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방송작가라고 소개하면 받는 질문이 있다.
"연예인 누구 봤어요?" "그럼 책도 출간하셨나요?"
"멋있다. 글만 쓰면 되니까 좋겠다"...
대답은 "저는 예능 프로그램 아니고
시사교양 쪽이라서 연예인을 자주 만나지는 못해요.
책 쓸 정도로 역량을 키우지 못해서
개인 책은 아직 없고요,
방송작가는 글만 쓰면 될 줄 알았는데
다른 일이 더 많습니다. 일하기 전에는 몰랐어요."
그렇다. 뉴스성이 강한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보다 정치인, 각 분야의 교수와 연구자,
전문의, 시민단체, 시사평론가, 변호사,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더 많이 접촉하게 된다.
교양 프로그램을 할 때는 주제에 따라
소상공인, 전국의 달인, 공무원, 인플루언서는 물론
특정 지역 이야기를 다룰 때는
반장/이장/부녀회장/어촌계장/노인회장님도 찾아야 하고
철 따라 열리는 행사/축제, 전국의 명물과 맛집도
작가 레이더망에 있어야 한다.
아이템에 적합한 장소,
먹거리, 쉴 곳, 즐길거리 등을
빠른 시간 안에 설정하는 것도
대부분 작가들이 진행하기 때문이다.
이뿐인가? 현장에서 작가의 업무영역은
어디까지라는 가이드가 없다.
아이템 찾기와 출연자 섭외는 기본,
프로그램 사정에 따라 출연자 사전 미팅,
촬영 현장 동행, 편집 방향 잡기, 자막 작성, 원고 작성,
생방송/녹화에 필요한 각종 준비물 챙기기,
진행자와 출연자 챙기기,
(첫 출연인 경우 안심시키고 개인 리허설 진행 필요)
방송 후 출연자 감사인사, 사진이나 영상 보내주기,
홈페이지 정보 올리기 등...
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광범위하다.
이 모든 일을 작가 혼자 도맡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작가가 아니라 ‘잡가’라는 말도 나온다)
메인-서브작가, 메인-코너-막내작가,
메인-취재-막내작가 등으로 팀을 이뤄
작업하는 곳도 있다.
이쯤 되면 왜 그런 일을 하냐고
되묻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 역시 부르르 떨며 뛰쳐나와 쉬거나
다른 일을 하기도 했다.
결국 다시 돌아왔지만 말이다.
흔히 방송가에서 방송은 마약 같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방송 맛을 본 사람은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나 역시 그 매력과 보람 때문에
이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잘 된다고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주 오래전에 한 번 받아본 적이 있다!
시청률이 평균 2배 정도 올라 팀 회식비가 지급됐다)
진행에 문제가 생기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 구덩이에 뛰어들게 된다.
적당히 못 본 척, 알아도 모른 척하라는
조언을 받기도 하지만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지나칠 수가 없는 성격 때문에 일을 벌고 만다.
돈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는 결심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작가의 영역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다.
"작가님의 촉을 믿어요. 그렇게 진행하시죠."
“방송 출연하면 귀찮을 것 같아서 망설였는데
기획의도가 좋아서 출연하겠습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 저도 공부해서 가겠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나면,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어도 기운이 솟고
결과물의 만족도도 높아진다.
방송 후 스텝들과 출연자들의 후기도 귀한 영양제다.
“오늘 잘 풀린 것 같아요. 구성이 좋았어요.”
“저희 이야기를 귀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추억이 생겼어요.”
“억울하고 답답했는데 이번 기회에
잘 풀었습니다. 건필하세요.”
오늘도 일터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하며 어느 책에서 봤던 말을 위안 삼아
나서야겠다.
뼈 빠지는 수고를 감당하는 나의 삶도
남이 보면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