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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

by 김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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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을 선물 받았다. 조심스레 잉크를 채웠다. 흰 종이 위에 까만 글자들이 기분 좋게 내려앉았다. 흐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손을 움직였다. 페이지를 몇 장씩 넘기며 무언가를 적었다. 읽던 책의 내용을 베껴 두기도 했다. 음표는 공간을, 문자는 노트를 가득 채웠다. 흐르는 시간은 차곡차곡 내 마음속에 쌓였다. 내심 즐거웠다. 만년필을 선물 받았다는 사실보다, 펜을 잡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더 행복의 바다에 빠지게 했다.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건 그뿐이었다. 지금 한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속의 한 대목을 힘차게 노트에 적어두고는 살며시 펜을 내려놓았다. 깍지를 끼고 턱을 괴었다. 소박한 마음이란 다섯 글자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크게 느껴졌다. 행복은 거창한 모습이 아니다. 지금 당장 바지 뒷주머니를 뒤적거려 꺼낼 수도 있는,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애써 찾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커피 한 잔, 책 한 권, 만년필 한 자루, 그리고 생각이 데려온 생각을 만나 글을 써내는 시간으로 채워진 오늘. 슬쩍 입가에 깊은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금 펜을 들었다. 행복을 부르는 가장 알맞은 주문이겠다 싶은 말을 고심 끝에 적어내고는 만족스러운 눈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내리 세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이만하면 충분해!"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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