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거 먹자"
마음 돌리는 한마디

by 뚜벅뚜벅

시간은 촉박한데 다음 방송 아이템을 찾지 못했거나

인터뷰를 계속 거절당해서 발을 동동 거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식사 시간도 뒤로 미루고,

카페에서 베이글이나 샌드위치를 포장해서

노트북 앞자리를 지킨다.

마치 그 자리를 떠나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신경은 점점 예민해지고, 전화를 돌릴 때마다

나의 태도도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한다.

특히 갈등이 있는 문제를 다룰 때면

전화할 때마다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요동을 치게 된다.


"왜 답변을 피하기만 하시나요?

입장 표명을 안 하시면, 주민들은 진정성을 의심할 겁니다.

방송을 통해서 사측의 판단을 오해 없도록 전달하고

소통하는 기회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우리끼리 알아서 할 테니

이슈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만 반복)

그럼, 연락을 취했지만 사측에서 답을

주지 않았다고 정리할까요?

서면 인터뷰도 가능하니까 다시 생각해보시면…

(뚜뚜뚜----)"

통화가 끊어지는 소리는 들어도 들어도

적응하기 싫은 소리 중 하나다.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 계속될 때쯤

박 피디가 문자를 보냈다.

"뭐가 잘 안 풀려? 전화하고 있어서 말 안 시켰는데

뒷모습이 굳었어. 그만하고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오자."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는 걸까?

그 순간 맛있는 거 먹자는 말이

‘그만큼 했으면 괜찮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 머리를 식히다 보면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으니

혼자 끙끙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저녁 늦게까지 작가실에 혼자 남아

안 풀리는 촬영 구성을 다듬던 날도

위로를 건넨 사람이 있었다.

"작가님, 잠깐 1층으로 내려오실 수 있어요?

퇴근한 줄 알았던 김 피디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바쁜데... 알았어요. 잠깐 내려갈게요."

방해받은 듯 퉁명스럽게 답하고 내려가 보니

김 피디 손에는 따뜻한 커피가 들려 있었다.

그는 커피를 건네며 "저만 퇴근해서 죄송해요.

약속이 있어서 나가야 하는데

이거 마시면서 머리 식히세요."

생각지 못했던 깜짝 선물.

흔하다면 흔한 커피 한잔이지만

지지를 받는 기분이 들었고 먼저 가는 피디가 밉지 않았다.

커피 한잔에 피로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언젠가는 이 피디가 저녁을 사준다며 시간을 내라고 했다.

상의할 것도 있으니 겸사 나가자는 생각으로

따라나섰는데 도착한 곳이 고깃집이었다.

"우리 둘이서 고기 먹어요? 무슨 날인가요?"

내 머릿속에는 고기를 구우려면

적어도 3명은 모여야 하지 않나 싶었다.

이 피디는 “제가 좋아하는 고깃집인데요

요즘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먹고 힘내시라고요.”라며 고기를 구워줬다.


당시 이 피디와 나는 매주 지역 이슈를 쫓아

며칠씩 촬영을 하고 몰아치듯 편집을 마쳐야 하는

벅찬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방송 펑크만 내지 말자는 심정으로

근근이 버티던 날들이었다.

‘내가 그렇게 처져 있었나?’라는 생각에

그동안 서운했던 마음을 버리고 푸짐한 식사를 즐겼다.

감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기 맛있네요. 내가 차라도 한 잔 살게요.”

"저 회식 있어서 가봐야 해요.

작가님 고기만 사드리려고 나왔어요."

"진짜? 그럼 다음에 먹어도 되는데... 너무 고마워요."

자신이 부족해서 작가 일을 덜어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이 피디,

그는 그렇게 서툴지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던 것 같다.

문득 그들의 따뜻한 배려와 동료애가 그리운 날이면,

나는 혼자 곱씹는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위로를 건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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