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by 마음농부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더 깊어졌다.
두려움 너머에는 고요한 자유가 있었다.


명상 중 떠오른 하나의 단어.

사망유희(死亡遊戱).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 단어에는 어떤 깊은 공포와 자유가 동시에 담겨 있는 듯했다. 죽음을 놀이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건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죽음을 관념으로부터 해방된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즈음, 나는 실제로 죽음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경험이 있었다. 응급실에 혼자 걸어 들어가 검사를 받고 긴급한 시술을 받았는데,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상태에서는 의식을 잃은 채로 실려오며, 종종 생명을 잃는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의식을 잃는 이유는 인간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통증을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이전까지 병원을 자주 찾은 적도 없고, 큰 병을 앓아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통증에 대한 감각이 무지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날은 가슴이 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너무도 괴로웠지만, 시간이 새벽이었기에 가족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방을 나왔다. 그 통증을 호흡하며 지켜보았고, 온몸에 땀이 젖을 정도로 무릎을 꿇고 버텼다. 그럼에도 정신을 붙들고 있었던 건, 아마도 평소 명상으로 익힌 '고통을 관찰하는 힘' 덕분이었을 것이다.


다음 날, 이 사실을 들은 가족은 무척 화를 냈다. “그렇게 아팠으면 깨워서 말이라도 했어야지, 혼자 병원에 걸어갔다는 게 말이 돼?”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막상 죽음을 눈앞에 두면, 영화처럼 지난 장면이 떠오르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스치듯 지나갈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없이, 그냥 무념무상의 상태가 찾아왔다. 마치 전원이 꺼진 듯한 텅 빈 의식—그것이 내가 느낀 죽음의 문턱이었다.


모든 것이 끝난 뒤, 환자복을 입고 병원 정원을 걷고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심장은 가만히 있어도 뛰고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살아지고 있었다. 삶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나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는 어떤 커다란 흐름처럼 보였다.


그때 떠오른 한 문장. “사는 것이 기적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그제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감각은 두려움을 넘어서, 삶 자체에 대한 깊은 감사로 이어졌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완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그 부족함이 만들어낸 두려움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이미 자유롭고 충만한 사람에게는, 삶도 죽음도 하나의 놀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망유희'라는 단어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삶의 마지막도 허용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배우고 있다.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