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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규 Jul 28. 2022

나는 어차피 될 수 없었다. 3

스카이캐슬 밖의 사람들

 시한부를 선고받은 사람에게 단 하나의 살 길이 주어진다면, 얼만큼 간절하게 그 길 하나만을 바라볼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진 모르지만, 과학고등학교 입학 원서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아냈을 때,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정신을 생물올림피아드 공부에만 집중할 정도로 간절했었다. 걸으면서 공부하는 습관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였다. 조금만 책을 읽거나, 수업을 듣기만 해도 졸음이 쏟아졌던 나는, 결국 일어서서 공부하는 방법을 택했는데, 이마저도 졸음을 이기지 못하자 나는 집안 거실을 책을 든 채 돌아다니며 공부를 시작했다. 이젠 이게 습관이 되어서 집중하려면, 책을 들고 걷는다. 웃긴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3달이 흘렀다. 원서 두께의 책을 몇 번이고 정독하고 외웠다. 빳빳했던 책이 너덜너덜해졌다. 시험 전날 아버지와 함께 상경을 했다. 서울역에서 같이 먹었던 돈까스가 잊히지 않는다. 아버지는 별말씀하지 않으셨다. 숙소에서 TV만 보시면서 "일찍 자라"라고만 하셨다. 자식의 앞날에 하나 남은 길을 위한 시험 전날, 누구보다도 그 속은 복잡하셨을 터였다. 그러나 나를 동요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불안감 하나 비추시지 않은 아버지에게 정말 감사했다.


 시험은 200문제를 제한시간 내에 풀어내야 했다. 앞에 문제를 제대로 풀었는지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마치 버퍼링 없는 컴퓨처럼, 한 문제 한 문제 시간에 쫓기며 풀어나갔다. 그렇게 쉼 없이 달린 후, 나는 남은 시간 10분을 쓰지 않고 문제지를 덮고 나왔다. 시험장 밖을 나오자 아버지가 물으셨다.

"시험 잘 봤어?"

"아뇨, 후회는 없어요."

 처음 느껴 본 것 같다. 하늘을 감동시킬 만큼 노력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정말 후회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려놓은 것도, 갖고 싶어서 그렇게 매달리는 느낌도 아니었다. 마치 그날, 그 시간의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이고 나왔다는 느낌 그 자체였다. 깨달았다. 진정한 노력을 한 뒤에는 결과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개운함과 깨달음이 있다는 것을.


2주 뒤, 학원이 발칵 뒤집혔다. 해낸 것이다. 다들 불가능하다는 일을. 나는 3개월 만에 한국 생물올림피아드에 입상을 해버렸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다들 달라짐을 느꼈다. 적어도 과학의 한 분야에서는 나만의 독보적인 영역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젠 나를 수학 1 등반 꼴찌로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 한방으로 나보다 훨씬 앞서가던 아이들과 같은 출발선 상에 설 수 있었다. 입학 원서를 당당히 제출했고, 몇몇 아이들은 얻지 못했던 1차 합격의 목걸이를 걸었다.


간절함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나는 진실로 내 현실을 내가 선택하고 만든다고 믿는다. 하루하루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는 그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모여, 진정한 노력의 결실이 된다. 패배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 100일 동안, 책을 들고 거실 바닥을 몇 km 걸었는지 측정하지 않았지만, 그 단위가 km라고 장담할 수 있다. 책을 들고, 걸으며 공부해야겠다는 그 처음의 작은 순간이 모든 결과를 바꿔놓았다.


전편에도 이야기했지만, 끌어당김은 가혹한 면이 있다. 원하는 결과를 그냥 가져다주는 무임승차가 아니다. 가장 극적인 순간에 배신을 할 수 있다. 1차 합격은 상상도 못할 행복을 나와 가족들에게 가져다주었지만, 나는 결국 축배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이 쓰디쓴 경험이 훗날 나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란 생각을 하진 못했었다.


다음 편: 결국 스카이캐슬 밖으로 나가다.

(친구에게 위로 받으려 한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 가족들의 환호성)


#책과강연 #의사가되려고요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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