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원에 오니 순간 맘이 편해지는 것도 같다. 여기서 뭔가 해결되겠지란 막연한 기대, 어쩜 별거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다양한 질병이 많으니까.
대기실에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여성센터를 찾는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들. 저들은 어떤 문제로 왔을까? 곁눈으로 그녀들의 표정이나 태도를 살피며 질병을 예측하는 바보 같은 상상놀이를 하다 보니 내 이름이 모니터에 떴다. 아직 남편은 메시지를 읽지 못한 것 같아 이제 진료 들어가니 전화받기 어렵다는 내용을 남겨두고 진료실에 들어섰다.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고 질초음파와 조직검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한 검사를 위해 MRI, CT, 펫시티 등 촬영이 필요하다며 1박 2일 입원을 권하셨다.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 막상 검사가 진행되니까 담담해졌다. 암이라는데 눈물도 안 흘리네? 집에 있는 천진난만 딸은 언제 오냐며 전화 오는데 아직 남편과 통화도 못했는데 이 차분함은 무엇인지 설명할 길이 없다.
검사를 마치고 일찍 퇴근해 집에서 입원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고 있던 남편과 통화가 됐다. 놀랐지? 남편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수화기 너머의 표정을 상상하며 최대한 담담하게 물어보려 했던 것 같다. 남편은 놀랐다며 가벼운 세면도구 등을 챙겨 오겠다고 했다. 병실에 들어선 남편은 얼굴빛이 어두웠고 나가서 대화를 나누자고 청했다. 병실라운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 닥쳤던 일들을 하나씩 설명했고 월요일에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등 일정을 이야기했다. 다시 생각해도 그 순간은 비현실적인 느낌이다. 하루아침에 환자복을 입은 나와 달려오며 눈물을 훔쳤다는 남편의 모습이 우리에게 너무 낯설었다.
집에 혼자 있는 딸을 위해 남편을 보내고 병실에 누워 그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부모님을 떠올렸고, 일단 수술만 잘되길 하나씩 해결해 나가자는 심정으로 관련 카페글을 읽으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을 하면서 중증이지만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그 노력이 순간순간 무너지려 했지만 그래서 주변에 알려 힘을 얻어야 된다는 남편 말을 생각하며 누구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떠올리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검사를 마치자 교수님이 월요일 수술 전까지 퇴원을 해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금토 집에서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반갑던지.. 푸근한 내 침대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잠들고 싶었다. 그렇게 남편과 우리 집으로 출발했다. 다녀본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더 반갑고 소중했다. 남편은 그 사이 지인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마음을 잡아가고 있었고 난 상황을 다시 뒤집었다 내렸다 하며 앞으로 닥칠 일들을 머릿속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오늘이 완전한 퇴원은 아닐지라도 집에 간다. 반겨줄 사람들과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게 행복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