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왔다. 할아버지가 왔다. 손녀가 태어난 순간 우리는 남과 여의 역할을 끝냈다. 그저 맘 통하는 아군이 되었지. 생면부지의 남자를 선으로 만나 그의 주름마저 애잔하니 마음 아프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나? 손녀를 돌본다는 명목으로 홍콩의 가파른 비탈길을 가쁜 호흡으로 오르며 우리는 오늘 손을 꼭 잡았다.
아이들은 바쁘다. 이번 주는 중국, 다음 주는 일본, 그리곤 서울 출장... 이어지는 부재에 어느 주말 짬을 내 와인 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눴는데 그들은 행복하다고 했다. 아기가 있고 경제력이 있고 무엇보다 사회생활을 하도록 도와주는 양가 부모님이 계시고. 그럼 되었다. 나도 기뻐.
“어머니, 혹시 일 년 반까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원래는 돌까지 봐주기로 했는데 슬며시 6개월 연장하잖다.
“그럼! 두 살도 괜찮네.” 엷게 웃으며 답했다. 밤이면 머슴처럼 곯아떨어지고 아침이면 몸이 욱신거려도 손만은 매끄럽다. 물일을 안 하는 것이다. 상주 아줌마가 있어 잡일은 없다. 그럼에도 아가의 발전을 위해 하루 종일 아가 눈높이에서 말하고 놀고 애쓰다 보면 가끔은 진공관에 갇힌 기분이 든다. 손녀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아가의 동무 역할에 몰입하긴 힘들 것이다.
"트윙클 트윙클 리틀 스타~" 아가의 앙증맞은 손가락이 아무 때고 노래 책을 넘길 때면 할미는 자동 녹음된 선율에 만족지 않고 펼쳐지는 그림에 맞춰 명랑한 목소리로 재빨리 노래를 따라 부른다. 사랑을 먹고 크는 아가의 성장에 행여 할미의 역할이 있을까 싶어 처지려던 마음이 싱싱한 의욕으로 불붙는다.
내일은 뭘 먹을까? 아가 낮잠 타임이면 부부는 부지런히 외출을 한다. 하루 한 끼는 맛난 걸로 사 먹자. 며칠 전 홍콩 섬 센트럴서 미드 레벨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가만 서있으려니 눈앞으로 바뀌어 가는 홍콩의 거리 풍경이 불현듯 흘러가는 우리네 인생을 보는 것 같았다.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세월을 속절없이 마주 대하며 기분이 나쁘지 만은 않았다. 살아 있잖아, 넘치도록 풍요로운 생을 체험하고 있잖아~ 남은 삶도 에스컬레이터 속도만치로 진행된다면 앞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리라. 우리는 내일 회전 스시를 먹기로 했다.
사실 처음 맡은 장모 역할이 여직 서툴다. 아들을 키워보길 했나, 남매 속에서 자라 보았나. 자연 연속극 흉내를 내며 ‘이러게 저러게’ 어법만 진지하다.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덥석덥석 사주고 싶은데 잘 나가는 현역이 아닌 은퇴한 남편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로 조심스럽다. 남편이란 호칭은 남의 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건만 요즘 남편은 내편 중의 내편이라 여겨지는 시점이기에 그를 최대한 존중하고 싶다. 아이 둘을 미국 사립대에 유학시키고 작은 딸은 로스쿨마저 지원하면서 자신에겐 최대한 근검절약하는 사람, 적은 돈마저 몽땅 털어 내게 주려는 사람, 최근 둘째의 마지막 학비를 송금하고는 우리는 마주 보며 박수를 치려했다. 그렇게 정직해져 간다. 서로에게, 세파에, 나이듬에... 아가 옆에 또 다른 쌔근거림으로 남편이 잠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