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자는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내면의 문을 열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현자는
그 문은 이미 열려 있으니
마음을 굳이 청정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이 말들은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상근기인 사람은
마음이 이미 맑아
누군가 내면의 문을 찾으라 일러주면
그 의미를 바로 알아차리고
곧바로 그 문을 바로 찾는다.
하지만 상근기는 극히 드물어
모두가 이 방법으로 수행하려 한다면,
장님이 문고리를 더듬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중근기인 사람은
마음이 아직 어두워
스스로 수행을 통해 마음을 청정히 해야 하며,
그 이후에야 눈이 맑아져
내면의 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근기인 사람은
자신이 무명에 빠져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들은 성자의 가르침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자각하고 수행의 마음을 품는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하근기에 속한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기에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내면의 문을 여는 빠른 길이 있다며
무조건 따르라 말하는 이들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현자들은
사람의 근기에 따라
알맞게 길을 제시해 주는 이들이다.
아기도 걷기 위해선
걸음마부터 배우듯,
수행도 그렇게
조심스럽게 시작해야 바른 길로 갈 수 있다.
상근기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분들은 이미 수많은 생 동안
끊임없이 수행을 해온 분들이기에,
더 이상 걸음마를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혹시 자신이 어느 근기인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수행을 해보면 된다.
스스로 경험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미 걸을 수 있는 사람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면,
그건 오히려 시시하게 느껴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