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 어떤 어른이길래
"안녕하세요. 선생님!" 짙은 녹색 정복을 입은 건장한 해병대 청년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어?" 분명 아는 얼굴이었다. 반가움에 악수를 청했다.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당황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작년 가을 어느 모임의 끝자락에서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적극적인 모습에 나는 명함을 건넸었다. 올봄에 사무실에 한 번 들렀던 것 같고, 여름 즘 훈련이 끝나 설렘이 가득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했었을 게다. 뭐라 뭐라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의 수첩에 왜 내 번호가 적혀 있었을까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여러모로 참 재밌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오늘, 황금 같은 휴가 중에 나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닌가.
슬쩍 계급을 보니 일병이었다. 작대기 두 개. 군 생활 3분의 1이 이제 막 지났단다. 암, 무슨 숫자든 전역과 관련지어 의미를 두게 되는 기승전제대의 시절이지. 아무리 사소한 것도 무척 크게 느껴졌던 나의 까까머리 시절을 떠올렸다. 달디 단 커피를 하나 입에 물리고 시시콜콜한 군대 에피소드를 나누었다. 어쩌면 그 친구에게는 지금 전부 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최대한 덤덤하게 하려고 애썼다. 결론은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했고, 일단은 참고 견디라 했다. 너무 잘 하지도 말고, 못 하지도 말고, 재미있게 하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후임들 잘 챙기고, 시간이 나면 책도 좀 읽으라 했다. 그리고는 안녕. 잘 가라는 인사에, 어깨를 펴고 "필승!"이라 답하는 그 친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힘내라. 다음엔 꼭 소주 한잔 따라주며 네 이름을 물어보마. 고맙다. 내가 너에게 어떤 어른이기에 나를 찾아왔는지, 그때는 꼭 알아야겠다. 저벅저벅 걸어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에 나도 마음을 담아 외쳤다. 필승. 너도 나도 무조건 필승이라고.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