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삼층 베란다에 서면 봄을 만났다. 오래된 단지라 나무들은 아름드리 자라 특별히 시선 돌리지 않아도 봄을 알리는 풍성한 나뭇가지와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좁은 골목에 덩치 큰 행인이 다가오면 피할 수 없듯이 나는 그렇게 꼼짝없이 봄과 마주해야만 했다. 겨우내 헐벗었던 가지라 싱그러움이 새로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이 뭐냐면 이 맑은 연두라 서슴없이 말하겠는데 또 그 부드럽고 순수한 연두 새 순은 한 때 세상의 어느 송곳보다도 날카롭고 미세하게 나를 찔렀다.
자연을 품을 넉넉한 마음이 못되던 이기적 젊은 날에도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감지되었다. 마르고 죽은 듯 침묵하던 다갈색 가지는 어느 날 쇠라의 그림처럼 동일한 연두색 점을 온몸에 흩뿌리며 봄이 왔음을 선포했다. 곧이어 개나리, 진달래도 흐드러지리라. 그럴 때 내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해 길어지고 날 화창해지면 어쩜 난 우울해 질지도 몰라. 겨울 코트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질 때, 차가왔던 공기 중에 기분 좋은 훈풍이 스멀댐을 느낄 때, 얼었던 땅이 녹고 아지랑이 피어오를 때, 내 기분은 도리어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그냥 어두운 곳에 웅크려 담요 한 장 덮으면 아늑하련만 왜 눈부신 햇살은 찾아와 나를 방해하는지 성가시기만 했다. 사람들은 봄을 반색하며 서둘러 봄 맞을 채비를 하려는데 난 그렇게 천편일률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동의하기 싫었고 솟구치는 의욕이 없는데도 희망을 말하기란 부담스러웠다. 가슴이 노래하지 못하는 계절을 찬미할 수 없었다.
그런 나의 성향이 개인 탓인지 환경 탓인지 혹은 그 둘 다일까 궁금했었는데 어느 날 신경 정신과 의사가 티브이에 나와 그것은 자연변화에 따른 인간의 생체 반응일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늘어난 일조량과 호르몬 분비의 일시적 이상 증상 어쩌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며 설명이 나를 위로했다기보다 나 같은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었다. 보름달이 둥실 뜨면 성적 에너지가 충만해지듯 꽃 피는 봄이 오면 가슴 설레어야 하는데 더 침울해지는 그것이 내 탓이 아니라면 다행인 것이다. 이제 쓸데없는 생각은 털어버리고 모진 추위 견디듯 이 봄을 버텨내는 수밖에.
그러나 실은 안다. 봄을 무서워하는 진짜 이유를. 가족은 봄 즈음 발병하곤 했다. 조심조심 겨울을 보내고 마음이 안온하게 무뎌질 즈음, 주위에 온기 도니 봄이구나, 기분이 노곤해지려 할 때 가족은 맥없이 쓰러졌다. 허둥대며 앰뷸런스를 부르고... 봄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는데도 봄이 와 있다는 것은 알았다. 누런 잔디를 헤치고 푸른 싹이 나왔다. 신록이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마음이 봄바람 속에 부유(浮游)했다. 그리고 위축되었다. 화창함은 날 약 올리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면 우울해진 주인공이 코트 깃 올리고 낙엽 진 거리를 걸으면 이브 몽땅의 고엽이 때 맞춰 흐르고, 스산한 바람에 고개라도 떨구면 비발디의 겨울이 분위기를 더하는데 내 삶은 먹통이었다. 음악 효과는커녕 배경 장면조차 엇나갔다. 만물이 생기 돋는 계절에 왜 난 안타까운 심정으로 병실로 내달려야 하는지 그 경황없는 사이에도 이건 아니야, 너무 잔인해했더랬다.
생명 세포가 힘차게 자라 뻗친 기운이 땅을 뚫고 메마른 가지를 거쳐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릴 때, 다들 소생의 계절이 왔다고 들떠 찬탄할 때 누구는 그 뻗쳐 나는 기운이 오히려 혈관을 터뜨려 기운을 잃게 하다니. 차라리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차라면 재빨리 몸 돌려 피하겠는데 내가 어쩌지 못하는 계절의 순환은 그냥 떨리는 맘으로 맞아야 했다. 거대한 토네이도가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지붕을 날리고 벽을 날리고 자동차를 날리고 그것들은 참 무섭지만 어찌 보면 그 흉악한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니 정직한 공격이다. 하지만 이 봄이란 놈은 스르르 다가와 방 그르르 웃으며 뺨 때리는 거다. 살며시 내 옷 솔기 하나 뜯어 놓고 그 실 끝을 잡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난 그만 옷섶이 줄줄 풀리는 줄도 모르고 멍하니 서있다 당하는 기분, 그 참담함!
베란다에 나가 서서 움터 오르는 새 싹을 보며 제발 늦게 트여달라고 소리 없이 당부했다. 생로병사의 진리 따위 관심 없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무력했다. 한동안 봄은 그렇게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내게로 왔다. 봄이 올 때면 어김없이 죽음을 생각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