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좋다.

시를 말하고, 노래를 한다

by 김봉근
수선화에게.JPG

엘리베이터에서 정호승 시인을 만났다. 늘 책의 앞장에서만 뵙던 그 얼굴에 “안녕하세요”하며 꾸벅 인사를 건넸고, 선생님은 가볍게 “네”라고 대답해주셨다. 오늘 집을 나서며 이따 강연을 들으러 갈 것이니 산문집을 한 권 챙겨볼까 고민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후회의 흔적을 남긴 채, 그래도 그 어느 때보다 아주 천천히 올라가는 것 만 같은 승강기가 참으로 고맙다 느끼며, 꿈에 그리던 작가와 한 공간에서 그렇게 숨을 쉬고 있었다.


사실 지난주부터 벼르고 별렀다. 가수 안치환, 시인 정호승. 이 두 분의 이름을 듣고 어찌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노래방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러보지 않은 이가 누구이며, 안치환의 노래를 들으면 그 역동적인 목소리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단언컨대, 그의 노래를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호승 시인 역시 그렇다. 책도 책이지만, 그의 산문은 마치 등 뒤에서 나를 보고 있기나 한 듯이 마음을 울리고 웃기다가, 가끔은 마음을 통째로 쥐고 흔들어서 혼을 쏙 빼놓기도 하고 초등학교 2학년 때 받았던 담임선생님의 '참 잘 했어요' 칭찬 도장보다 더 큰 기쁨을 주기도 했다. (여전히 그렇게 시인의 글을 읽고 있다.) 종종 지인들에게 책 선물을 하게 될 때, 몸과 마음이 조금 지쳐있는 상황이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 준 한마디>를 선물한다. 아직까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지만,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은 없다.


시작 시간이 좀 남았기에 강의실 제일 구석진 자리를 찾았다. 아쉬운 대로 요즘 신나게 읽고 있는 책, 성수선 작가의 <밑줄 긋는 여자>를 꺼내 어디쯤 인가를 펼쳤는데, 맙소사, 그 페이지에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눈을 아주 크게 뜨고 똑똑히 쳐다봤다. 분명히 방금 전 나에게 인사해 준, 정말 만나 뵙고 싶었던 그의 작품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인생은 참 신기한 일의 연속이다.


수선화에게 _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가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강연은 차분한 목소리로 진행되었다. 고통은 그 의미를 찾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며,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희망과 책임, 용서와 같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강의 내용을 열심히 듣고 적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기다렸다는 듯 때 맞춰 나에게 다가온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이어진 가수 안치환의 무대. 수많은 명곡들 가운데 두 번째로 불러준 노래 <오늘이 좋다>를 들으면서 가만히 앉아 눈물을 훔쳤다. (그의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나는 따라 부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을 하는 것도 아닌 모습으로 중얼거리면서 듣고 또 들었다.


만만치 않는 세상살이 살다 보니 외롭더라. 니가 있어 웃을 수 있어 좋다. 술 한 잔에 해가지고 또 한 잔에 달이 뜨니 너와 나의 청춘도 지는구나. 잘난 놈은 잘난 대로, 못난 놈은 못난 대로 모두 녹여 하나되어 마시자. 하지만 우리 너무 취하진 말자.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구나. 남은 인생 통틀어서 우리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내 친구야. 남은 너의 인생에 저 하늘의 축복이 함께하길 바랄게. 오늘이 좋다


그렇게 만나보고 싶었던 그 두 사람이 내 앞에 있었다. 시를 말하고, 노래를 했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오늘이 참 좋다. 오늘이 좋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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