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출연은 잘 안 하는데...
일정 하루 비우려면 손해가 얼마인 줄 알아요?"
그랬다. 섭외하기 전부터 짐작은 했지만
지방 방송사에서 유명인을 섭외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시간과 출연료다.
이동해서 준비하는 시간,
녹화 끝나고 돌아가는 것까지 감안하면
반나절을 비워야 하니 출연자 입장에서는 따질 만도 하다.
한복장인으로 꼽히는 그분 역시
우리 인터뷰 프로그램에 잘 맞는 출연자이긴 했지만
과연 섭외가 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서울에서 특집 프로그램할 때 딱 한 번
그것도 10년도 더 된 기억을 꺼내
통사정이라도 해볼 작정이었다.
전화를 걸기 전부터 '컨디션이 좋은 시간이 언제일까?'
'무슨 말로 인사말을 건넬까?'
'반응 좋았던 영상을 먼저 보여드릴까?'
다양한 상황들을 상상하면서 거절하실 때
나의 대처요령까지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저 00년도에 특집 프로그램 같이 했던
작가입니다. 건강하게 잘 계시죠?"
(첫인사 말을 건네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을 때
심장이 가장 빨리 뛰는 것 같다. 나대지 말자...)
"(업된 소리로) 요즘도 바쁘지만 잘 지내지요~"
일단 부드러운 목소리 덕분에 1차 안심이 됐다.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가 상황을 설명했다.
"제가 지방에서 000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요.
선생님이랑 콘셉트가 너무 잘 맞을 것 같아서
제가 무조건 설득해보겠다고 했어요.
반나절 정도 시간을 뺏어야 하는데
그래도 선생님 고향 분들에게 안부도 전할 겸,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그 찰나에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한 손으로는 전화기를 꼭 붙잡은 채
선생님의 호흡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다른 손은 거절하시거나 망설이시면 던질
다음 이야기를 메모하고 있었다.
"내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야지.
거기 가면 아는 000도 오랜만에 만날 수 있고
하루 놀다 와야겠네."
섭외는 예상외로 빨리 해결됐다.
좀 전까지 안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만큼 말이다.
녹화 당일,
예쁜 한복을 입고 등장하신 선생님은
제작진 수고한다며 예쁜 보자기에
간단한 다과와 작은 주머니 선물까지 챙겨 오셨다.
진정한 대가는 저런 모습인가?
평소 안부를 묻고 연락했던 사이도 아니지만
한 번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신 것도 모자라
주변 사람들까지 따뜻하게 살피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녹화 내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풀어냈고
돌아가면서도 "내 얘기가 재밌었나 모르겠네.
들어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남기며 떠나셨다.
그 여운 덕분에 며칠 동안 행복했고
다음 편 준비도 자신감을 갖고 시작할 수 있었다.
대가의 여유와 솔직함,
무엇보다 겸손에서 나오는
삶의 태도에 고개가 숙여지는 시간이었다.
위대한 사람은 말은 겸손하지만
행동이 남보다 뛰어나다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