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지식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해준다.
명상을 하면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된다.
물이 끓기 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가, 끓기 시작하면서 수증기가 발생하듯이, 마음이 안정되고 집중력이 높아지면 몸의 기운이 한 곳으로 모이고, 이 기운이 움직이며 다양한 현상과 작용을 일으킨다.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면서 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동양에서 말하는 삼단전(상단전, 중단전, 하단전), 인도와 서양에서 말하는 세븐 차크라의 의미를 체험을 통해 알게 된다.
처음 ‘차크라’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는 신비롭고 관념적인 개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명상이 깊어지면서부터 그것은 더 이상 이론 속 개념이 아니라, 몸을 통해 직접 경험하는 생생한 흐름이 되었다.
명상 중 하단전이 강하게 열리며 몸 안에서부터 기운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로 마치 정해진 순서인 듯 차크라들이 하나씩 자연스럽게 열리기 시작했다.
차크라가 열릴 때마다 각기 다른 감각과 체험이 일어났다. 따뜻한 기운을 느낄 때도 있었고, 불처럼 뜨겁거나 시원하고 청량한 기운을 경험하기도 했다. 때로는 눈을 감아도 빛이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고, 강한 정화의 감정이 함께 일어난 적도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꿈속에서는 상징적인 존재가 등장하거나 다양한 세계와 장면을 보는 경험도 했다.
이러한 체험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마음으로, 의식 전체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체험을 마치고 나서 경전이나 책의 내용을 찾아보며 확인하고 그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체험이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그 의미를 공부하며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동양의 삼단전과 서양의 차크라는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몸에서 일어나는 동일한 현상을 설명한다. 삼단전의 입장에서는 삼단전의 작용이고, 차크라의 입장에서는 차크라의 작용일 뿐이다. 몸 수행을 통해 차크라가 열리면 좋은 점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깊은 명상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몸 수행의 진정한 목적은 차크라나 단전의 개방 그 자체에 있지 않고, 마음 수행을 위한 몸의 정화와 마음의 안정에 있다. 단전이나 차크라가 열렸다고 해서 수행이 끝난 것은 아니다. 종종 사람들은 단전이나 차크라가 모두 열리면 수행의 완성을 선언하지만, 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자신이 스스로 움직일 힘을 얻었다고 착각하여 정작 자신을 흔드는 바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음은 찰나에 일어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마음을 대상으로 명상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마음은 에고가 작용하여 진실을 왜곡할 수 있지만, 몸은 있는 그대로 드러나기에 몸을 먼저 수행한 뒤 마음 수행으로 나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알아차림 명상에서는 몸(身), 느낌(受), 마음(心), 현상(法)의 네 가지를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반드시 몸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으며, 마음에 집중이 잘 되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마음을 대상으로 명상해도 무방하다.
차크라가 열리지 않거나 특별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몸과 마음의 정화 과정은 사람마다 속도와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명상은 지식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