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면 결혼 30주년이다. 성장한 자녀의 나이를 세어보지 않으면 언제 그렇게 시간이 가버렸는지 모를 정도로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더 이상 몰래 숨어 머리를 염색하지 않고 때로 이마와 머리의 경계선을 검은 매직으로 덧칠한 모습으로 등장해 남편을 놀리기도 한다. 죽을 때까지 고유한 이미지를 간직하고 싶었는데 어느새 정이란 놈이 내게도 적용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앞으로 남은 세월도 긴장함 없이 이렇게 스르르 갈 것 같다.
남편과는 선으로 만났다. 처녀 시절 낭만주의자라고 자처했던 내가 중매쟁이를 통해 결혼한 것은 참으로 의외다.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젊어서 난 도도했다. 아니 도도한 척했다. 딱히 매력이 많거나 끼가 넘치진 않았지만 그래도 모든 게 정상이었으므로 사랑도 여러 번 빠질 줄 알았다. 그래서 몸조심했다. 누군가에게 실연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고 나 역시 잘라내기 힘든 남자관계로 골치 아프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소중한 한 사람 앞에 당당하기 위해 나를 아꼈다. 그러나 실제로 주위에서 남자를 마주칠 기회는 흔치 않았다. 보수적인 부모님 밑에 위로 언니들, 그리고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으니까. 연애를 해야 남자를 알 텐데 몸을 사리니 공상 속에서 꿈만 키웠다. 어깨가 넓고 키도 큰데 얼굴은 하얗고 속눈썹이 진한 남자라든가,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데 내게만 고분고분한, 그런 달달하고 감각적인 인물을 상상하노라면 괜스레 행복해졌다. 어느 날인가 남자 주인공 이름까지 지어 보았다. '파도', 새까만 눈썹의 수줍은 듯 의리 있는 청년 파도가 쏴아~ 내게로 다가와 철썩~ 내 맘을 흔든다. 뭐 이런 스토리였다. 한 마디로 현실에선 남자 친구가 없었다.
언니들이 차례로 시집가고 순번이 왔을 때 난 꽃 같은 청춘이었다. 방년 24세, 당시는 결혼 적령기가 시작되는 나이였다. 'ㅂ'(스물일곱, 여덟, 아홉)에 가지 말고 'ㅅ'(스물 넷, 다섯, 여섯)에 가라든가, 싫지 않은 남자가 '하자하자' 하는 결혼이 여자는 행복해~라는 말들이 이상하게 귀에 걸리던 시절이었다. 그럴 수 있을까? 열심히 뒷바라지한 부모님을 두고 홀연히 떠날 수 있을까? 언니들이 놀러 왔다가 해 저무는 오후 되어 총총 자기 보금자리로 돌아가 버리면 왠지 서운했다. 나는 새로 만든 가정보다 속했던 가정을 더 챙기겠다고 유치한 다짐을 해봤다. 아들 없는 부모님이 노후에 쓸쓸하지 않도록 오래오래 그들 곁에 머물며 정겹게 보필하고 싶었다. 그렇게 유유히 한 해가 지나갔다. 외국계 회사를 다녀 해가 눈부신 토요일 집에서 가만히 쉬노라면 여러 갈래 사색이 깊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결혼이 효도다. 부모님께 결혼을 선물해 드리자. 실은 나도 외로웠다.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남자 친구가 없으니 열심히 선 봐야 했다.
중매답게 반듯한 직업의 남자들을 차례로 만났다. 딸만 있는 가정에서 구김살 없이 컸고 선천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주저 없이 털어놔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선보는 자리에서도 어떤 여자다움을 가장해 얌전한 척 입 다물지 못했다. 평생 함께 할 사람을 찾는 자리니 눈 크게 뜨고 상대를 관찰해야 했고 인품이 어떤 지도 알아야겠기에 질문도 당연히 많았다. 그러나 점점 회의가 왔다. 저 사람의 안정에 내 인생을 얹으면 되겠는데 상대가 너무도 남 같아서 뽀뽀는 도저히 못 할 것 같았다. 인생의 반려자를 선으론 만날 수 없겠단 생각이 진해질 무렵 남편이 등장했다. 결혼을 작정하며 포기할 것과 포기하지 못할 것을 검토했을 때 끝까지 양보 못하던... 이제 그쪽에서 '하자하자' 하기만 하면 'ㅅ'에 갈 수도 있게 되었다.
자그마한 커피 테이블을 마주하고 서로를 탐색할 때 그의 스마트함을 보았다. 게다가 나처럼 뚫어져라 상대를 보며 여차하면 자기 쪽에서 퇴짜라도 놓을 이지적인 눈초리는 싫지 않았다. 결혼은 인생 중대사이니 열심히 저울질하는 모습이 차라리 신뢰가 갔다. 정말 미래는 예측불허다. 되도록 부모님 곁에서 살갑게 굴고 싶었는데 생면부지의 청년을 만나 해외로 떠나다니. 2월에 선봐 5월에 약혼하고 6월에 결혼했다. 성숙한 두 남녀가 만나 서로 믿기로 했다. 이제 연애만 시작하면 되었다.
한 남자를 만나 그에게서 백 사람을 찾으려 했다. 그럼 나도 그에 맞춰 많은 연기를 해볼 수 있으리라. 그동안 모범생의 길을 걸으며 한 눈 팔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유혹거리 들을 경멸하거나 혐오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떨렸다. 결혼이란 삶의 무대에 들어서면 남편을 남주인공 삼아 소설처럼 관능적 사랑도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가끔 담배 한 모금, 와인 한 잔 등의 연출이 필요한데 하필 신랑은 술, 담배가 약했다. 결혼 전 거칠은 상황을 보곤 '개판이군~' 한마디 했을 때 난 그 쇼킹한 표현에 반했었다. 고작 거지나 바보가 최대의 욕이었던 내게 'dog' 자가 들어간 말은 와일드해서 멋졌다. 술 담배는 못해도 상황에 따라 청량했다 거칠었다 자유자재로 변신할 매력적인 카멜레온을 은근 기대했다.
상대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 결정을 망설이는 내게 열 번의 만남을 요청하며 열 번 계속 만나주면 결혼 승낙으로 알겠다고, 자신은 시간이 없으니 될 건 되게 하고 안 될 건 빨리 안 되게 하자는 어이없는 말을 하며 일을 추진해 나갈 때 어찌 굴욕을 안 느꼈는지 신기하다. 열 번째 만나는 날 커다란 장미 다발을 건네며 예비 신랑은 기뻐서 싱긋이 웃었다. 평소 바짓단 하나 용감히 베어내지 못하고 만약을 생각해 투박하게 밑단 접어 올리던 신중한 내가 선(先) 결혼, 후(后) 사랑의 모험선을 타다니. 그 가볍지 않은 한아름의 꽃다발을 두 손으로 모아 쥐며 30년 이상을 달려갈 인생 열차에 멋모르고 오를 때 난 크게 두렵진 않았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니까. 안전하게 도착할 것을 뻔히 앎에도 타자마자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청룡열차가 내겐 무섭지, 여유 갖고 내 의지로 한 발 한 발 내디딜 결혼은 즐길만한 탐험이라 여겼다.
한동안, 아니 결혼생활 거의 내내 속성으로 진행된 나의 결혼을 당시 몹시 아팠던 아버지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 그렇게 믿기도 했었다. 미혼시절 아버지로부터 무슨 엄청난 사랑을 받았는지 내 청춘은 빚진 사람처럼 줄곧 아버지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 나. 려 한다... 그랬을까? 과연 아버지만을 생각해서 한 결혼이었을까?
어느 날엔가 평일 저녁 선보기로 한 날, 아버지가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회사서 전해 듣고 약속을 어길 수 없어 만남의 장소로 가선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앉아 있는데, 상대는 자신이 벌써 조교수라며, 사람들이 자신을 로버트 레드포드 닮았다고 한다며 뭔가 분위기를 띄우려 이말 저말 건네는데 난 그만 앞뒤 안 맞게 후드득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다. 남에게 동정이나 위로받는 건 질색인데 주책맞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미안해요, 병원에 가봐야 해요. 말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병원까지 쫓아와 기어이 과일 주스 한 박스를 들려주던 사람, 그렇게 본의 아니게 연약한 여성이 되어 남자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고 듬뿍 점수도 얻었지만 난 곧 냉정을 되찾았다. 당신은 제게 로버트 레드포드가 아닙니다. 미안했지만 거절했다. 콧대 높은 남자가 겸손한 인간이 될 기회를 주었다고 치부했다. 내 슬픔이 너무 커서 남의 슬픔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남편과 서둘러 결혼한 것이 막막해서 어디에 밀려서 한 것만은 아닐 거라는 게다.
퇴근 후 병상에 계신 아버지를 보기 위해 매일 병원으로 출석하며 그 열 번을 채우고 싶으면 병실로 오라, 미래의 남편에게 제의할 때 이상하게 난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었다. 스웨이드 느낌의 감촉 좋은 중절모에 세련되고 질 좋은 영국제 기지로 스프링코트를 맞춰 입으시던 멋쟁이 아버지가 키도 몸무게도 형편없이 줄어 힘없이 침대에 누워 계실 때, 그런 모습을 개의치 않던 나나 그 사람, 둘 다 담담했다. 우리의 만남은 함께 병실 의자에 말없이 앉아있다 그가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것, 달콤한 영화 관람 대신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졸아 든 낯선 내 아버지를 지켜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딘 가서 청춘을 보낸 서른 살 생면부지의 남자와 마치 오랜 연인이기나 한 것처럼 침묵 속에 가끔씩 짧고 깊은 시선을 교환할 때, 나 그때 알았다. 이 사람 믿을 만하구나! 치마로 얼굴 감싼 심청이, 첨벙 임당수 빠지듯 얼떨결에 했다고, 가끔 자신의 결혼을 웃기게 표현했지만 실은 그때 벌써 예감했다. 너와 내가 우리 되어 흔들림 없는 여정을 갈 거란 것을. 겉치레 없는 인간에게 매료당하는 것, 그것은 사. 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