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 삽니다 - 1. 미안함은 고도의 이기심

by 김오담

냠냠프라자 3층 냠냠스테이 315호는 내 주소지다(물론 실제 명칭이 아니다). 2주 전, 돈은 없고 당장 집은 나와야해서 어쩔 수 없이 고시원을 택했다. 꼼꼼하게 살펴보고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여성전용 고시원에 입실했다. 대부분이 잠시 머물거나 직장 등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머물게 된 사람이었다. 나처럼 1년을 장기로 계약한 사람은 거의 없는듯 했다. 솔직히 말하면 많이 우울했다. 내게 이제 본가는 없기 때문이다. 주변의 소수에게 고시원 거주 사실을 알릴 때에도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 놓곤 했다. 새로 지어진 곳이고, 여성 전용이고, 하얗고, 깨끗해... '타인은 지옥이다'가 아냐...


2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제법 재미있게 산다. 화장실 청소가 싫어서 미니룸(화장실 겸 샤워실이 없는 방의 형태)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매우 옳았다. 외창이 없으면 삶이 괴로워질 정도라며 으레 겁을 주던 소리가 무색하게 안정적으로 지낸다. 사치품이라 여겼던 건조기의 결과물과 처음 접촉하고서는 내내 감탄했다. 혼자도 함께도 아닌 미묘한 균형이 의외로 나를 지탱해준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을 때 종종 들리는 타인의 생활소음은 내게 위로가 되어 준다. 오늘도 살아냈어. 라고 말해준다.


'프리미엄' 고시원이라는 곳에 걸맞게, 혹은 그곳에 압도되어, 거주자들은 아직까지는 상식적으로 지내는 편이다. 언제 어디서 빌런이 튀어나올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최소한 나는 '정상인'이라 자부했다. 30분 전까지는 말이다. 무선 이어폰을 끼고 털레털레 복도를 걷는 내게 마주 오던 한 여자분이 말을 건넨다. 신규 입주자의 그렇고 그런 질문이려니 하고 이어폰을 뺐다.


"죄송한데.. 실내화를 소리 안 나는 걸로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이런... 사실 내가 빌런이었나보다. 고무 소리가 '조금' 난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얼마나 방해가 됐으면 말 한 마디 나누지 않는 사이에 용기를 냈을까. 나는 빌런이어서 죄송했고 그는 죄송한 소리를 해서 죄송했다. 우리는 서로 죄송해하며 마치 임금에게서 멀어지는 시녀들마냥 뒷걸음질치며 사라졌다. 첫 감정은 창피함이었고, 이어서 미안함이 스쳤지만 이내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나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렇게 민폐를 끼칠 수 있나? 말 못한 사람도 있었겠지? 죄송해서 어째...


문득 내가 정말 그들에게 미안한지 궁금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언행에 항상 신경쓰기 마련이다. 민폐 끼치기 싫으니까. 그런데 왜 민폐끼치기 싫을까? 미안하니까? 미안은 편안하지 아니한 상태, 즉 남에게 대함에 있어 마음이 편치 못한 상황을 말한다. 결국 내가 불편하기 때문에 '민폐'를 차단하는 것이다. 결국 배려는 고도의 이기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온전히 미안한 상대만을 신경쓰는 건지, 결국 내가 욕먹기 싫어서 그런 건지는 스스로만 알 터이다. 일단 나는 내가 불편한게 싫어서 배려를 한다. 한편으론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선택이다. 내가 편하기 위해 배려하는 것, 한 치의 불편함도 허용하지 않는것이 오히려 불편해지는 요즘이다. 어쩐지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위선은 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내게는 결과보다 의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무 슬리퍼를 당장 갖다 버렸다. 발등에 그려진 춘식이가 나를 째려본다. 얘한테는 안 미안하다. 근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미안하다. 공동 생활에서 나 정도면 높은 도덕 수준을 갖고 있다고 은근히 으스댔는데 내심 우습다. 더 이상은 민폐 끼치지 않겠다. 내가 불편해지지 않겠다. 배려는 고도의 이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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