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되지 않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Dark Factory.
내부에 사람이 없는 공장을 뜻한다. 로봇은 빛이 없어도 작업이 가능하기에 공장 조명에 불필요한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데에서 나온 용어이다.
최근 현대차는 새로운 로봇을 공개했다. 이제 문서 작성이나 회계업무 같은 지식노동을 넘어 실제 노동에도 로봇을 활용하여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현대차 노조는 이에 반발하며 로봇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투입과 산출의 최적화를 통하여 최대의 효율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원리이다.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전 지구가 연결된 지금의 세상에서 인간노동보다 로봇활용의 비용이 저렴해지는 순간 인간은 로봇으로 대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기존 제도와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등은 그런 흐름에 다소간 제동을 걸 수는 있겠지만, 발전을 추구하는 인간본성상 이러한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끝까지 이 흐름을 외면하는 회사는 생산에서의 비용경쟁력의 하락으로 쇠락하고 말 것이다.
바야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을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며, 지금은 그 파도의 한 가운데에 있어 의식하지 못할 뿐 인간은 더 빠른 속도로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과거의 인간은 평생에 걸쳐 이룩한 업적이나 쌓아온 지식에서 존재의 의미와 자아의 실현을 경험하였다. 지금은 ai를 이용하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투입한 시간과 관계없이 ai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가 성과를 결정하고 경제력으로 이어진다.
ai시대에 지식이나 물질의 생산에 있어 시간이라는 자원은 과거만큼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정신노동은 점점 더 ai에 의지하게 되고, 육체노동은 이제 로봇에 의지하게 되는 시대이다.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이다. 놀이가 노동의 본질이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재미있고 흥미있는 일을 찾아서 놀이한다. 무언가를 탐구하고 목표를 달성해내는 과정이 될 수도 있고, 미술이나 음악을 창작해내는 것일 수도 있으며, 거대 회사 안에서의 협업으로 성과를 이루어내는 것도 그 본질은 놀이이다.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하면 그 보상으로 뇌에서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나오고 인간은 "만족감"을 느낀다. 그 만족감이 인간을 행동하게 한다.
반면 아무일도 하지 않고 편하게 있으면 도파민이 나오지 않는다. 인류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당장의 먹을 걸 구해야 하고, 입을 걸 만들어야 하고, 집을 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 며칠이라도 먹지 못하면 먹을 걸 구할 에너지가 고갈되고, 에너지가 없는 상태에서는 모든 외부의 위협에 취약해진다. 사람은 죽고 만다.
긴 시간 동안 대대손손 복제되어 온 유전자의 본능은 사람이 죽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행동을 하면 도파민이 분배되어 만족감을 얻도록 설계되었다.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마찬가지라는 연구결과는 그 근거를 뒷받침한다.
ai발 최근의 변화가 가속화되면 사람이 행동할 유인이 없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AI와 로봇이 인간보다 일을 잘하게 된다면 모든 지식을 AI가 생산하고 재화를 로봇이 생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은 굳이 행동할 필요가 없다.
행동을 하지 않아도 음식이나 안전한 환경 같은 보상이 주어진다면 사람은 행동할 유인을 갖지 못한다. 인간은 나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존재에 대한 허무감
이러니 저러니 불평하고 힘들다고 해도, 누군가는 나를 찾아주고 내가 가진 재능을 원할 때에 인간은 존재가치를 확인받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인간이 허무감을 극복하고 힘든 와중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파괴적인 변화는 과거 정답이라고 여겼던 인간의 모든 삶의 공식을 넘어선다. 더 이상 내 능력이 없어도 모든 것이 문제없이 돌아간다. 필연적으로 과거의 기준을 바탕으로 삶을 대하면 바닥 없는 허무에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 뭘까?
그것은 나 자신이 존재 자체로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의식이다. 돈이 없어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나 나의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의식이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이것은 성경에도, 불경에도 모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이런 의식이 없다면 로봇과 ai에 대체되는 현실에서 사람은 갈 길을 잃고 말 것이다.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내 마음에 집중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일이다.
"내"가 진짜로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지. 스스로 중심을 잡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그 무한한 허무에 지배당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꼭 죽음을 뜻하진 않는다. 힘내서 앞으로 나아가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즐기는 그런 삶에서 멀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저 물질적인 욕망. 당장의 재미나 쾌락만을 추구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의 정신은 이미 무한한 허무에 갇혀 있다. 지금은 존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자존(自存)을 단단하게 세워야 할 때이다.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바쁜 일상에서 마음 한켠에 웅크리고 있는 나 자신을 다시 돌봐주어야 할 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ai는 내 생각을 대신해주고, 로봇은 내 일을 대신해준다. 그 대신 끝을 알 수 없는 허무함을 같이 가지고 왔다.
로봇이 일하는 공간은 빛이 없다.
ai는, 로봇은 빛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기에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자기 안의 빛이 있다. 그것이 로봇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것이다.
그 빛에 집중해야 한다.
당신은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