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도 금도 은도 서울부동산도 없는 30대 중반 남자
문명시대 이전에는 모든 부족민이 동쪽으로 갈 때 혼자 서쪽으로 가면 생존할 수 없었다. 실제로 동쪽이 황무지이고 서쪽이 곡창지대였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다. 또한 대부분 이런 경우에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의 선택이 맞을 확률이 클 터다. 문명시대 이전에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본능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모두가 한 곳을 볼 때, 모두가 맞다고 할 때 혼자서 틀리다고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달려갈 때 혼자서 가만히 있으면 마치 뒤쳐지고 고립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주식시장에서는 이런 인간의 본능을 잘 이용해야만 돈을 벌 수 있다.
모두가 달려갈 그 방향을 한발 앞서 가서 기다린 다음, 모두가 그곳으로 달려갈 때 슬며시 멈추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한쪽으로 달려가는 상황에서 욕심을 거두고 멈추기란 꽤나 힘든 일이다.
주식시장은 한번씩 그런 기회를 준다. 반수 이상의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가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더 크게, 더 오래 오르게 된다.
한편 모두가 틀렸다고 하는 쪽에 서있는 사람은 더욱 견디기 어렵다. 오르면 오를수록 초조함의 정도가 심해지고 뒤쳐지면 안되겠다는 마음의 압력이 점차 강해진다. 문제는 이러한 사이클에 들어가게 되면 다른 자산에 있는 돈들도 특정한 자산으로 몰리게 된다는 데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과정에서 끝까지 소신을 지키고 고집을 지킨 마지막 사람이 올라탔을 때, 그때는 그만큼 오른 식을 사줄 사람이 없다.
하나 둘 내다 팔기 시작한다. 받아 줄 사람이 없는 주식은 점점 더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 주식에 대한 확신이 없이 산 사람들일수록 떨어지는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주식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는 개인일수록 손실을 감당하지 못한다. 손실난 것을 팔지 못하고 그대로 물려버린다. 매도세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어느새 손실구간이 되기 전에 얼른 팔아버리려는 사람들로 가득해진다. 이렇게 매도세가 계속되면 초조해진 사람들은 주식을 헐값에 던지게 되고 주가는 회사가 가진 본질가치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회귀한다.
주식을 사는 것도, 주식을 파는 것도 결국 포모의 일종이다. 나만 홀로 남겨질 거라는 두려움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주식을 사지 않는다고 해서 실제로 혼자 남겨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과열의 사이클이 끝나고 나면 부의 분배가 더 양극화된다.
그러니까,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제자리에 남고 아주 소수의 자리만이 바뀌게 될 뿐이다. 그러니 이 열차에 타지 못했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대부분은 오래 가지 못하고 돌아올 것이다. 하물며 그 두려움으로 내 리듬을 잃으면 더 큰 손실을 볼 수도 있게 된다.
포모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그것이 공공연히 쓰여지는 요즘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대주주인 회장님들이 주식 가격에 신경을 쓰며 하루하루 일희일비할까? 혹은 자신이 가진 자산에 자신감이 있으며, 인생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이 매일매일 오르내리는 주식가격을 보며 자신의 리듬을 잃어버릴까?
주식이 오른다는 뉴스를 보며 초조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소시민이다. 삶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은 않은 평범한 사람들, 또 아직 모아둔 돈이 많지 않은 젊은이들.
주식 가격이 오르는 것은 중요한 뉴스기는 하지만, 주식가격에 너무 매몰되어 보도가 되는 것은 좀 경계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주식이 오르면 오를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들여 주식을 사게 되는 것은 이러한 보도도 한 몫 한다는 생각이다.
점점 더 물질이 중요해지는 사회. 인정과 행복에 돈이 더 큰 척도로 작용하는 사회분위기는 포모를 부추긴다.
수많은 요소가 맞물려 이러한 분위기를 형성했겠지만 주식창을 보느라 정작 중요한 자신의 삶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런 분위기가 강해질수록 특정 자산의 변동성이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양극화와 소외현상이 심해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주식에서 꿈과 희망을 찾으려 하고 그런 초조한 개인이 많을 수록 변동성은 심해진다. 개인의 소중한 생활비가 주식시장으로 더 많이 들어오고 그 과정에서 거래소와, 파생상품을 판매하는 중개업체, 가격을 움직일 만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부는 더 집중된다.
하루가 다르게 급등하는 한국주식을 보면서 요즘 드는 생각은, 받을 준비가 된 자에게 비로소 그걸 주신다는 세상의 진리이다. 나는 대출을 일으켜 코인을 샀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손실구간이다. 그런 와중에 거의 1년 가까이 주식은 오르고 있다.
10배를 번다는 생각으로 코인을 샀으니, 10분의1토막이 나는 것도 각오해야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딱 코인만 빼고 금부터, 은, 원자재, 미국주식, 한국주식까지 급등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최근까지도 너무 힘들었다. 지정학적 불안정에 따라 코인의 가격이 오를 거라는 나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하루하루 오르는 환율을 보면서 한국시장이 잘못되기를 속으로 바란 적도 있었다. 한국시장이 혼란해지면 코인이 상대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않을까라는 못된 생각이었다. 모두가 힘들어 지더라도 상대적으로 내 게 더 오르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발상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도 그런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환율은 곤두박질쳐서 떨어졌고, 코스피와 코스닥은 나를 놀리듯 하루하루 급등하며, 내 자산은 하루하루 떨어진다. 당연히 마음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문제가 무엇인지 그 근원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문제는 나라는 사람을 지탱하는 단단한 바닥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단단한 존재적 받침이 없으니 나라는 사람을 자꾸만 내가 가진 물질이나 재산 같은 것에 치환해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돈이 이만큼 있어", "나는 투자로 얼마를 벌었어" 가 나를 설명하는 요소가 될 뿐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예컨대 다정한 사람, 생각이 깊은 사람, 자신만의 세계관이 뚜렷한 사람) 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돈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랬기에 매일매일 코인 가격을 보고, 주식을 보고 환율을 보며 불안해하고 행복해하고 초조해하는 것이었다. 나의 희로애락을 결정하는 것은 그날그날 달라지는 숫자의 움직임일 뿐이었다.
돈이 없는 나는 내가 아닌가? 돈이 없는 나는 더 못난 나인가? 부족한 나인가?
나를 설명할 요소가 내가 가진 것밖에 없다니. 그 안에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번쩍번쩍한 갑옷을 벗기면 그 속은 말라비틀어진 어린아이가 되고 싶진 않았다. 내가 정말 원하는 실제로 단단하고 강한 내 모습이었다.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컸고, 포모에서 찾아오는 고통은 견디기 어려웠다. 매일매일 앱을 들락거리고, 기관과 외국인 투자비율을 보고 유튜브에서 투자콘텐츠나 찾아보고 뉴스나 시사 평론 같은 걸 보면서 "엣헴 나는 사실은 똑똑해"라며 자위하던 삶을 그만하기로 했다.
나의 고민과 물음은 하루하루 환율의 변동과 코스피가격의 예측에서 벗어나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발견하고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했다. 나의 하루를 돌아보았고, 어떤 루틴으로 살면 좋을지 생각했다. 헛된 욕망과 하루하루 그걸 부추기는 숫자 사이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는 방법은 헛된 것에 눈멀어 잊고 있던 나 자신에게 다시 말하고 관심을 주는 것이었다.
나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이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스스로를 똑똑하다 여기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와서 한 문장 한 문단 내 생각을 출력해내는 일을 하기로 했다. 글을 써보니 나는 내가 생각한만큼 똑똑하지도 않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작은 것부터, 미약한 것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전보다는 훨씬 삶이 단순해졌고 고통이 덜하다. 오히려 전과 같은 상태에서 내가 가진 자산이 크게 올라 내가 바라는 부를 차지하게 되었다면, 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내가 가진 것으로 나를 규정하는 사람으로서 내 자존감을 내가 가진 것에 치환해서 하루하루 일희일비하며 살고 있었을 것 같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세상은, 나의 신은 나에게 바로 주지 않으심으로써 더 큰 것을 주셨다.
만화에서 주인공이 각성을 하듯 당장 내가 크게 변하거나 발전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똑같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부족함을 알았고 어떻게 채워나가면 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막연하게나마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요즘의 사건은 나에게 너무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