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체왓 숲에서 진행되는 체험 프로그램 중 가장 끌렸던 명상수업을 신청했다. 머체왓은 숲을 걷다 군데군데 쉴 수 있는 곳도 잘 되어 있고 내가 사는 신흥리에서도 가까워 가끔 가서 멍하니 앉아 숲의 기운을 받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명상이라니!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
체험 전 날 밤, 제주의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더니 당일 아침까지도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주최 측에 전화를 걸어 이대로 진행을 하는 것인지 취소가 되는 것인지 물어봤다.
"그대로 진행합니다. 오늘 오후에는 비가 그칠 예정이고 설마 온다고 하더라도 아주 작은 량이 올 예정이니 아무 문제없어요. 걱정 마세요"
친절한 목소리에 안심이 되어 전화를 끊고 숲으로 갈 준비를 했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제주의 날씨에 대해 예측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말장난 같은 것이었나! 제주의 날씨는 예보와 맞으면 신기하고 틀려도 그러려니 하게 되는, 타로카드 같은, 아니, 어찌 보면 아직도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미지의 ‘신’과 같은 영역인 것을!
같은 서귀포여도 중문과 남원의 날씨는 달랐다. 중문에서는 거센 태풍으로 귀싸대기를 정신없이 때리다가도 차로 30분을 달려 나온 남원에서는 자기가 언제 자기가 그랬냐며 새침한 얼굴을 한 새색시처럼 저 멀리 앉아 우리를 수줍게 대하곤 했다.
명상수업에 정시에 도착했지만 한 아주머니 한 분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주최 측에서 숲 속에서 진행하다 보니 20분 일찍 도착해 달라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냈었는데 내가 자세히 읽지 못했던 것이었다. 비는 세차게 내렸기에 우비를 입고 우산까지 쓰고 친절한 안내자분과 한 아주머니와 셋이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는 내내 비바람이 또 얼마나 거칠게 양 뺨을 내려치는지 우산은 무용지물이었고 날씨도 너무 추워 여름인데도 다시 겨울이 온 것 같았다. 평소에는 힐링되던 나의 머체왓이 오늘은 또 우리가 언제 알던 사이였냐고 얼마나 다른 얼굴을 내비치며 야속하게 구는지. 게다가 먼저 온 일행들은 꽤나 깊이도 들어가서 가도 가도 보이지 않았다. 비는 계속해서 쏟아졌고 내 안에서는 자기가 늦은 것은 잊어버린 채 끊임없이 불평이 올라왔다.
한참을 들어가니 드디어 둥글게 펼쳐진 요가매트들 위에 싱잉볼들과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빈자리는 3자리 정도 있었는데 빈 요가매트 위에는 잎사귀와 흙들이 뒤섞여 있었고 매트 중앙에는 비가 모여 검은 물웅덩이가 형성되어 있었다. 종이배 정도쯤은 띄우고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내요원은 우리에게 아무 곳이나 편하게 앉으라고 역시나 다정하게 이야기했지만 도대체 어딜 앉으라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엉거주춤 엉덩이만 겨우 걸치고 변소에 있는 자세 마냥 앉았다. 음악 소리에라도 이 번잡한 마음을 의지해 보고자 했지만 거친 비바람에 블루투스 스피커는 계속해서 방향을 잃고 꺼져 버렸고 참여자들도 심지어 명상 안내자분도 당황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안내자 분은 결국 짧게 진행하기로 판단하고 재빨리 마지막 단계인 매트 위에 사바아사나를 진행했다. 나는 겨우 엉덩이만 대고 있는 것도 고역이었는데 이제는 누워야 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게다가 내 자리는 위에 나무가 거의 없어 매트 위에 물 웅덩이가 더욱 빠르게 형성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눕지 못하고 홀로 멀뚱멀뚱 앉아 이 재미있는 풍경이나 즐기기로 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문득 한 아주머니의 누워있는 얼굴을 봤는데 의외로 정말 편안해 보였다.
'뭐지? 안불편한가?'
순간 그 아주머니가 부러웠고 그때 왠지 모를 억울함이 생겨났다.
‘이까지 고생해서 왔는데 어차피 집에 가서 옷은 다 빨면 그만, 나도 씻겨버리면 그만이지 뭐 나도 편하게 누워보자.’
의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가 매트에 물 웅덩이를 손으로 탁탁 털었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을지 벗을지 심각하게 고민하다 다른 사람을 살펴보고 똑같이 운동화를 신고 그 위에 누웠다.
매트에 누우니 이번에는 빗물이 계속해서 미간 사이로 떨어졌는데 이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어디에선가 물을 미간 사이에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는 고문이 있다고 들었는데 경험해 보니 고문이 맞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다시 앉을까 고민하던 찰나 명상 안내자가 재빨리 말했다.
"얼굴에 떨어지는 진흙과 나뭇가지, 비까지 모든 것을 다 거부하지 말고 수용해 보세요"
아마 선생님은 앉아 있기에 분명히 모르리라!
누워있는 손에 빗물이 차오르는 양을 볼 때 내 매트에는 빠르게 물 웅덩이가 형성될 것이고 곧 있으면 엉덩이에도 물이 들어올 일이었다. 그때 살짝 눈을 떠 운동화를 신은 내 발을 바라봤다. 다리에서부터 긴장을 꼭 붙들어 매고 일자로 바들바들 떨리는 불편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왜인지 내 발에게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 왜 나는 남들보다 항상 긴장하고 있지? 나도 좀 편하게 쉴 수 없을까? 그냥 나도 확 놓아버리자’
그 순간 몸에 긴장이 풀리고 무언가 잡고 있던 끈이 탁 놔버리는 느낌이 났다. 발이 일자에서 팔자 모양으로 늘어졌다. 발에서부터 머리 쪽으로 전기가 흐르듯 탁탁 놔버렸다. 미간 사이에 떨어지는 빗물 또한 외부가 아닌 본디 내 안의 것이었던 양, 그대로 받아들여 보기로 마음먹고 살짝 웃어보았다. 그러자 그 짧은 순간 몸이 정말 편안해졌다.
명상을 마치고는 주최 측에서 준비해 준 버스로 타고 숲에서 편하게 나왔는데 내가 버스에 타자 참가자들이 웃었고 한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보고 직접 휴지를 꺼내 닦아주셨다. 역시 내 자리에만 유독 많은 진흙과 비가 떨어진 게 맞았다. 받은 물티슈로 거울도 없어 대충 슥슥 지우고 비옷을 탁탁 털고 내 차로 옮겨 탔다.
타자마자 홍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이 사람들은 비가 이리 오는데 왜 그렇게 프로그램을 강행한 거야??!”
홍의 대답을 들을 틈 없이 나는 불만을 쏟아냈다.
“아니, 할 거면 이왕 다 버린 김에 맨발 걷기도 하지! 힘들게 숲에 들어갔는데 20분 만에 끝나고 이게 뭐야. ”
“오빠 그런데 되게 이상한 게 기분이 너무 좋고 몸이 개운하다?”
에르하르크 툴레의 <지금 이 순간>에서는 육체의 감정과 생각이 다를 때는 감정이 더 진실한 쪽이라고 했다. 그날 마음은 끊임없이 불만을 쏟아냈지만 몸에는 얼마나 기분 좋은 감각이 맴돌았는지, 나는 그날 육체의 감정과 생각이 이토록 다를 수도 있음을 경험했다.
생각은 온통 불만거리를 찾아 토로해 냈지만 육체는 산림욕을 제대로 마친 작은 새가 된 것처럼 산뜻했다.
시간이 흘러 법륜스님의 영상을 보며 그날, 내가 숲에서 경험한 것이 ‘방하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륜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일어나야지 하고 일어나 버리면 마음먹을 일도 없는데 왜 매번 결심하고 각오하나요? 그냥 싫은 마음이 올라오는 직시하고 바로 방하착! 그 마음을 탁 놔버리면 그만입니다’라고 했다.
내 안에 없는 것을 가지려면, 예로 들어 새로운 공부나 기술을 익히려면, 많은 에너지와 지속적인 많은 양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내 안에 있는 고요를 만나려면 지금 이 순간, 긴장을 놓으면 즉시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날 육체는 마음과 달리 착! 놔버리는 방하착을 맛본 것이리라.
내가 찾는 것들은 항상 꼭 끌어안으려면 도망가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히려 놔버릴 때면 언제나 새싹 같은 작은 기운이 되어 내 안에 조금씩 자라나 힘을 더해 주었다.
지금도 가끔 숲 속에서 산뜻하게 방하착 하던 때를 떠올려 본다. 특히 잠이 안 올 때 발을 팔자로 늘이고 육체가 그때의 감각을 기억할 수 있도록 고요하게 응원한다. 그럼 나는 숲에서 말갛게 씻겨진 작은 새가 되어 꿈속으로 날아갈 수 있다.
p.s 주최 측은 바로 다음날, 프로그램 참가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신청비를 환불까지 해주며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날씨가 주최 측 탓도 아니고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사양했지만 끝까지 친절하게 환불해 주어 불평하던 제 모습이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덕분에 기분 좋게 숲에서의 다른 프로그램들도 참여했고 하나같이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