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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이란 신세계

by 뚜벅뚜벅

개복수술 3주 차가 되자 바로 항암 스케줄이 이어졌다. 몸 여기저기 주사자국과 멍든 흔적들, 배를 가른 상처도 마주할 때마다 지난 몇 주가 꿈만 같은데, 그렇다고 주저앉아 쉴 수만은 없다. 병원 스케줄에 맞춰 항암치료에 필요한 준비물, 치유과정과 부작용을 찾아보며 다음 보조치료를 준비했다. 한구석 항암만은 피하고 싶었던 그 미련 한 자락을 내려놓지 못하는 나약함을 넣어두며 말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자궁암 관련 면역치료제 등장으로 생존율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생존율이란 표현을 들을 때마다 콱 막히지만 어쨌든 재발 전이를 막기 위한 훌륭한 치료제가 있다니 앞으로 2년 반 내 몸을 바꿔 깨우길 기대해야 한다.


항암에 앞서 혈관주사의 편의를 위해 케모포트라는 기구를 삽입하는 시술의 관문을 통과하던 날. 입원을 준비하며 환자복을 입으며 세상과 분리를 준비한다. 시술은 국소마취로 30분 정도 이뤄지는데 수술로 지친 몸이 다시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막상 닥치면 잘하는 스타일이지만 전날 공포스러운 꿈에 시달리며 꽤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다시 수술대에 올려져 (주치의, 의료진들도 반복해서 말해줬던) 꽤 아프다는 마취주사도 참아내고 시술하며 들리는 직원끼리 나누는 점심대화 등도 흘려듣고 걱정했던 것보다 잘 받아냈다. 이 정도 되니 병원에 오면 미션을 하나씩 클리어하는 기분이다.


병동에 올라와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시간 맞춰 점심을 먹어야 하고 간호샘들과 항암제 이름을 확인하며 하나씩 주입을 시작했다. 저 주사가 나를 살릴 몇 백만 원 약이라니 인생 참 알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1차 항암을 마치자 약한 손발 저림이 시작됐고 심한 날은 걷기가 힘들고 손으로 뭔가를 드는 일이 불안할 정도로 찌릿했다. 답답해서 양말 신는 것도 싫어하는 내가 잘 때도 양말을 챙겨 신어야 증상이 좀 나아졌다.

며칠 매스꺼움으로 약 삼키기가 힘들고 식은땀을 흘리며 밥을 넘겼다. 입맛이 돌아올 때 즈음되자 몸 여기저기 피부발진이 일어나 가려움 때문에 추가 진료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발진도 잦아들고 컨디션도 돌아오기 시작한다. 멍든 피부도 차츰 색을 찾아가는 걸 보니 어쩜 40대가 항암 하기 좋은 나이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블로그를 찾다 보면 20대 직장여성의 씩씩한 투병기, 30대 두 아이 엄마의 육아와 항암 병행기 등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 역시 남은 치료과정을 모범적으로 이겨내자 다짐하며 2차 항암을 준비한다. 내 안의 피를 정화시키고 새로 태어난다는 긍정적인 마음과 끝내 이긴다는 각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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