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가볍게 읽기 시작해 서재로 옮겨 남은 페이지를 엄숙하게 마쳤다. 종종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 되었는데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슬픔이 아니라 감격이었다. 죽음에 임박해 폴이 되찾은, 무너지던 그를 일으킨 것은 문학이었다.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 누구나 그 사실을 알면서도 둔감해져 살아가는데 어느 날 홀연히 죽음이 찾아온다면? 자신은 물론 사회에도 건강한 미래를 제공할 거라 믿고 공들였던 의학은 죽음의 위협에 흔들리는 인간에게 최종 위로를 주지 못했다. 우리가 인지하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과 혼자 겪어야 할 죽음은 별개이다. 다행인 것은 죽음이란 그저 무서워하거나 종국의 체념을 넘어 인간이 인간다운 모습을 회복할 마지막 기회라는 것. 이때 문학은 종교와 더불어 강력한 역할을 수행한다. 행동이 결여된 관념에 불과하다며 별 소용없을 것 같았던 문학이 돌연 그 어떤 것보다 구체적인 빛을 밝히며 새 길을 여는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한때 글쓰기를 갈망했으나 망설였다. 보여주기 두려워서가 아니라 드러내기 빈약했다. 평범한 나날에 걸출함 하나 없이 무슨 자취를 남기겠다고. 기다렸다. 그릇이 차기를, 차서 흘러 넘치기를. 그러나 언젠가를 기대하던 떨림은 영글기 전에 남루해졌고 미리 부쳐놓은 부침개처럼 쫀득함을 잃어갔다. 어느 유명 작가처럼 사십 엔 등단하리라, 수줍고 무모한 바람도 가졌었는데 직면한 사십은 예상했던 사십이 아니었다. 그때 우리 가족은 남편 직장 관계로 유럽으로 이주해 모든 것이 생경한 상황에서 무엇을 풀어내기보다 주워 담기에 바빴다. 독일어권에서 영어 학교를 다니게 된 아이들은 학제가 바뀌고 입시로 진입하는 시기라 엄마는 어쭙잖은 상태로 열중할 과제를 떠맡게 된 것이다. 고대했던 중년은 관조와 원숙함이 아닌 새로운 출발이었다.
폴처럼, 폴의 엄마처럼, 열심히란 미명 하에 계산하고 있었다. 겉으론 삶의 진정성을 모색하는 듯했지만 세속적 잣대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때는 행복과 성공이 일치했다. 예전 코미디언 배삼룡의 '이수일과 심순애'를 보며 그 촌스러움과 유치함에 큭큭 거리면서도 뇌리에 남은 것은 사랑과 재물은 상치하는가? 그러한 단순함으로 어느 지점까지 명예와 부는 대립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한 단어가 함유한 모호함을 깨닫게 되면서 행복과 성공, 사랑과 안락함, 명예와 부 등이 더 이상 동의어도 반대어도 아닌 '경우의 수'처럼 이리저리 조합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인생이 복잡해졌다. 어느 시점에선 한 길을 선택해야 하는데... 짐짓 숙고하는 척하다 모험하기 두렵고 인정받길 흠모하는 안일과 허영이 모두가 환호하는 신작로를 바라보게 했다. 결국 주부로 마감하겠지만 아이들을 통해서라도 대리만족을 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 참된 각성도 조용히 내 안에서 태동했다. 그것은 어릴 적 고혹적으로 보이던 엄마의 화장품 바구니 속 보송보송 목화솜 그려진 코티 분 향내처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그것을 감히 나는‘문학의 향기’라고 명한다.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씩 팬으로 지워나갈 때 성취감보다 열망이 차올랐다. 열망은 언뜻 보면 희망과 혼동되는데 희망엔 설렘이 있고 열망은 들뜸과 조급함의 범벅이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세상은 목마른 우물인 것을. 그렇게 순수한 듯 천박했던 시절, “영혼을 파는 바보가 어딨어!” 했지만 사실 대부분의 거래는 교묘하지 않은가? 미끼에 혹해 한 순간 구렁텅이에 빠지듯 허술한 우리는 언제라도 실수를 면하기 어렵다. 너와 나, 영리하건 어리석건, 바로 우리들 자신 말이다. 세상은 너무도 제본이 번드르르해 추락하기 전까진 밟은 땅의 실체를 알 수 없다. 넓은지, 좁은지, 혹 낭떠러지인지? 고비를 맞고야 무릎 꿇고 통렬히 삶을 뒤돌아보며 그제야 항복한다. 인생은 숨결 같은 것을, 언제라도 끊어질 수 있음을.
저자는 사무엘 베케트의 '할 수 없다(can't do) 그러나 할 것이다(will do)'를 인용해 고결한 인간 의지를 고뇌했지만 그 ‘할 것이다’엔 사력을 다해 출구를 찾다 원점으로 돌아와야 했던 폴 자신의 독백을 포함하리라. 인간은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계를 넘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남기고 떠나는 일은 할 수 없지만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온갖 의학적인 지식에 더해 그가 분투한 삶의 성찰은 문학적 소양 아래 심화되었고 궁극의 찬송과 평안을 얻게 하였다. 주인공처럼 영문학을 전공하고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꿈을 중얼거리는 나, 비정상인가요? 반성할까 했는데 ‘숨결이 바람 될 때’를 덮으며 움츠렸던 어깨를 편다. 멈춰라. 주위를 둘러보라. 잘 살고 있는가? 제대로 사랑하는가? 그의 고백은 웅변이고 실체가 없는 줄 알았던 인문학은 구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