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하게 살거나 애매하게 죽거나.
50%라는 수치는 뭔가 애매하다. 저울질이 필요하다. 게다가 생존율이라고 하면 더 그렇다. 사는 거 아님 죽는 거, 하나만 고르라는 무언의 심술. 영화 <50/50>은 갑작스레 희귀암에 걸린 평범한 청년 '아담'에 대한 이야기다. 출근 전 조깅을 하고, 늦어도 빨간 불에는 절대 길을 건너지 않는 사람. 위험할까봐 운전면허도 따지 않고 친구의 타박을 들으며 차를 얻어 탄다. 담배도 술도 마약도 안 하고 착실하게 살아온 아담은 영화 시작 초반부에 암 선고를 받는다. 세상을 원망하며 술을 진탕 마시고 거친 짓을 하진 않는다. 아마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를 거다. 영화 초반의 아담은 참지 못하고 소리 없는 악취를 흘린 사람같다. 특별한지 특이한지 모를 대우를 받으며 대사를 모른 채 무대에 올라간 배우처럼 그는 내내 얼떨떨하고 착실하다.
항암 치료를 시작한 아담은 친구 카일과 화장실에서 직접 머리를 민다. "완전 이상해."라고 말하며 낄낄거리는 소꿉친구 카일은 친구의 아픔보다 아픈 와중에도 성생활이 가능한지에 더 관심이 많다. 카일은 항암치료중인 아담을 이끌고, 술집에서 사람을 만나 하품같은 잠자리를 갖는다. 카일 나름대로의 걱정이자 위로였다는 것을 후반부에서야 알 수 있다. 나는 세스 로건의 이런 순진한 날라리같은 연기가 꽤 맘에 든다. 카일이 아담의 여자친구 레이첼의 잘못을 폭로하고 쫓을 때에도 그렇다.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 애매한 순간이 이어진다. 바람을 피운 건 나쁜데 저 상황에서 누군들 안 그럴 수 있을까? 싶다. 저들과 나의 도덕성은 50:50의 확률로 나뉘어졌다. 13인치 디스플레이 화면만으론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결론 내린 나는 영화 화면에 비친 내 눈을 슬그머니 피한다.
기승전결이 확고하고 강단 있는 영화가 있다면 좀 더 어깨에 힘을 풀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영화가 있다. 말하는 방식이 다를 뿐 영화의 가치를 재단하긴 어려운 조건이다. 후자가 더 많이 흔들릴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은 중심을 잡은 채로 흔들릴 수 있는지다. 많은 저예산영화가 이 지점에서 취약함을 보인다. 자유롭게 표현하되 한 줄의 메시지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다행히도 <50/50>은 이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명확한 성격의 엔딩을 보여주지만 억지스럽지 않다. 대사와 장면이 차곡차곡 빈 틈 없이 쌓여간 덕분일까.
조셉 고든 레빗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너무 무난한데? 라는 감상은 <500일의 썸머>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느끼던 것일 테다. 이번 영화를 보고 확신했다. 훌륭한 배우다. 내내 혼란스럽고 애매한 감정을 흘리다가, 종종 짜증을 내다가, 결국 폭발한다. 큰 수술을 앞두고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풀어 낸다. 진짜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마주했을 때의 완만한 눈웃음을 보고 나는 뭐라고도 정리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굳이 말하자면 설레임일까. 저 눈웃음을 보고 사랑스러움을, 기특함을,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는 훌륭하고, 감정에 변화를 주는 영화는 위대하다. 소박하지만, 풍족하다.
뭐가 됐든 결말을 모르고 봤으면 좋겠다. 그럴 가치가 있는 영화다. 대단한 반전도 기술도 없지만 그 선택이 오히려 무기가 된 영화. 누군가에게는 삶의 의지를, 혹은 사랑의 기회를, 아니어도 뭐가 되었든 다짐하게 만들 영화다. 엔딩크레딧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냥 그렇게 애매하게 사는 것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