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쓸쓸한 뒷모습은 나를 상념에 젖게 한다. 당당한 체구의 할아버지가 쓰레기통을 끌고 가신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오후, 내가 살던 오 층짜리 아파트의 관리인 할아버지는 하루 일과를 마치곤 낡은 걸상 하나를 아파트 입구에 가져와 평화롭게 앉아 계시곤 했다. 어쩌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돌아오는 길, 길에서 정면으로 마주칠 때면 할아버지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셨는데 그것이 인사치레였는지? 약간의 계면쩍음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그럴 때 난 시선을 할아버지 얼굴에만 고정시키고 그의 손에 들린 커다란 플라스틱 쓰레기통은 못 본 척했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의상은 대략 두 가지, 하얀 반팔 러닝셔츠와 체크 난방 위의 모직 우와기. 여름과 겨울 그의 바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타이베이의 여름날에도 할아버지는 하얀 반팔 러닝셔츠 한 장은 꼭 입고 계셨고 날씨 쌀쌀해지는 계절이 되면 잠바나 외투를 걸치던 다른 관리인들과는 달리 도톰한 남방셔츠에 마이를 걸치셨는데 그 모습은 은근히 멋스럽고 품위 있었다. 목까지 채우지 않은 셔츠 사이로 여름날의 흰 내의가 보였는데 그럴 때면 난 섬세한 미국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떠올랐다. 지적인 이미지가 닮아있었다. 낡은 의자, 쓰레기통, 가끔은 구멍 난 러닝셔츠... 그런 초라한 소품들이 할아버지의 고상함을 망가뜨리지 못했다. 전혀 중국말을 못 하며 이사 들어가 어학원에 등록을 하고 간단히 인사말이나마 입을 떼게 되었을 때 난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명랑하게 말을 붙여 보았다.
"안녕하세요? 우린 한국 사람이에요. 할아버지께선 어디서 오셨죠?"
"#%#%~~~"
심한 사투리, 할아버진 산뚱 사람이란다. 그마저 간신히 알아들었다.
당시 대만엔 중국 공산당과의 싸움에서 패한 국민당 군대가 장개석을 따라 대륙에서 이주해 와서는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다 세월이 흘러 대개는 재혼하고 혹은 독신으로, 그러한 남자들이 흔히 하던 일이 아파트 관리인이었다. 할아버지도 그럴 것이라 확신했던 이유는 종종 쓰시던 국방색 군인모자. 할아버지는 고향 생각이 날 때면 품에서 빛바랜 사진을 꺼내기보다 젊은 날의 군모를 쓰고서 반짝였던 젊은 날을 회상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내 눈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시류를 잘 못 만난 것처럼 보였는데 정작 당신은 생을 달관한 건지 체념했는지 별다른 내색 없이 평온을 유지하던 할아버지와 그 후로 별다른 대화는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갔고 우리는 대만을 떠났다. 떠난 지 일 년 여, 다시 찾은 타이베이에서는 새로운 동네에 정착해 어린 딸을 돌보며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냈는데 어느 추석 즈음 불현듯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명절이라도 주위에 찾아 뵐 어른이 안 계셨고 마찬가지로 아무도 찾지 않을 외로운 할아버지, 초대해야겠다~ 기쁘게도 할아버지는 옛 동네에 그대로 계셨고 우리는 새 주소를 건네며 꼭 와주십사 간청을 했다. 국을 끓이고 찬을 준비하며 아마추어 주부라 솜씨가 서툴렀다. 그럼에도 큰 걱정은 없었다. 선을 베푼다고 들뜬... 그렇게 경박한 마음이었다.
띵똥~ 약속시간에 등장하신 할아버지 손에는 커다란 선물박스가 들려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앉으세요. 차린다고 차렸지만 미숙한 식탁, 산뚱 중국어와 어설픈 만다린으로 버벅거리다 대화가 끊어질 때면 할아버지는 따뜻한 시선으로 딸아이를 내려다보셨다. 할아버지가 가신 후 상자를 열어 보았다. 커다란 사과 네 알! 목숨 수(寿) 자가 영롱히 새겨진 보기 좋은 사과는 당시 대만서는 최고급 과일. 그 후로 할아버지를 다시 찾진 않았다. 옛 동네에 가지 않았고 내 맘은 진정되었다. ‘할아버지는 건재하시다!’ 온화한 모습으로 바위 같은 할아버지는 센티했던 나를 치유하셨다. 나도 안심이야.
실향민으로 북한에서 내려와 가끔은 메기의 추억을 부르시고 때로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들으시며 눈 적시던 내 아버지. 다른 이북서 피난 온 사람들은 맨손으로 억척같이 돈 벌었다는데, 동경 유학 다녀오고 신교육받으셨지만 타인에게 머리 숙이지 못했던 유약했던 아버지를 같은 실향민에 양복이 잘 어울린다는 이유로 관리 할아버지와 오버랩했던 것은 순전히 착각이었나? 결혼하던 해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 웨딩 때 손잡고 들어가자고 딴 따따따~ 함께 스텝도 연습했는데 아버진 약혼식 날에도 병원에 계셨다.
“아버지 약혼했어요~”
“아버지 결혼했어요~”
“아버지 대만 떠나요~"
병실로 달려가 소곤소곤 아버지 귀에 보고 드리며 아버지 마음 가볍게 세상 떠나시길 기도했다.
낯선 환경에서 쓸쓸한 듯 기품 있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언어로 표현 안 되는 서글픔을 그에게서 읽으며 난 내 아버지 위로하듯 그의 삶을 인정해 주고 싶었는데... 할아버지는 그와 나의 나이테만큼이나 나는 그에게 그저 설익은 풋사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