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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근 Mar 26. 2017

나를 위해

나를 더 신뢰하는 방향으로, 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지난 사진을 정리하다 문득. 스무 살, 기차표를 끊고 무작정 떠났던 첫 여행이 생각났다. 여름방학의 긴 설렘과 소나기 내린 뒤의 왠지 모를 상쾌함이 함께 했던 시간들. 꽁꽁 싸맨 배낭은 무거웠지만 자유를 만끽하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느덧 십 년이 훌쩍 넘었구나. 지난주엔 또 한 번의 떠남과 또 한 번의 돌아옴이 있었고, 시간과 날씨가 허락하는 만큼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과 아무런 생각 없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정처 없는 여행길에 스르륵 만나게 된 어느 친구의 고백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여기 아닌 다른 곳으로 가면 나아질 거라는 기대로 훌쩍 떠난 여행에서도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문제가 기다리고 있더라는 진심 어린 독백. 그리고 외적인 상황이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달라져야 삶이 달라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를 그의 앞에서 한동안 멍하게 했다. 무방비 상태로 듣고 있던 나는 참 괴로웠다. 나에게 쏘는 화살 같아서. 애써 피할 수가 없어서.


나 자신이 달라져야 삶이 달라지는 것 같단 그 한마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을까. 여행만이 답이 아니더라고 말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도 참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책임을 감내하는 모습이 참 대견스럽기도 했다. 결국 글을 쓰든, 여행을 하든, 노래를 부르든, 어디에 살든, 어떤 일을 하든 중요한 건 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 나를 더 신뢰하는 방향으로, 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것. 이런저런 생각들을 곱씹으며 어제와 오늘을 꼬박 나를 둘러싼 공간을 정성스레 정리하는데 썼다. 먼지를 털고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았다. 나를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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