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남자의 집과 부동산에 대한 관점
부동산이라는 망령이 온 나라를 헤집고 있다.
부동산은 전 국민의 최대 관심사이자, 목표가 되었다. 정확히는 어느 동네에 사느냐, 얼마짜리 집을 사느냐의 문제이다. "너 어디 살아?" "너네 아빠 어디살아?" 가 최대 이슈가 되다 보니 정치지도자를 뽑는 선거에서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어떻게 말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만 골몰하며 아무 정책이든 공약이든 막 던졌다가 주워담았다가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그렇게 누더기 같은 정책들을 덕지덕지 뒤집어쓴 지금의 부동산시장은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다.
역사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이러한 상황이 이해가 된다. 과거에 주요지역에 아파트를 샀던 사람과, 아파트가 아닌 다른 걸 사거나 지방에 산 사람의 자산격차가 좁혀질 수 없는 만큼 벌어진 것이다. 동일선상에서 출발한 김 사원과 박 사원은 30년 후 서울 자가에서 지하철로 통근하는 김부장과 경기도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통근하는 박 부장이 되었다. 이러한 박탈감이 지난 몇십년간 계속 쌓여 전국민이 부동산 전문가가 된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었다.
여기서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건 박부장 잘못이지. 기회 있을 때 얼른 샀어야지 왜 지금와서 세상탓임?'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혹은 '집값에 편승해서 사람의 재산이 결정되는 건 부당함'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박부장도 나름 이유는 있다. 그는 회사일에 너무 헌신적이었고, 빚은 죄악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집이 있느냐, 없느냐, 어디에 있느냐가 중년 세대 이상에게는 얼추 '승자' 와 '패자'를 가르는 척도로서 통용되고 있다.
부동산의 양극화는 최근에 와서 점점 더 가파라지고 있다. 10년 전에는 10억 밑이었던 서울의 아파트들도 지금은 거의 평당 1억이 넘게 거래가 된다. 그만큼 수요가 많고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정부는 화폐를 계속해서 찍어내어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므로, 공급이 정해져있는 좋은 땅은 비싸지고 건물의 생산원가는 계속해서 올라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은 서민이 세금부담이 없이 자산을 보전하고 증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너무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리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 서울 서울, 너도나도 서울... 서울로의 쏠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투자수단과 거주공간으로서 의 기능 중 투자수단의 기능 쪽으로만 너무 쏠린다는 이야기다.
집은 투자수단인 한편 거주의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취향, 생활패턴과 관계없이 다들 집을 투자수단으로서만 바라본다. 집을 산다고 하면 직장동료든, 친구든, 유튜버든, 카페 회원이든 그 모든 부동산 전문가들은 어떻게든 "중심에 가깝게" 동네나 연식이나 구조나 주변환경에 관계없이 "무조건 서울과 가까운 곳으로, 급지가 높은 곳으로. 기왕이면 서울에서도 비싼 데 풀 대출로." 라는 조언을 하는 것이다.
"이 동네는 산 아래 있어서 조용하고 집앞에 러닝을 할 수 있는 공원이 있어서 마음에 들어~" 라는 생각은 어수룩하고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그 돈이면 평수가 더 작은 2급지로 가라, 더더 평수가 작은 1급지로 가라"는 식이다.
"그런데 나는 강남 신세계백화점에서 쇼핑할 일이 없다. 사람이 많고 복잡한 걸 싫어한다." 할 지라도 그건 그거고 마치 정답은 정해져있는 것 같다.
집을 산다는 선택은 어디를 샀느냐에 따라 한 순간에 인생을 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신중해야 한다. 고 말하지 않아도 아마 인생에서 가장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다. 하지만 선택에 있어서 "투자"라는 요소에 너무 매몰되어 그 안에서의 "삶"이라는 기준이 없는 게 현실이다. "모두가 똑같은 환경에서 박탈감이 없이 살아야 되는 것 아님?"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좀 더 상급지에, 더더더...
라고 하는 그 생각에 매몰되면, 그 목적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잘 알지도 못하는 "레미안 원베일리"를 "갖고 싶다"는 욕망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더 높은 급지로 점프 점프 하는 삶이 진짜로 내가 원하는 삶인지, 남들이 좋다고 해서 "학습된 좋은 삶"인지 잘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그만큼 살아보지 않아서 정말로 뭐가 맞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들의 말이 더 맞는 것일 수 있다. 다만 확실한 건 "모든 사람"에게 그것이 맞는 선택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동차를 살 때에는 용도와 취향에 따라 차종이나 디자인을 선택한다. 그런데 집을 살 때에는 필요나 취향은 거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중요한 건 어느 동네냐, 몇 급지냐, 미래가치가 있느냐 같은 것들일 뿐이다.
집이 가장 큰 자산이라 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용가치는 천차만별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 생활반경과 취향에 맞는 마음에 쏙 드는 집이면 내가 지불한 돈보다 훨씬 큰 가치를 줄 수 있다.
집을 사는데 무조건 다른 사람의 말이 기준이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내가 살아갈 집"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미래가치적인 요소를 포함해서 내 취향, 생활환경, 미래계획 등 거주의 공간으로서의 요소까지 고려해서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삶에 더 집중하고 주변을 살펴보면 "우리 집값"에 관계없이 가치있고 행복을 주는 것들이 얼마든지 많다.
언제나 기준은 '나' 여야 하지 '다른 사람'이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