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아침 침대에서 본 아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옆자리에 살며시 몸을 기대고 누워서
깊은 잠에 빠진 아이의 편안한 숨소리를 듣고 있자면
이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말이다.
오후에 다시 만난 모녀 사이는
상큼했던 아침과는 좀 달라진 공기에서 마주치게 된다.
서로 다른 상황 속에 시달리고
지친 상태에서 만났기 때문일까?
오고 가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생채기를 내기 일쑤다.
(친구와의 일을 얘기하며 흥분하는 딸에게)
“시끄럽다. 목소리 좀 줄여서 말해라.”
잠시 후, 반격하는 딸,
“나 이제 영어 숙제 녹음해야 되니까
엄마도 조용히 해줘. 늦게까지 해야 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는 왜 이런 숙제를 내주냐며
하기 싫은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다.
그 순간 참아야 하는데, 모른 척해야 하는데
결국 뼈 있는 말을 내뱉고야 만다.
“6학년 되면 늦게까지 공부해보고 싶다며
숙제도 힘들어하는데 언제 공부할래?”
딸은 예민해진 목소리로 받아쳤다.
“하고 있잖아. 이것도 공부야.”
지켜보던 아빠가 한 마디 던진다.
“내버려 둬! 나중에 왜 얘기 안 해줬냐고
부모 원망만 하지 말아라. 분명히 말해줬다.”
그리고 나에게는 지적하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하게 만들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에효…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으로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왜 이리 힘든 것일까.
서로 사랑하지만 가시 돋친 말로
상처 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사춘기 문턱에 접어든 것인지...
이제 시작이라는 주변인들의 충고가 귓가를 맴돌았다.
이래저래 심난한 날, 머리를 식히기 위해
넷플릭스 영화 <애덤 프로젝트>를 봤다.
과거로 불시착 한 주인공 애덤이
12살 과거의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아이에게 완벽하려고 하지 말고
엄마가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세요.
아이도 엄마를 많이 사랑하고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