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의 인간관계론

설명절 아웃사이더들에게

by 삼십대김씨

나는 설에 시간을 들여 따로 챙겨서 연락하는 사람이 없다.


사실 가족을 제외하고 따로 누군가의 생일을 챙겨주거나 때맞춰 연락하는 사람도 없다.


내 휴대폰 통화목록은 몇백개나 되는 전화번호와 무색하게 거의 한손으로 셀 정도의 사람밖에는 없다. 카카오톡은 더 처참하다. 보이는 화면엔 광고밖에 없는 것이다. 전세계가 연결된 네트워크 시대에 섬에 홀로 살아가는 외톨이에 다름이 없는 정도다.


나는 원래 사람을 싫어하는 타입은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처음부터 곧잘 대화하고 가깝게 지낼 수 있는 편이다. 굳이 따지자면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 더 힘이 나는 편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내가 소위 "인싸"인 줄 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인싸는 아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연락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내 인간관계는 딱 그 상황이 끝나면 더이상 연결을 안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는 나의 이런 성격이 매우 신경쓰이는 것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는 설에 으레 주변 사람들과 고마운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선물을 보내는 것을 미풍양속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는 것은 내가 잘못하고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분위기를 봐도 나만 빼고 다들 명절에는 서로서로 연락이나 선물을 주고받고 하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불안감이 들게 된다.


외향형에 가까운 인간인 나는 사실 타인의 평판에 꽤나 민감한 편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섭섭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을까? 그들이 나를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닐까? 같은 걸로 불안해하곤 한다. 그런 생각이 특히 명절이 되면 괜스레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편이다. 잘 살고 있으면 됐고,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불편하면서까지, 내가 힘든데도 명절때마다 연락이나 선물을 주고받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다.

나와 내 가족을 돌보고 함께 맞춰가기에도 빠듯한 인격이다. 아직 나 자신도 잘 모르는 나라는 사람이, 그런 관례가 부담스럽다는 내면의 목소리는 애써 무시하며 다른 사람부터 챙길 수는 없다.

관계에만 집중하고 그것에 매몰되면 자기자신을 돌아볼 시간과 여유가 없게 된다. 선뜻 생각나는 사람의 번호를 누르지 못하는 건 내 마음에 아직 그들이 들어갈 정도의 여유가 없다는 뜻일 거다.


사실 나 자신이 안에서부터 탄탄하면 주변에 사람이 있든 없든 아무 상관이 없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가 정말 바라는 삶에 집중하게 되면 주변이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내가 가진 역량에 맞추어 물건이든 관계든 생활이든 점점 단순하게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나라는 그릇 안에 수북히 쌓여있던 잡동사니들이 점점 비워지고 단순해지고 적게 남는 느낌이다.

적게 남는다고 해서 더 적어지는 건 아니다. 가진 것들의 종류는 적어지지만 그 밀도는 더 꽉차게 된다. 예컨대 하루 중 뭘 할지 몰라 쇼츠를 보거나 주식창을 보는 시간이 적어진 대신 책을 읽거나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20대때는 항상 명절에는 고향에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아이가 생기고부터는 안만난다. 만났던 친구들 모두 잘 살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 이제 각자가 자신의 가족과 스스로에게 더 집중하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내가 무려 브런치 작가라는 걸 아는 사람은 2명밖에 없다. 그중 한명은 아내이다. 하지만 아내는 아마도 이 글을 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설명절을 맞아 이 글을 보아준 모든 독자들과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응원하고 새해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한해는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지는 한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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