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에서 기계가 아닌 사람을 보자
사건이 시대를 구분한다. 신석기와 구석기, 기원전과 후,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근대와 현대. 지금껏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청명한 가을날, 카페에 앉아 문득 모니터를 바라보며, <친구>라는 단어의 관점에서 봤을 때 시대를 이렇게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바로, ‘친구 추가 버튼이 생기기 전의 세상과 친구 추가 버튼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말이다.
언제부터였던가, 우리는 친구가 부쩍 많아졌다. 넘치는 메신저와 SNS는 혹시나 알 수도 있는 사람을 귀신같이 찾아서 알려주었고,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친구의 영역을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 쌓여있는 친구 신청을 보며 취향대로 친구를 선택할 수도 있다. 참 재밌는 세상이다.
친구 추가 버튼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했을까? 연락이 잘 닿지 않던 어릴 적 단짝들을 찾아 주었고, 뵙고 싶었던 은사님의 소식을 들을 수 있게 해주었으며, 저 멀리 바다 건너에 있는 지인들의 소식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일면식도 없지만 알고 지내고 싶던 사람과 서로의 깊은 생각을 주고받는 일, 외국인과 외국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일이 이제 전혀 어색하지 않다. 참 좋은 일이다. 훨씬 더 다양해진 친구들에게 더 쉽게 안부를 물을 수 있고,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지금. 과연 모두가 행복함을 느끼고 있는지 질문해 본다.
우리는 전보다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되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의 느낌은 점점 잊어버리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직접 눈을 마주치고, 목소리를 듣는 소통이 귀해졌다. 이 점은 정말 아쉽다. 온라인상의 사람들과 웃고 떠드느라 정작 내 이웃, 친구, 가족들에게 너무 무심하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검은색 글자로만 주고받는 교류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진짜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계가 아닌 인간과 세상을 보자.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이미 우리에게 “과학기술이 인간 사이의 소통을 뛰어넘을 그날이 두렵다. 세상은 천치들의 세대가 될 것“이라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친구 추가 버튼이 없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친구가 되기 위해 너의 마음을 헤아리려 수없이 노력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깔깔대며 밤을 꼬박 새워 추억을 차곡차곡 쌓았다. 가끔 심하게 다투고는 며칠간 연락도 없이 자존심 싸움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익숙해지지 않았던가. 친구는 ‘가까이 오래 두고 사귄 벗’이라 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기계가 아닌 사람을 보자.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봐야겠다.
안재욱의 노래 <친구>를 들으며,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읽는다. 해지는 저녁 하늘 위로 친구들 얼굴이 참 그립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