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의 함정

열심히하면 안되는 이유

by 삼십대김씨

"라이터불로는 밥을 지을 수 없다."


라이터불로 밥을 지을 수 없듯이 어떤 일을 이루려면 적당히 살살 해서 안된다는 뜻이다. 밥을 지으려면 가스불의 화력이 필요하다는 이 말은,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한다는 강박의 불씨가 되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믿었다.


맞는 말인가?


몰입이론으로 유명한 칙센트 미하이가 말한 것처럼 나에게 '적절한 난이도의 활동'을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시도를 해왔다. 영어공부의 명확한 목표는 토익점수, 러닝의 명확한 목표는 10km 50분 안쪽, 올해 안에 어떤 자격증 취득 같은 식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중에 내 욕심대로 이룬 것은 없었다. 좀 더 정확히는 토익점수는 땄지만 원하는 만큼 영어를 하지는 못하고, 50분 안쪽으로 달려본 적은 있지만 지금은 러닝을 하지 않는다. 자격증은 땄을 뿐 그때뿐인 성취감으로 끝났다. 성인이 되고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했던 시작했던 것들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좋아서 시작한 일들은 왜 싫어지는 것일까?


지금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무슨 일이든 의무감으로만 해왔던 몸에 베인 습관 때문이다. 성취를 얻으려면 '열심히' 정도의 노력은 들여야 한다는 "라이터불 이론"은 무슨 일이든 극기가 되도록 스스로를 몰아부쳤다. 안할 거면 안하고 한번 시작하면 "열심히" 하는 태도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몸에 체득된 습관 같은 것이다. 그 습관 때문에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하다 보니 지금까지 "꾸준히" 한 게 하나도 없었다.


"하려면 제대로 해"


이 말은 틀렸다.


제대로 할 생각이 아니라면 시도하지도 말라는 것이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볼 정도로 열심히 하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첫째로 시도를 어렵게 하고, 둘째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너무 혹사시키게 된다.


혹사시킨다는 것은 고통을 참는다는 것이다. 가진 것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그것을 "인내"하는 태도다. 그 인내와 끈기를 우리 사회는 미덕으로 여긴다. 반면 중도에 포기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냉정하다.


시작한 사람은 그런 사회적 시선 때문에라도 끝까지 "인내"하고 참는다. 좋아서 시작했던 그 일은 어느새 해내야만 하는 의무가 되고, 그걸 위해 참아내야만 하는 고통으로 변한다. 제대로 해야 한다는 그 생각은 적당히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특수한 환경이나 재능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좋아서 시작했던 그 일을 중도에 질려서 포기해버린다.


담은 없는 게 낫다. 힘을 주는 것보단 빼는 게 낫다.


최근 러닝기록 향상 훈련으로 존2트레이닝이라는 게 각광을 받는다. 존2트레이닝이란 최대심박수의 60% 정도로, 편안하게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심박수를 말한다.


달리기를 하는데 숨이 찰때까지 뛰는 게 아니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만 뛰라고? 모르는 사람이면 이상할 수 있다. 존2 구간은 <몰입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적절한 정도, 그러니까 약간 어려운 정도의 난이도가 아니다. 매우 쉬운 난이도다.


러닝을 꾸준히 할 때가 있었다. 존2트레이닝을 알고 있었지만 항상 끝나는 구간에서는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내게는 오히려 존2 구간에서 달리는 게 더 힘들었다. 존2 구간은 너무 따분하고 "운동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내 무의식은 더 빨리 뛰라고 계속해서 몰아쳤다. 결국 심박수가 180구간까지 갈 정도로 뛰게 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 러닝은 약간의 의무가 되어 있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3회씩 1년 이상 꾸준히 했지만 한번 리듬이 깨지니 1년을 노력한 게 무색할만큼 달리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가 몸에 베면 지속하기가 어렵다. 처음에는 즐기는 마음으로 시작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의무가 되고 부담이 되어 버린다.


헬스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관련한 유튜브와 자료를 탐색하고 최적의 무게와 반복횟수를 정했다. 그리고 그걸 하루의 목표로 팔다리가 후덜거릴 때까지 매일 들었다. 이런 식으로 했을 때 항상 두 달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제대로가 아니라 꾸준히이다."


'아 뻐근하다~ 운동 제대로 했네!' 라고 하면서 단백질쉐이크를 마실 때 기분이 좋다. 뭔가 뿌듯하다. 마찬가지로 최대심박수까지 달리고 와서 찬물로 샤워를 싹 하면 상쾌하다. 뭔가 뿌듯하다. '오늘 공부 진짜 많이 했어!' 하고 뿌듯하게 잠든다.


그리고 다음날이 온다.


어제 그걸 다시 해야한다니. 그 과정을 또 겪고 싶진 않다. 그래도 둘째날이니까 힘내서 해야지. 셋째날, 넷째날, 다섯째날....


그렇게 1년도 될 수 있고, 2년도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참는 것은 한계가 있다. 2년 동안 매일 했던 일도 딱 한 달만 안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우리는 놀랍게도 수능시험을 고등학교 3년 내내 준비하지만, 수능이 끝난 그날부터.... 상상에 맡긴다.


"평생을 참을 수는 없다"


인생은 순간의 사진이 아니라 멈출 수 없는 영상이다. 현재는 진행중이고 과거의 경험은 흘러갔을 뿐이다. 수능시험이나 자격증시험 같이 한번에 결과로 승패가 결정되는 종류의 사건은 그 결과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이런 과정에 익숙해진 사람은 결과만을 중요시한다.


그렇지만 살면서 훨씬 더 많은 부분은 승패가 갈라지듯 또렷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건강, 언어, 자녀육아, 인간관계, 사업, 회사업무 등. 생각해보라. 사실 대부분의 요소는 승패라는 결과에 관계가 없는 연속적인 것이다. 평생 해야 하는 것들이다.


평생 해야 하는 것들은 열정을 불태우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저 꾸준히 하는 반복이 필요할 뿐이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 하루 10분이라도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게 1년 미친듯 제대로, 막 식단조절도 해가면서 씩스팩에 바디프로필을 찍은 다음 안하는 것보단 낫다. 관계에서 친절함은 꾸준히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평생 노력해서 친절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모든 게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든 일을 대하는 데 있어 "잘해야 한다", "제대로 해야 한다", "참아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매몰되어 있다. 어려서부터 학습된 결과다. 이러한 무의식은 좋아서 시작한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들고 결국 중단하게 만든다.


결국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잘할 필요 없다", "천천히 하자", "어설프게 조금이라도 하자" 같은 태도다.


러닝으로 치면 존2 구간을 버텨내고 정해진 시간 동안 달리는 일이다. 존2구간으로 달리는 걸 유지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지금까지 무의식에 쌓아왔던 성과지향형 사고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존2 트레이닝은 체력 훈련 이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심리훈련이다.


할까말까 망설이는 일이 있는가? 가벼운 마음으로 해보자.


안되면 안되는대로, 어설프면 어설픈대로, 시간이 없으면 없는대로 잠깐씩,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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