지 않은 부분의 줄기를 자른 뒤 잘 말렸다. 자른 다음 바로 심으면 흙 속의 세균이 번식한다나. 같은 종이 예시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사람 상처에 흙 뿌리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해 보면 말리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상상만 했는데 얼마 전에 감자칼로 썰어버린 내 손톱껍질이 시큰시큰 아파오는 것 같았다. (엄살)


그렇게 일주일 정도 말리면 뿌리가 나올 거라 했는데 우리 집 다육이 줄기에서 뿌리가 나올 것 같은 기색은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뿌리는커녕 애 죽이겠다 싶어 다 먹은 푸딩통을 화분 삼아 새로 산 다육이용 흙을 부어 심어 주었다. 잎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이 가여워 스프레이로 물도 살짝 뿌려주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는 것을 안 것은 며칠 후였다.

또 줄기가 밑동에서부터 말라오기 시작했다.






나의 애정은 때때로 그러하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도, 위하려는 마음이 지나쳐 오히려 독이 될 때가 있다.

때로는 적절한 거리 두기가 나와 상대방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가장 좋은 길일 수도 있는데, 나의 기준, 나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해석해 '내가 좋은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고 착각해 버릴 때가 있다.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

읽히고 싶은 글을 쓰고 싶은 것이라면, 읽는 이가 읽고 싶은 것을 쓸 줄도 알아야 하는데, 읽히고 싶은 글을 쓰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내가 쓰고 싶은 것만 쓰니 읽힐 리가 있나. 아- 근데 대체 뭘 쓰면 읽고 싶은 글이 되는 걸까요.


다육식물을 기르며 생명의 신비, 적절한 무관심과 거리 두기의 소중함은 깨달았지만, 그 현자같은 다육이들도 내가 뭘 쓰면 좋을지 까지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칫.






또다시 마른 줄기를 자르고 (웃자란 바람에 줄기를 몇 번이고 자를 수 있었다는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다시 한번, 이제 정말 마지막 꺾꽂이를 했다. 작아져 버린 줄기가 안쓰럽다. 차라리 그냥 놔두는 편이 이 아이에겐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괜히 꺾꽂이는 해가지고, 나 자신에게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아 흙을 봉긋하게 모아 다독였다.


이번엔 물은 주지 않았다.


한 번의 실패로 얻은 교훈이 이번에는 꼭 빛을 발하길.  




아침부터 감상적인 기분이 되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이번 주 중에 첫 브런치북을 완성하려고 마음먹은 나와, 귀찮고 막막해하는 또 다른 나의 내적싸움에서 '귀찮막막이'가 이기고 있다는 증거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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