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신뢰-랄프 왈도 에머슨 : 내 안의 빛을 찾아서
"우리는 우매한 군중에 불과하다. 집에 머무르면서 내면의 큰 바다와 소통하라는 충고는 듣지도 않고, 대신에 밖으로 나가서 남의 항아리에서 한 접시의 물을 구걸하는 식이다."
200년 전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였던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기신뢰에 나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빛이 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법칙에 지배받는 우리의 오감을 넘어선 세상의 진리이다. 이 세상을 비로소 인식하고 느끼는 자가 없다면 모든 세상도 없다.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고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세상이 생겨났고, 사람은 그걸 채워갔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생각과 상상의 결과이다. 지구상에서 관념을 물질로 바꿀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관념을 현실화하는 능력은 창조의 모습이다. 인간이 신의 모습으로 만들어졌기에 그렇다.(창세기 1:26-27)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신성(神聖)이 있다. 사람에게 신성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그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깥에 있지 않다. 내면에 있다. 이것이 성경부터, 불경, 우파티샤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지나간 수많은 신학자, 철학자, 사상가의 이야기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부정할 수도 있다. 플라톤과 칸트, 니체의 생각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으로 정리할 수도 있다. 자기 자신만의 언어로 기존에 없는 관념을 재정의하는 것 역시 당신에게 신성이 있다는 근거가 된다.
"집에 혼자 머물러라"
에머슨 선생님의 이야기는 진짜 세상과 고립되어 혼자 살라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걱정, 불안, 결핍 같은 것들에 휘둘리지 말고 정신적으로 고적한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인간관계, 돈, 나라걱정, 미워하는 감정, 투자, 가족의 건강, 내 건강... 말고 또 있나?
모든 걱정과 나쁜 생각들은 외부에서 온다. 내부에서 발현되지 않는다. 그들의 혼란일 뿐이다. 스스로 그 혼란 속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어려운 이야기이다.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고적하게 있기가 너무 취약한 현대사회의 구조 때문이다. 손 닿는 곳에 스마트폰이 있고, 일어나자마자 미국주식 가격을 확인한다. 뉴스를 보면 불안하고 아슬아슬해보인다. 유튜브에는 영앤리치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뜬다. 세상은 먼저 나아가는 것 같고 나는 그대로인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소식이든 그것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이 지금 무언가로 고통스럽다면 아마도 당신이 걱정하는 대상의 거의 대부분은 사실 지금 이 순간의 삶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만약 그 대상이 조만간 있을 어떤 사건 때문이라면 걱정을 없애는 방법은 쉽다. 그것과 관련된 일을 지금 당장 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걱정과 고민에서 해결되는 방법은 내 안의 신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외부와 차단되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면 그 모든 문제들은 "온 세상이 당신을 괴롭히려고 작정한 것"이 될 뿐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내 곁에 가까이 다가올 수 없다. "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의 내면의 크나큰 바다를 무시한 채 답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한다. 모든 위대한 것들, 모든 화려한 것들, 모든 걸작, 모든 역사, 우리가 아는 모든 지식들, 모든 돈과 명예, 온 세상을 담는 것은 결국 나의 마음이다. 그 모든 것들은 단지 내가 알아봐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빛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다. 그것이 삶의 본질의 결정하는 것이다.
지위의 고저나 돈 혹은 지식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현혹하는 외부적인 것에 불과하다. 사람은 돈과 명예를 찾아 열망하고 미치도록 쫓아다닌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모두에게 주어진다면 가치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욕망한다. 모두에게는 빛이 있다. 자신만의 빛은 그런 것과 관계가 없다.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만의 빛을 찾고 그걸 말하라.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가질 수 있으나, 욕망은 그 사랑을 잃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